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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35)

시끌벅적한 그곳엔

by 김 미 선

6월 2일 오후 1시.

부부는 경부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서울 삼성병원이다.


뇌진탕 이후 한 달 넘도록 지속적인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병원에 가게 된 이유는 통증도 그렇지만, 먼저 CT를 찍었던 병원을

다시 방문했을 때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수술?

그렇다면 이렇게 가만히 놔둘 문제가 아니다.

서울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든 무슨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래서 서둘러 예약을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게 된 것이다.


예약시간은 오후 4시.

큰 병원은 어디나 그렇듯이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길을 잘못 들어 장례식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인이라도 돌아가셨나 왜 여길 왔어."

"그러게. 잘 못 왔네."

(본 병동이 리모델링으로 어수선함)


다시 돌아 나와 지하 3층에 차를 대고 1층으로 올라가니 입구부터 단단하게 방어막이 둘러쳐져 있다.

요즘은 모바일 건강보험증으로 바코드를 찍어야 출입할 수 있게 되어있다.

미리 받아둔 어플로 출입은 쉬웠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묻고 물어서 찾아 간 뇌신경센터는 사람들로 시장통을 연상케 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뒤섞여 앉을자리가 없다.

한 명이 일어서면 금세 보따리부터 던져놓는 형국이었다.

예약시간보다 40분을 기다려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인상이 좋은 젊은 의사는 뼈에 금이 간 것도 아니고 출혈이 보이지 않아서

일단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아프면 진통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으면 된다는 거였다.

외상은 부딪쳐 내부가 충격을 입은 거라서 조심하고 안정만 취하면 시간이 가면서

차츰 낫는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려나 긴장되었던 마음이 잠시 주춤거렸다.


옆에서 듣는 남편입장에서는 엄살을 부렸나 싶은 표정이다.

뒤집어 보여줄 수도 없고 참 억울한 심정이긴 했지만, 차츰 낫는다는 말이

상처에 고약을 발라준 기분이라 아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기실에 앉아서 바라본 병원 내부는 어쩌면 그렇게나 아픈 사람들이 많은 건지.

내가 예약했던 부서는 파킨슨 환자들을 주로 다루는 부서다.

그 병을 다루는 부서이긴 했지만 두부 외상을 입은 환자를 다루기도 하여 급한 대로

그곳에 예약신청을 했다.

뇌신경으로 유명한 의사들은 이미 예약만료 거나 한없이 뒤로 처지는 상황이다.


파킨슨 환자들이나 그의 보호자들의 시름 어린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건강하지 않았나.

감사하다. 고맙다.

그 말들이 또다시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지긋이 건네주었다.


내가 넘어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0.4초 찰나의 시간에 슝, 탕 머리를 부딪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죽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혼미한 정신으로 길거리에 누워있던 그 시간을.


한 달이 넘도록 극심한 피로와 통증에 시달리며 내려진 결론은 차츰 낫는다는 거였다.

그래 믿어보자.

통증이 걷힐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견디면서 살아내 보자.

희망은 모든 것들을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다.


글을 놓지 않으려고 허술한 글맥을 추슬러 발행을 하고 오늘날까지 헤엄쳐왔다.

글을 쓰다가 누워있기도 하고 댓글을 달다가도 쉬고 또 쓰기도 하면서 6월을 맞았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꽃들도 흔들리면서 핀다고 했다.

흔들려야 인생이라고 이번 사고는 한 번 더 알려주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야박하지 않고 더더욱 둥근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다.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아픔은 자제와 성찰을 불러오지만 무엇보다 아프지 않는 것이 최고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대기실에 빼곡하게 앉아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얼굴을 보았다. 거기서 건강한 것은 축복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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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이미지: 픽사베이.

삼성 서울병원 뇌신경센터.(본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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