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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32)

산다는 건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는 것

by 김 미 선

환갑 언덕을 기를 쓰고 올라와 보니 50대는 청춘인걸 알았다.

육십을 넘으면 오십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구구절절 나타난다.

김 씨를 이 씨로.

유 씨를 윤 씨로 바꿔주기도 하고 개명에도 도사가 된다.


명순이를 명식이로.

다혜를 식혜로.

거 뭐냐! (잘 생각나지 않을 때 쓰는 일상어)

엉뚱한 이름을 대놓고 그거 아니었냐고 오히려 따진다.


고집과 삐짐의 심도 있는 진행은 아랫사람들을 당혹하게 하고,

나이 든 이들이 행하는 모든 것들을 희화화시켜 버린다.

참기름 병을 가지러 가서 고춧가루를 들고 오고,

그 짧은 동선 안에서도 깜빡깜빡 낡은 전구는 켜졌다 꺼졌다 반복을 거듭한다.

그러다 냉장고 앞에서 엉뚱하게 먼산만 바라본다.


내 고향 진달래는 지금 이미 잎만 무성하겠지.

지나간 청춘의 뒤안길에서 어설프게 다가오는 회한의 그림자들이

가지러 갔던 본래의 목적을 희석시킨다.

지금 내가 무얼 가지러 왔지?


"밥 하다 말고 거기 서서 먼산은 왜 바라보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서야 들깨가루를 찾아내 본 위치로 회동한다.


비 오는 날은 미끄러지는 날이고.

눈 오는 날은 스키 타는 날이고.

부지깽이라도 붙잡고 싶은 엉거주춤의 행보에서 노년이 서성거린다.


50대 후반에서 60대로 올라서면 이렇듯 헷갈리는 삶이 시작된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런 현상이 현실화되는 거다.

나이가 건네는 서글픔이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예상하지 못했던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부상의 위험이 커지는 시기가 도래한다.


나 역시 두 번의 사고를 당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올해 운이 나쁜 건지 걱정이다.

이것으로 액땜이라면 좋겠다.

뇌진탕 사고가 났어도 CT, MRI를 찍지 않았는데 그 후 며칠이 지나니

더 극심하게 머리가 아파왔다.


연휴가 끼어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당직 병원을 찾아 응급실로 실려갔다.

결국 그렇게나 싫다던 방사선을 머리에 쬐고야 말았다.

CT를 찍고 MRI를 찍어보려 했는데 우선 CT만 찍으란다.


CT를 찍은 후 길고 좁은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자니 의사가 와서 전하는 말은 이랬다.

출혈은 보이지 않지만 영상에 잘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괜찮다가도 또 갑자기 출혈이 생길 수도 있다.

두통은 개인에 따라 몇 주 만에 낫기도 하고 일 년이 가는 사람도 있다.

약해진 머리가 덧치면 큰일 나니 조심해야 한다.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으로 속히 와야 한다.

특별히 지어줄 약은 없고 진통제 타이레놀만 타 가지고 가시라.


이렇게 생애 처음으로 응급실을 다녀왔다.

약골이긴 하지만 크게 아파서 병원을 간 적도 없고 사고가 난 적도 없다.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골골대긴 하지만 건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변고가 연달아 생기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상식은 맛있어` 코너에 지적인 밥상?을 차려내야 하고,

`인생 그게 뭐라니?` 거기서도 삶이 뭔지 생은 무슨 색인지 밝혀내야 한다.

유화로 꽃도 풍경도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그냥 나이만 먹은 늙은이가 아니란 말이다.

흔해빠진 길가의 돌멩이가 아니란 거다.

생각과 에너지가 아직 푸른 영올드다.


그럼에도 산다는 건 결국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좋든 싫든 내 주관과 상관없이 부딪히는 일들이리라.

그래서 인생은 다양성이다.

두 번의 시련은 인생을 새롭게 음미하는 기제(機制)가 되었다.

건강을 잃지 않는 것이 삶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아프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우리 앙꼬님들께 죄송하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염려해 주신 덕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절명하지 않는 한 삶은 이어집니다.

간단히 부딪친 것이 아니라 강타를 당했으므로 두통이나 몽롱함은 여전합니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곧바로 중단해야 할 지경이니까요.

이 글을 쓰면서도 누웠다 일어나고 쓰다가 눕기도 했습니다.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해 오늘도 힘을 내 봅니다.

독자분들의 염려와 격려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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