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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그게 뭐라니?(36)

같이와 가치

by 김 미 선

너 하나 먹고

나 하나 먹고

먹다 먹다 양재기 바닥에 뒹구는 그 알갱이

몽땅 털어 넣고

낄낄낄 깔깔깔

시커먼 국물이 턱으로 옷으로 흘러내렸다.


울 엄마 빨래터에서

시커먼 국물의 옷자락을 실컷 두들겨 팼건만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날의 추상화였다


북풍한설도 혼자 버텨낸 겨울의 끝자락에서

뽕나무는 생각했다

다음 해 열매를 몇 개로 정할까

삼밭처럼 무수하게 열어봐?


햇살 한 뼘

두 줄기의 바람이

뽕나무의 더딘 계산을 부추겼다

많이 매달아 무조건 많이


5~6월은 오디의 계절

어린 계집애 입속에 연탄가루를 퍼붓듯

시커먼 국물을 우려내던 그 열매가 오늘도 거기 서있다

뻐꾸기가 울어대던 그 언덕에

박자를 맞추듯 익어가던 열매

그 열매는 오늘도 나를 그 자리로 끌고 간다

그 자리로.


산책길에 뽕나무를 만났다.

참으로 반갑다.

가던 길 멈추고 뽕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시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야! 많이도 달렸다.

가지가 무겁다고 아우성을 치든 말든 오디가 풍년이다.

빨간색과 까만색의 조화로움이 시간을 삭이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혼자 익고 혼자 떨어져 뒹굴어도 피해 갈 뿐 오디를 따먹고 싶어 하거나

신기해하지 않는다.

홀로 찬바람 부는 길가에서 한 겨울의 설움을 견뎌냈건만 사람들은 냉정하다.


하긴 뭐 나무들이 누구를 위해 열매를 맺는 건 아니다.

그저 순환의 원리일 뿐이다.

어떤 이가 뽕나무를 다독이지 않는다 해도 의연하고 씩씩하다.

서러워하거나 삐치지 않는 당당함이 나무를 나무답게 만든다.


우리 시대 사람들은 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오디를 먹었는지를.

소년과 소녀가 오디를 따먹으며 순정을 익혀가던 그 시절을 기억한다.

시커먼 입술도 부끄럽지 않았던 시대의 서사를 뼛속에 간직하고 있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사람은 오디를 먹었다.

안토시아닌이 뭔지도 모르고 항산화가 어떤 작용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저 까만 열매가 식용이라는 것이 관심의 전부였다.

그 속에서 우정은 까무룩 달달했다.


없던 시절의 우애와 우정은 지금과는 달랐다.

배고픔의 속내를 알았다.

무엇이든 함께 먹으면 맛있었고 같이 할 때 가치 있다고 여겼다.

가치로움의 협동화다.


산책길에 만난 뽕나무는 까마득한 추억들을 다시 건져다 주었다.

이미 떠내려가 버린 시간의 알갱이들은 뽕나무에 모여있었다.

시는 이런 감동의 실타래를 타고 고치처럼 내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오랜만에 시심을 불러내 준 뽕나무가 고맙다.

산책길에 뽕나무와 마주 서면 언제나 아련한 고향 언덕으로 나를 데려다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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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서 만난 뽕나무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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