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 시절을 보내는 방법 1, 2
계속 일하기
은퇴를 한 60대 들은 신중년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가장 흔한 형태가 재취업과 일상적 여가 보내기이다.
은퇴를 하기 전에는 은퇴에 대한 환상이 있어 빨리 하고 싶었다. 지금은 현직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라고 권한다. 신중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나도 일을 하고 싶었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연금도 나오는지라 괜히 경쟁률만 높이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됐다.
많은 경우 노후 준비가 부족해서 재취업을 원할 것이다. 내 주변의 남자들은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음에도 재취업을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재취업을 하지 않은 경우도 놀고 싶어서가 아니라 재취업이 마땅하지 않아 노는 경우가 많다.
50여 년을 미싱을 한 친구가 있다. 20대 초반에 만났을 때도 이미 A급 미싱사였다.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시작했으니 그때 이미 8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지금은 달인이라 불러도 좋을 수준이다. 본인은 미싱박사가 되었다고 자랑한다. 요즘은 미싱으로 작품도 만든다. 큰 딸은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 둘째 딸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식을 부양할 필요도 없다. 이 친구는 현재도 미싱을 하고 있는데 공장에 70이 다 된 어르신도 계신다고 한다. 자기도 여건만 허락이 된다면 70까지 일하고 싶다고 한다.
퇴직한 남자 교사들 중에 주말에만 골프 캐디를 하는 분들이 여러분 계신다. 평소 골프를 좋아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골프도 치고, 캐디를 하면서 용돈도 번다. 도랑치고 가재 잡고, 정말 일석이조다. 골프장이 지방에 있기 때문에 주말마다 남편이 내려가니 그 와이프들도 행복하다. 밥 안 해 좋고, 남편이 용돈도 갖다 주니 좋고, 일주일에 3일은 떨어져 있을 수 있으니 더 좋단다. 일석 삼조. 요즘 말로 꿀알바다.
본격적인 재취업에 성공한 분도 계신다. 물론 현직에 비해 커리어를 낮춘 것이다. 교사들의 경우 가장 흔한 재취업은 학교 지킴이 일이다. 예전의 학교 수위 대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교문 지킴은 아니고 학생 지도도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경찰 출신이나 교사 출신이 많이 한다. 기술 선생님으로 퇴직 후 전기 기사 자격증 등을 따고 학교에 작업기사로 취업한 사람도 있다. 경비일을 하시는 선생님도 계신다. 지금 70이 되셨는데 여전히 아파트를 관리하고 계신다.
경제적 필요 때문에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경제적 필요가 없어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은퇴자들은 많다. 통계청이 55~79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계속 근로'를 희망하는 응답자의 비중은 2012년 59.2%에서 2023년 68.5%로 상승했다. 평균 근로 희망 연령 역시 71.7세에서 73.0세로 상승했다.
1차 베이비부머 세대(54년생- 63년생)에 이어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가 가장 많다는 2차 베이비부머(64년생-73년생)가 은퇴를 시작했다. 앞으로 이들을 경제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들도 많이 제시될 것 같다. 이제 일하는 60대가 낯선 현상은 아니다.
일상 살아가기
‘열심히 일한 당신, 놀아라’.
예전에 유명했던 광고 문구 패러디다. 은퇴 후 일을 하지 않는 경우 은퇴자들이 선택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다. 많은 은퇴자들이 다양한 여가 활동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요즘 은퇴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열심히 일한 만큼 열심히 논다는 것이다. 은퇴 후에도 현직에 있을 때만큼 바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백수과로사라고 들어봤는가? 은퇴자들이 현직 보다 더 바빠서 과로사할 수도 있다는 우스개말이다. 은퇴 전에 먼저 퇴직한 사람들과 하는 걷기 모임이 있었다. 약속을 잡을 때 백수들이 더 바빠서 현직들이 스케줄을 맞추어 주곤 했다.
내 주변만 보면 바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여행이다. 짧게는 2-3일 걸리는 국내여행에서 한 두 달 걸리는 세계여행까지 다양한 기간과 장소를 누비는 여행을 많이 간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구성도 다양하다. 요즘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여행을 가는 경우도 많다. 카페도 있고 밴드도 있다. 내가 가입한 여행 밴드는 회원이 2천 명이 넘는다. 이곳에는 국내에서 해외까지, 간단한 걷기에서 산악트랙킹까지 다양한 컨셉의 여행이 있다. 여행 전성시대다. 맘만 먹으면 되니 시간이 많은 은퇴자들은 물 만났다.
모임도 많다. 예전에 먼저 은퇴한 분이 말하셨다. "현직일 때는 사모임 3-4개도 부담스러웠는데 퇴직하니 열 개도 많은 게 아니더라." 나도 여러 개의 모임을 하고 있는데 한 달에 한두 번 본다고 해도 어떤 주는 매일 모임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은근히 바쁘다. 은퇴하면 시간이 많기도 하지만 소속된 곳이 없다 보니 다들 모임에 열심인 편이다.
운동도 많이 한다. 한 선배는 현직일 때부터 스포츠 댄스를 열심히 했다. 은퇴 후에는 일주일 세 번 체육센터에서 춤을 춘다고 한다. 은퇴 후 가장 중심적인 활동이 운동이라며 하루 2-3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는 선배님도 계신다. 가볍게는 근처를 걷는 것부터 20층이 넘는 아파트 계단 오르기까지 운동에 진심이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은퇴 후 운동은 필수적인 루틴이 되고 있다. 필라테스를 배우는 사람도 있고 아파트 내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하는 사람도 있다. 더 간단한 방법으로는 집에서 유튜브 유 선생과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내 얘기다. 요즘 유튜브에는 따라 할 수 있는 운동이 넘쳐난다. 일본에서도 노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들이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우리도 근테크라는 말이 나올 만큼 운동이 필수가 되었다.
일상을 보내는 것에는 노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은퇴 후 생긴 여유를 가족을 위해 쓰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직장 생활을 한 여자들의 경우 자식들을 잘 챙겨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만 해도 포장음식과 배달음식이 없었으면 애들을 굶겼을지 모른다. 교사들은 남의 자식 챙기느라 내 자식은 제대로 못 챙겼다는 부채감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 은퇴 후 자식들 밥을 해주는 게 의외로 행복하다는 친구도 있다. 늦게나마 엄마 노릇하는 것 같아서 좋다고 한다. 직장 다닐 때 몰라던 살림의 기쁨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이제는 김치뿐만이 아니라 장까지 직접 담근다는 사람도 있다.
은퇴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일상생활도 다양해졌다. 모임도 하고, 살림도 하고, 식물도 키우고, 텃밭도 가꾸고, 여행도 다닌다. 좋게 표현하면 다채로워진 것이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잡스러워졌다. 직장 다닐 때는 일을 중심으로 생활의 선택과 집중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여러 가지 모임과 잡다한 일상사로 이것저것 하는 일은 늘어났지만 파편화된 느낌이다.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는데 지나고 보면 남는 게 없다. 의미 없는 일상을 바쁨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일상을 보내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하신 내가 좋아하는 교감 선생님이 계신다. 퇴직 후 어떻게 지내실 거냐고 물었다. 일하느라 챙기지 못했던 혼자 사는 남동생과 아프신 시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싶다고 하셨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직 후 그동안 못 해본 것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겠다고 한다. 그런데 은퇴 후에도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살겠다는 대답에 ‘참 좋은 사람이구나.’그런 생각을 했다. 일상에 충실한 사람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일상의 정체성이 강한 사람들이 일이나 사회적 정체성이 강한 사람보다 은퇴 후 생활에 더 적응을 잘한다. 소소한 일상도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에 파묻혀 살아온 지금,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바쁘고 활동적인 은퇴 생활이라지만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있다. 아직은 목이 마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