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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l 01. 2018

개와 사람의 순례길 <개들의 섬>

영화일기 2018년 7월 1일

섬은 바다 건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섬은 어디에나 있다. 섬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고립된 마음은 섬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개를 구하기 위해 쓰레기섬으로 떠난 인물은 섬에서 섬으로 이동한 것과 같다.


쓰레기섬 메가사키로 버려진 자신의 개 스파츠를 찾기 위해 비행기를 몰고 떠난 아타리를 메시아처럼 그리고 있다. 아타리는 비행기를 타고 떨어지는데 머리에 나사가 박히고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는데 그 장소는 크리스천이 박해를 피해 몸을 숨기던 카타콤을 떠올리게 한다. 알록달록한 유리병으로 지어놓은 동굴은 교회를 상징하는 장식인 '스테인드 글라스' 같다.


일본의 언론에서는 트레이시가 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서양에 의한 구원 서사와 다름 없다고 말하지만, <개들의 섬>에서 구원자는 트레이시 한 명이 아니며, 가장 먼저 일어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인 근거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결정적인 사건 해결은 인간이 아닌 개들에 의해서 된다는 점에서 서양에 의한 구원서사는 약한 주장처럼 느껴진다. 개들이 영어를 쓰지 않냐고 되묻는다면, 그건 감독이 외국사람이니까.


오히려 이 영화는 동양일, 서양인, 동무링 함께 힘을 모아 혐오에 대항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역시 아름답다고 말을 하는데, 그 부분은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아름다움을 반드시 분홍색이나 보라색의 파스텔톤으로 아름답게 그려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단순히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표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개들의 섬>의 비주얼은 좀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었다. 그것도 아름답다고 표현하면 정확한 표현인걸까.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이 이 땅에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면, <개들의 섬>은 이 땅에 있는 아름다움을 빌려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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