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방 쓰기

방을 탈출한 그녀

by 김 미 선

우리 어렸을 때는 방이래야 고작 하나 아니면 두 개였다.

설령 더 있다고 해도 무늬만 방이었다.

아주 큰 부자가 아니라면 대개 그랬다.

지금처럼 식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풍년 든 사과처럼 주렁주렁했다.


그럼에도 그 작은 방에서 서로 살을 맞대고 살았다.

애나 어른이나 으르렁 거리다가도 금세 느슨해졌다.

오히려 작은 공간을 향유했으며 우애의 근거지가 되어 주었다.

넓지 않은 잠자리에서도 무엇이 그리 우습고 좋은지 이불속은 늘 깔깔 소리로 들썩거렸다.

찌든 이불조차 향기로운 꽃밭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방은 방이면서 주방이고 거실이었다.

그곳은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음식도 차리고 손님도 맞고 복합 공간이었다.

거기서 아기도 낳고 혼인도, 장례도 치러진 관혼상제의 터전이었다.

60~70년대의 보편적인 방의 형태가 그렇다.

방 한 칸이 주는 역할은 그처럼 다양했다.


부부싸움을 한 날.

그 웬수 같은 남편을 잠깐이라도 안 보고 싶어도 안 볼 수 없는 구조가 방 한 칸의 위력이었다.

좀 멀찌감치 떨어져서 혼자라도 분을 삭여보고 싶건만,

어디 갈 데가 있어야 분을 삭이든지 초를 삭이든지 할 텐데 말이다.

(우리 엄마들 시대)


그저 돌아서서 허공을 향해 종주먹을 휘두르는 것으로 방구석의 애로를 삭여야 했다.

밉던 곱든 그 방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주는 협소함은 되레 결속력으로 작용하면서,

굳이 점호를 하지 않아도 이탈자는 있을 수 없었다.


우리 어린 시절의 옴닥거리고 살던 방의 풍경은 오늘날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요즘은 방이 남아돈다.

아이들은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어릴 때부터 각방을 쓴다.

그러다가 성장하면 방이 텅텅 빈다.

직장이든 결혼이든 집을 떠나 버리는 시기가 온다.

그것이 부부가 각방을 쓰게 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그럼 내가 각방을 쓰게 된 경위를 들춰내 보기로 하겠다.

창호지에 침 발라서 들여다보지 마시고 그냥 성큼 들어오시라.

침실 얘기이긴 해도 19금 까지야 아니니 안심하시고,

청정지역으로 입장하시길 바란다.


남편은 지금도 사업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늦게 귀가할 때가 많고, 술에 취해 들어올 때가 흔하다.

기다리다 지쳐 그냥 잠들면 어느 순간 불이 반짝 켜지고 방에 보름달이 뜬다.


컴컴한 밤중은 대낮이 되고 고요했던 방은 금세 부산해진다.

장롱문 여는 소리, 씻는 소리, 저벅대는 발자국 소리 등등 단잠은 곧 중단된다.

나는 깨어나고 그는 곧 잠이 든다.

금세 잠이 든 그의 코에선 알 수 없는 연주가 시작된다.


옆에 누워있는 내게 그는 퉁소인지, 풀피린지 국적도 레퍼토리도 구분하기 힘든

요상한 소음을 계속 유발한다.

어디다 민원을 넣을 수도 없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으면 신경이 곤두서고 이 어설픈 연주를 확 파투 내고 싶다.


그런데 어쩌랴!

하루의 고단함을 지금 연주로 달래고 있는 이 사람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

만약에 이 한 밤중의 향연을 중단시키는 일은 소크라테스 아내 크산티페만큼이나 악처가 되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날밤을 새고 말지.

그게 현모양처의 모양새가 된다.


연주만 하면 그런대로 고달파도 참겠다.

문제는 육탄전이다.

어느 날은 곤히 잠든 내 가슴에 뭔가가 철퍼덕 떨어졌다.

깜짝 놀라 깨보니 그가 옆으로 돌아눕다 그 육중한 팔을 내 배 위로 늘어뜨린 것이다.

세상에 자다 말고 대박이 터지는 줄 알았다.

심장은 파닥거리고 단잠은 멀리멀리 도망쳐 버렸다.


또 어떤 날은 황소만 한 다리를 새 다리인 내 다리에 척 올리고 잠을 자는 거다.

나는 꿈에서 뭔가에 눌려 엄청 아파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풀어지지가 않아 끙끙대다 겨우 잠을 깼는데,

그는 세상 편한 표정으로 숙면을 하고 있었다.


자면서 끝없이 축구선수도 됐다가 배구선수도 됐다가 그 종목의 감독이 되기도 한다.

그가 제풀에 흥이나 발로 걷어차는 바람에 내 발톱이 빠질 뻔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발톱에 피가 맺혀 시커멓다.

세상에 저렇게 잠 험히 자는 사람 처음 봤다고 목청을 높여댔다.


게다가 이불까지 돌돌 말아 멍석을 만드니 오그리고 자기 일쑤였다.

"당신은 정말 잠을 너무 헤미(험하게) 자. 도대체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러면 그는 자는 사람이 뭘 아느냐고 일축한다.

"그랬어?" 하면서 작은 미안함이라도 표했다면 그나마

육탄전이라도 감수할 텐데 이건 아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떠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리하여 나는 무작정 상경이 아닌 무작정 각방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 실행의 첫날.

내가 떡하니 다른 방에 침구를 마련한 걸 보더니 "따로 자려고?"

"그래, 따로 자야지. 뭐 하러 힘들게 같이 자."

내 퉁퉁한 말투 속엔 그동안의 고통이 버무려 있다.


맨 처음엔 상당히 서운한 표정이었다.

완전 이별 통보를 받은 것처럼 가슴속 한구석으로 휘리릭 찬바람이 불어 쳤으리라.

그러다가 차츰 익숙한 각방 생활이 시작됐다.

그 길로 나는 숙면과 동시에 자유를 얻었다.

이젠 이상한 연주를 듣지 않아도 되고, 대박이 터지는 일도 없게 되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자유가 최고라고 말하겠어요.`

로 바꾸면 딱 맞았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자유를 허 하는 것. 서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우들을 돌보며 평생을 봉사로 헌신한 `마가렛` 수녀의 말을

신문에서 접했을 때 나는 박수를 짝짝짝 칠수 밖에 없었다.

마치 내가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내 심정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

역시 오래도록 환자 곁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 봉사자의 생각은 달랐다.


함께 잘 때는 반 강제로 로켓 발사 버튼을 누르듯 소등하면 그냥 자야 했다.

요~이 땅 하면 뜀박질을 뛰듯 눈을 감아야 되었다.

더 있다가 자고 싶은데도 막무가내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안 자고 싶은데 엄마나 아빠의 편의에 의해 잠을 자야 하는 어린애처럼 억울했다.

이젠 자다가 불이 켜지는 일도, 반강제로 불을 끄는 일도 없어졌다.


혼자 늦게까지 글 쓸 자유를 얻었다.

심야에도 그림 그릴 자유, 책 볼 자유가 생겼다.

느지막이 얻은 이 자유가 그리 소중할 수가 없다.

나는 무한대 창작의 기쁨을 맛보면서 "야호, 야호" 환호성을 질러댄다.

밤에는 "잘 자." 작별 인사를 하고 아침엔 "잘 잤어?" 문안 인사를 한다.

이 해방감이 나는 너무나 좋다.


언젠가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설문조사라기보다 농담조의 질문이었다.

"있잖아. 부부가 각방 쓰는 걸 어떻게 생각해?"

듣고 있던 친구나 지인들 의견이 분분했다.


"아휴! 각방 써야지 뭐 하러 같이 자. 불편하게." 각방파와

"그래도 부분데 같이 자야지 혼자 자면 돼?" 동침파로 나뉘었다.

나이가 들수록 각방파가 다수였고, 동침 파는 소수였다.

각방파 중에는 벌써 오래전부터 각방을 써왔다고 고백했다.

머뭇거리거나 망설이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날려줬다.


나도 그전에는 각방파의 얘길 들었을 때 어찌 부부가 따로 자냐고

이상한 부부라고 핀잔을 했었다.

그런데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는 이해로 돌아섰다.

`지금은 맞고 그땐 틀리다` 의 영화 제목처럼 입장이 바뀌었다.


젊은 사람들은 부부가 각방이 웬 말이냐고 할 사람도 있다.

부부는 합방해야 마땅하다고.

`시방 대한민국 부부 이별시키기 작전이라도 하는 거냐고` 항의할 사람도 있겠다.

누구나 환경이나 형편에 따라서 편한 대로 생활하면 된다.

맞고 안 맞고가 없다는 거다.


나이가 들면 이제는 부부라기보다 남매처럼 느껴진다.

오래된 애정 위에 우정이 싹튼다.

동질감이 생기고 동료의식이 나타난다.

친구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이성 친구가 된다.


각방 쓰기의 예고편은 벌써 조선남자 엿보기 2화에서 복선을 깔아 두었다.

잠은 따로 자면서 아침밥은 꼭 차려낸다는 글을 썼다.

밤새 허전했을 옆구리를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밥상은 푸짐하다.

밥을 먹으면서 무슨 꿈을 꿨느니, 하루 일정이 어떠느니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잠시라도 고독했을 그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우스개 소리로 60대는 각방에서 자고 70대는 어디서 자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조금 더 있으면 산에서 잘지 강에서 잘지 모르게 된 노부부의 처지다.

자다가 혼자 죽어도 모르겠단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들기도 한다.

슬픈 일이지만 각방 쓰기가 죽음에 대한 예행연습이 아닐까 살짝 겁도 난다.

참 멜랑콜리 하면서도 푸근한 자유가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무작정 상경보다 낫다.

방을 이탈하긴 했지만 그나마 한 지붕아래 사는 것으로 그를 쓰다듬고 있다.

견디다 못해 내린 결론이 결국 다른 방으로 移房(이방)인지 異房(이방) 인지를

감행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더라도 다른 이들은 가능한 방을 이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출 아닌 방출은 경범죄에 해당할지도 모르니까.

방을 뛰쳐나온 사람으로서 할 말은 없다만 이런 건 모방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불상사를 체험하고 있는 선배로서 어찌 또 후배를 양산할 것인가!


다만 이럴 때는 방을 나와도 상관없다.

남편이 꿈을 꾸다가 상대방 따귀를 때린다는 걸 바로 옆지기 얼굴을 강타했을 때.

그런 실수를 했을 때는 강한 반발과 함께 가차 없이 방을 탈출해야 된다.

그것만이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으므로.


그럴 때는 `내가 거기서 다신 자나 봐라.`

이를 갈면서 방 탈출의 구실이 확실하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부디 뛰쳐나오지 말고 꼭 곁에서 찬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막

되어주길 바란다.

자유로운 영혼 뒤엔 고독한 냉기도 함께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암, 그렇고 말고.


깊어가는 가을, 유화그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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