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의 두 얼굴

by 김작가

"나 사람 안 믿어."


가끔씩은 정말로 이렇게 생각을 한다기 보다는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좋아서 말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람을 믿지않는다고 말하는 건 사실 여과기를 설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물질이 아닌 사람을 걸러내는 여과기다. 방어기제로써의 여과기다. 벽은 높아지고 많아졌다. 웬만한 사람이면 차라리 친해지지 말자는 뜻인 셈이다. 난 왜 이렇게 됐을까. 아마 21살 때였다.


군대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아 비밀이 있을 수 없는 곳이었다. 침대와 침대는 붙어있었고, 혼잣말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고, 또 그래야만 했다. 이등병 때였다.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아침 6시 눈을 뜨자마자 다리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모포를 개고 "4중대 기상입니다!" 외친 뒤 화장실에 가 대걸레를 빨아와 내무실을 청소했다. 물론 그 과정에 걷기는 없었고 달리기 모드만 있었다. 그 시간 복도의 풍경은 웃기고 슬펐다.


머리를 빡빡 민 이등병들이 대걸레를 두 손에 들고 달리고 있는 광경,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안에 있었다. 그런 생활이 한 달쯤 지났을 때 김주호 병장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김병장은 주눅들지도 않고 밝으며 적당히 장난도 칠줄 아는 나를 아꼈다. 이등병에게는 바깥 세계와 연결이 최고의 행복인데, 김병장은 혼자 돌아다닐 수 없는 이등병의 처지를 생각해 같이 사이버지식정보방(=PC방)에 함께 가주고 전화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줬다. 그렇게 2주쯤 지났고 평일 취침시간이었다. "소등하겠습니다. 안녕히주무십시오."


10시 5분에 김병장이 옆자리에 왔다. "야 재밌는 얘기없냐." "재밌는 얘기 말씀이십니까? 생각해보겠습니다." "하하 아무리 잘 안 납니다." "안 나면 군대생활 끝나냐. 빨리 생각해내." 이상했다. 강압적인 모습을 보인 적 없었던 선임인데 태도가 달라졌다. 김병장은 나의 반응이 재미가 없자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로 자신을 웃겨보라는 김병장의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참을 수 없는 건, 다른 부대원들이 있을 때는 한업이 내게 잘해주지만 둘만 있는 상황에서는 달라진다는 거였다. 한번은 삽을 들고 제초작업을 하러 밖으로 나간 날이었다. 30명쯤되는 소대원들과 함께 나갔다. 김병장은 귓솔말로 말했다. "야 너 내 옆에 붙어있어라. 삽질도 옆에서 존나 열심히 해라. 지켜볼거니까." 당시 나는 동기가 없었다. 내 위로는 대부분이 상병과 병장이었고, 바로 위 일병은 내가 김병장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등 이상하리만치 상황이 꼬여있었다. 김병장은 오전 내내 옆에서 내가 삽질을 존나 열심히 하는지 지켜보고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나를 사람이 없는 야외 막사로 데려갔다. "야 여기 앉아봐." 그 막사는 예전에 헬쓰장이었던 것 같았다.


바닥은 모래였지만 구석 구석에는 녹슨 운동기구가 보였다. "재밌는 얘기해봐." 이제는 마주치는 것조차 싫은데 어떻게 재밌는 얘기를 하겠는가. 밝은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였는데. "못하겠습니다. 안 떠오릅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내 볼에 뽀뽀해봐." 귀를 의심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뉴스에서만 보던 군대 내 성추행 그런 건가. "못합니다." 그때 소대장님이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봤다. '소대장님, 이 미친 새끼를 좀 데려가세요. 이 이상한 분위기 느낌 안 오십니까!' 하지만 소대장님은 "야 니들 둘만 놀지말고 들어가서 같이 놀아."라고 짧게 웃으며 말하시며 지나가셨다. 그리고 김병장도 밥을 먹으러 돌아갔다. 난 또 일병 선임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다행히 그 다음주에 김병장은 말년 휴가를 떠났다. 말년 휴가를 떠나고 제대를 하자, 김병장이 떠나서 아쉽겠다는 말을 했다. 난 그때서야 솔직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김일병은 "걔 구미에서 여자들이랑 술마시고 돈 훔치고 소매치기하던 앤데 제대할 때까지 성격 못고치고 가네."라며 고생 많았겠다며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이유는 사람에게 많이 데여서다. 사실 김병장의 일은 아무 일도 아니다. 1도 화상도 입지 않았다.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정말 많다.


(커버 일러스트: 연상호 감독의 <군대이야기 창>의 한 장면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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