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 누나를 찾습니다

2016년 8월 18일

by 김작가

어렸을 적 내 꿈은 PD였다. PD라는 용어를 알까 싶은 나이에 꿈이 PD였다. 올망졸망한 눈의 초등학교 6학년생 김석준 시절이었다. 그때가 2000년이었고, 내가 살던 곳은 읍단위의 시골이었으니 내 입에서 '엄마 아빠 내 꿈은 피디야'라고 말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기특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복 받은 거였다(지금은 모르겠고). 그런데 난 뭘 계기로 PD가 되고 싶었던 걸까.


MBC<느낌표>를 가장 좋아했다. 그 프로그램의 PD가 김영희 피디(남자입니다)였는데, 교양예능이라는 장르는 '거의' 개척하신 분이다. <느낌표>말고도 도로 정지선을 지키면 양심냉장고을 주는 <이경규가 간다>도 성공시켰고 칭찬 릴레이를 유행시켰던 <칭찬합시다>도 만들었으니 교양 예능을 '거의' 개척한 최초의 스타PD라 할만하다.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김영희 PD의 모습이 멋있어보였다. <느낌표> 프로그램 중 '눈을 떠요'라는 코너는 각막 기증을 독려했는데, 첫 방송이 나가고 나자 기장자가 몇배나 성장했다. 성장그래프를 보고생각했다. "PD가 되어야겠다."


고3 때까지 PD라는 꿈은 흔들리지 않았는데(고1 때 한달 정도 소설가가 꿈), 고3때는 그 꿈을 거의 포기했다. 성적 때문이다. PD가 되려면 명문대에 가야 하는데,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아니었다. 명문대는 못가더라고 신문방송학과는 가려고 했으나 신문방송학과는 <남자셋여자셋>(신문방송학과가 배경인 청춘시트콤)의 영향 때문인지 점수가 이상하리만치 높았다. 결국 서울 중하위권(하위권인가?) 소수어과에 입학했다. 명문대를 못가서 명지대에 갔다.


소수어과에 들어간 이유는 취업이 보장된다는 달콤한 속삭임 때문이었지만, 그때 알고 지냈던 방송 작가 누나의 조언에 영향을 받았다. 그 작가 누나는 <도전! 골든벨> 작가였는데, 고3 때 우리 학교 편이었고, 내가 출연을 해서 2번에서 떨어졌지만 촬영이 끝난 뒤 작가 누나와 친해졌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내가 무슨 생각이었을까' 싶다. 내가 누나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니, 누나가 어이없어하며 대신 이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적어줬다. 번호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내 손에는 핸드폰 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이 쥐어져있었다. 그렇게 됐다.


이후에도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수능 전에는 학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진로 상담까지. 수능이 끝나고나서는 대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읽으면 좋은 책들을 추천받았다. 많은 책 중 기억에 나는 건 '체게바라 평전'.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 누나의 이름은 김정민이었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다. 이메일도 바뀌었고, 번호도 바뀌었다. 대학생 때와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미안했는데 은혜를 갚을 날이 오니 연락이 안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PD가 꼭 되겠다는 약속은 못 지켰는데, 그래도 나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까. 덕분에 잘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 누나가 "석준아 꼭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학교에 와.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내 수능등급은 1단계씩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더 고맙다. 나의 PD실패기를 얘기하려다 이야기가 새버렸다. PD 실패기는 내일 다시.


p.s <도전 골든벨> 방송작가였던 김정민님을 아신다면 댓글을 부탁합니다. 그때 나이가 삼십대 초반이었으니 지금은 40살 정도가 됐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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