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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19. 2016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스무살의 추억을 태워버리며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시인 파블로 네루다


강남 교보문고에 걸려있던 현수막 글귀, 그걸 보고 무심코 지나쳤었다. 그땐 그 말에 공감가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 문장은 내 머릿 속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나보다. 생각치도 못했던 소꼽놀이 친구가 꿈에 나타나듯 그 말이 갑자기 떠올랐으니까. 문장을 촉발시킨 계기는 있었다. 오랜만에 만났던 대학교 선배 때문이었다.
                 
1. 꽤 잘 맞는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지각을 했고, 미안하다고 맛있는 걸 먹자고 달랬다. 선배는 삼겹살집으로 가자고 했다. 옷에 고기냄새 배는 게 싫은 나는 다른 데 가자고 했지만, 무슨 그런 걸 신경쓰냐며 날 그리로 데리고 갔다. 저녁 때였지만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옷 넣는 비닐을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요즘엔 남자들이 더 해"라고 말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참 나'


선배와는 1년만에 만나는 거였다. 한때 굉장히 친했던 선배였다. 선배는 차를 끌고 왔다며 술은 먹지 않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나하며 추억팔이나 해볼까 계획했던 나는 처음부터 약간 김이 빠졌다. 선배는 내게 다니는 회사는 괜찮냐고 물었다.


"좋아요 마음에 들어요."

"월급은 얼마 받냐?"

"아니, 뭘 그런걸 그렇게 포장도 없이 직설적으로 물어요?"

"내가 물으면 안되는 걸 물었냐?"

"누군가에게는 예민한 문제일 수 있죠."

"가시나 다 됐네."

"네?"

"가시나 다 됐다고."


이런 대화를 하게될 줄은 몰랐다. 내 기억 속에 선배는 그저 좋은 선배로만 남아있었고,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선배로 기억됐기 때문에.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선배와 내가 생각이 꽤 다른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난 대충 얼버무려 대답해줬다. 몇마뒤가 더 오간 뒤 선배는 내게 말했다.


"근데 너 좀 변한 거 같다."


2. 선배를 따르던 후배는 조금 변했다

그말을 듣자마자 선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정확히 알 거 같았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도 몇번 들은 말이었고, 나도 내가 변했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근데 저는 예전에 저랑 지금의 저랑 비교하면 지금이 좋아요. 예전에는 별 생각도 없었고, 이거 좋다하면 따라가고 저거 하지말자 그러면 안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내'가 있잖아요."

"그게 좋냐? 예전에는 성격도 둥글고 사람도 안 가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냉소적이고 싫어하면 안 하고."

"전 지금이 좋아요. 그땐 제가 없었어요."

"우리 추억을 넌 그렇게..."

"아니 형, 추억은 좋죠. 추억은 좋은데, 그때의 저는 그렇게 썩 좋지 않다는 거죠. 오해하지 마세요."


1학년 때, 선배와 나는 많이 붙어다녔다. 말그대로 정말 붙어다녔다. 쿵짝이 잘 맞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난 군대에 갔다. 선배는 내가 상병 때 입대했으니 한 3년을 못봤다. 선배가 아직 군대에 있을 때 난 1학년 때 논다고 미뤄두었던 공부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학과 공부가 아닌 세상 공부를 말이다. 신문을 보고 학생기자를 했다. 토론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때 난 느꼈다. '아 난 살아있다.'


선배가 군 제대를 하고 학교 앞 어느 주점에서 나와 만났을 때 처음으로 느꼈다. '형은 변한 게 없구나.' '나는 많이 변했는데.' 그때 난 정치이념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며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를 막 설명하려 했고 선배는 그 얘기를 참 재미없어했다.


다시 2016년. 제때 뒤집지 못해 딱딱해진 삽겹살을 먹으며 내 얘기에 그렇게 재미있어하지 않는 선배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은 하나도 안 바꼈고, 난 많이도 바꼈구나. 난 삼겹살도 잘 안 먹는데.' 정치, 영화, 책 내가 얘기하기 좋아하는 어떤 분야도 꺼낼 수 없던 그 자리에서 누구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삼겹살과 함께 추억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슬픈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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