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눈뜨는 아침
혼자 눈뜨는 아침?
요즘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눈을 뜬다.
둘이 살던 삶의 공간이 잠시 혼자가 되었다.
꿀잠을 중단하고 벌떡 일어나 밥을 하지 않아도 되고,
늦게까지 앉아서 그림을 그려도 되니 홀가분하고 좋다.
남편이 거래처 사장들과 공을 치러 가기로 했다고 통보했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늦게까지 자도 되겠구먼.
반찬걱정 안 해도 되겠구먼.
딸한테 가서 놀다 와도 신경 쓸 일 없겠구먼.
열흘동안 내 자유구역이 선포된 셈이라서 그가 떠나기도 전부터 신바람이 났다.
네 명이 작당한 말레이시아 일정은 겉으로는 비즈니스이고 속으론 신나는 여행이다.
그 혼자만 신바람 나면 안 되겠지.
나도 나름의 신바람을 일으켜야지 생각했지만 딱히 신바람 날 일이 없다.
황금 같은 시간을 재밌게 채워야지 맘먹었건만 막상 혼자이고 보니
혼자 눈뜨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다.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다 바쁘다.
손주 돌보는 사람.
돈 버는 사람.
여행 떠난 사람.
아픈 사람.
전화를 길게 할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고작 생각해 낸 것이 딸에게 가야겠다는 기발한? 생각뿐이었다.
2박 3일 동안 딸에게 달려가 연극`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을 보기도 하고
혜화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플리마켓 행사도 둘러봤다.
서울은 어딜 가나 사람천국이다.
딸과 함께한 시간은 달콤했지만 2박 3일은 총알 같았다.
더 있다 가라는 딸을 뿌리치고 나의 집으로 돌아오니 딱히 할 게 없다.
다섯 살배기 손주 같은 말썽꾸러기 남편, 그가 없으니 할 일이 없을 수밖에.
혼자 맛보는 자유도 닷새가 지나면 무료해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이 영양가 없이 흘러가고 있다.
에라!
그럴 바엔 그림이나 맘 놓고 그리자.
옆에 김밥 한 줄 사다 놓고 밤늦게까지 붓을 놀리며 혼자 놀았다.
선풍기 혼자 씩씩거리며 나를 격려해 주었다.
불을 끄면서 "어서 자." 반 강제로 나의 취미를 뭉개는 사람이 없어선지 내 그림은 힘을 얻었다.
훼방꾼 없는 작업으로 속도가 붙었다.
이 맛은 월척을 낚은 낚시꾼의 쾌감이리라.
대문 이미지: 픽사베이.
하단 이미지: 필자. 꽃들에게 말 걸기. oil on canvas. 30x30
이곳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요즘 화두가 되었던 멤버십 제도.
어떤 이는 제도를 따르고 어떤 이는 종전을 고수하겠다고 결정했을 터.
나는 지난 글 인생 37화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고민한 글을 쓴 바 있다.
제도를 따를 것이냐 그대로 갈 것이냐 이 문제를 고심했다.
결과는 종전대로 문호개방으로 저울추를 기울였다.
울타리 없이 아무나 편하게 들어와서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
유료라고 해서 반드시 영양가 있는 고단백 글이라고 자부할 수 없고,
무료라고 해서 싸구려 글이라고 낙담할 일 아니다.
모두는 제도를 지켜보면서 좀 더 신중하게 나아갈 길을 모색할 뿐이다.
내 갈길이 어떤 길이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는 차츰
글의 퀄리티를 높여가면서 생각해 볼 일이다.
글에 쫓겨 내 삶이 허둥거릴 이유가 없다.
마음이 편해졌다.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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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