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작가 Jul 03. 2018

아저씨는 꿈이 뭐냐고 묻지 않았다

[미쟝센 단편영화제] 희극지왕 부문__영화 <시체들의 아침> 리뷰

처음에 중고거래는 절약정신이 남들보다 강한 일부 사람들의 행위처럼 인식되었다. 8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중고나라에서 샀다고 하면 친구들은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있냐?' '어떻게 믿고 나가냐' 같은 말을 하며 신기하게 생각했다. 지금은 중고거래를 합리적인 소비와 판매로만 인식할 뿐이다.


난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중고나라를 끊었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연락을 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약속 장소에 나가고, 그 시간에 좀 더 쉬고 싶었으니까. 한데, <시체들의 아침>을 보니 그때가 생각났다. '그래, 중고거래를 할 때마다 조금 슬펐어.'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에는 신남과 흥분만 있을 뿐이지만, 내가 쓰던 물건을 남에게 건넬 때는 마음이 이상해졌다. 고작 스마트폰이고, 노트북일 뿐인데. 마음 속으로 '잘 살아야 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DVD 사러 왔어요

<시체들의 아침>의 주인공, 성재는 1000장이 넘는 DVD를 중고거래사이트에 올렸고, 구매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전화를 건 어린 목소리의 여자. 중학생? 고등학생? 그 학생은 지금 바로 사러 갈 테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정말 몇분뒤 도착한 구매자는 정말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중학생 민지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만 사고 싶어했고, 성재는 일괄판매하고 싶어했다. "그게 무슨 영화인지는 아냐"고 묻는 성재의 말에 민지는 감독과 스태프 이름까지 줄줄 말한다. 결국 살짝 마음이 움직인 성재는 상영비 6000원을 받고 보고 가라고 한다.


무서울 땐 피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봐.


성재는 한때 감독이었다. 1000장이 넘는 DVD는 성재의 삶이었다. 그러니 DVD를 판다는 것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일을 포기한 채, 자신도 모르는 미래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저씨는 같이 안 봐요?"라는 민지의 말에 성재는 "나는 많이 봤어"라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말해놓고도 흘끔 계속 보는 건 그가 영화가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지겨워서 떠나는 것임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만든 작품을 통해 '소질이 없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DVD를 모두 처분하는 순간까지도 마음이 영화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서운 영화를 좋아하지만 무서워서 잘 못 보는 민지에게 성재는 자신의 팁을 알려주는 순간, 행복해보인다.


모텔에 놔두려고 하는데 야한 영화는 별로 없네요?


결국 일괄로 구입을 하겠다는 남자가 나타나고 그에게 판매한다. 하지만 그 남자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뭔지도 모르고,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야한 영화가 생각보다 적다는 말만 할 뿐이다. 모텔에 디스플레이용으로 DVD를 사려고 했던 것이다. 그순간 성재는 영화를 애기할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났던 민지가 떠올랐을 것이다.자신이 영화를 아무리 봐도 지겨워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에 대해 애기할 땐 신이 나는 것처럼 그 중학생이 말이다. 그리고 성재는 몰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빼고 다른 DVD를 슬쩍 끼워놓는다.


성재는 민지에게 어른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영화가 왜 좋은지, 나중에 영화감독을 하고 싶은 건지 묻지 않는다.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성재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제 영화를 포기하고 떠나지만, 영화를 사랑한 순간 만큼은 정말 행복했다고. 영화는 충분히 한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민지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민지가 커서 무엇이 되든, 영화를 좋아한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매거진의 이전글 개와 사람의 순례길 <개들의 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