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주기가 필요하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해가 질 무렵 저 멀리 보이는 것이 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시간, 저녁인지 밤인지 경계가 모호한 시간을 말한다. 지금 60대 초반의 나는 중년인가, 노년인가? 지금이야말로 인생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은 아닌가?
예전에 50대 중반에 명퇴한 선생님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할머니라 불리고 나니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다며 학교를 떠났다. 학생들 입장에서 50대 후반의 교사는 자기 할머니와 비슷한 또래인 경우가 있다. 할머니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런 이유로 명퇴를 하다니 한편 안타깝고,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막상 내가 그런 말을 들으니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그때는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었다 반성했다. 품위 있게 노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자며.
은퇴 후 삶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50+'에서 강사로 활동했던 선배를 만났다. 은퇴 후 삶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선배가 해준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평균수명이 늘면서 이제는 은퇴한 5060 세대를 노년으로 규정할 수 없고 새로운 인생주기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내가 너무 빨리 포기를 했구나. 아직은 노인이 아니라고 버틸 수 있겠는데?'
<나이 듦 수업>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현 노인복지법에 노인은 65세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요, 이게 1980년대에 정한 겁니다. 평균수명이 50이 안 됐을 때에 65세 이상을 시니어, 노인이라고 규정한 거죠. 지금 평균수명이 두 배나 늘어났는데 기존의 생애주기를 고수하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5060 시기를 성인기도 아닌 노년기도 아닌 별도의 구획과 영역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애주기도 움직인다
보통 우리는 생애주기를 말할 때 유아가-아동기-청소년기- 중장년기-노년기로 구분한다. 여기서 아동기나 청소년기는 근대 이전에는 없던 생애주기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많은 동화들의 중세 버전이 잔혹동화라는 얘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중세에는 지금처럼 아동기를 특정하거나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초창기 시절을 묘사한 글이나 사진을 보면 5-7 새 정도 되는 아이들이 공장에서 어른들과 다름없는 노동시간을 견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이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나이는 13세이다. 지금 보면 기껏해야 중학교 2-3학년 나이다. 춘향이와 몽룡이가 월담을 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사랑을 맹세했던 나이는 16세다. 지금으로 치면 중3의 나이다. 그래도 우리가 ‘저 어린것들이,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라며 비난하지 않는다. 중세에는 그 나이면 결혼해도 괜찮은 나이였다. 즉 성인으로 간주되었다.
<아동의 탄생>이라는 책을 쓴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근대 이전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아동은 없으며 오늘의 아동은 역사적 발명품이다. 아동이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 독자적 발달 시기를 거치는 인격체라는 생각은 근대교육의 발달과정에서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근대 전에는 아이들만의 놀이문화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카드, 도박 같은 놀이를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근대가 되어서야 아동기에 대한 관념이 생겨났다. 천진난만함이 아이의 특성으로 인식되었고 아이를 귀여워하는 감정도 생겼다. 비로소 아이들은 보호하고, 귀여워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아동기라는 인생주기는 인간의 신체발달 과정의 필연적인 단계가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주기다. 더 나아가 아동이 보호대상이며 귀여운 존재라는 생각도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 초중반에는 아동,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진입하는 시기가 늦어졌다면, 이제는 성년기에서 시스템 밖으로 은퇴하는 노년기가 늦춰지는 시대가 되었다. 생산력의 발달로 필요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아동기가 생겼다면 지금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급격한 노령화와 출산율 감소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5060 세대를 방치하기 어려워졌다. 1차 베이비부모 세대가 은퇴하자 나라 경제성장률이 0.34%씩 낮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올해부터는 가장 인구가 많은 2차 베이비부머의 퇴직도 시작되었다.
요즘 ‘마처세대’라는 말도 등장했다. 5060 세대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을 받지 못하는 처음세대가 될 거라는 신조어다.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세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노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 가면 길거리 곳곳에서 일을 하고 계신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과 동시에 사회경제적인 이유로도 새로운 생애주기가 필요해졌다.
신중년이 온다
<나이 듦 수업>에서 남경아는 5060 세대의 명칭을 여러 가지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 무대, 세 번째 인생, 앙코르 커리어, 제2성인기 등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50+'일 것 같다. 서울시에서 각 구역별로 50+센터를 만들어 은퇴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은퇴자들도 여기서 어반스케치도 배우고 사진도 배우고 있다. 은퇴 후 전반적인 삶의 설계에 대한 강의를 들은 사람도 있다. 여기서 웰다잉에 대한 강의를 듣고 감명을 받아 연명치료거부 등록을 했다는 친구도 있다.
오팔 세대라는 용어도 있다. 오팔(OPAL)은 ‘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앞 글자를 딴 조어로, 김난도 교수가 2020년 10대 트렌드로 제시한 용어다. 그는 5060 세대를 은퇴 후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하고 젊은이들 못지않은 활발한 여가 활동을 추구하는 세대라고 분석했다. 과거 5060 세대를 상징하는 색이 노년을 상징하는 ‘실버’였다면, 지금의 신중년은 형형색색의 ‘오팔’의 색을 닮았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신중년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이 용어는 지난 2017년 정부가 '신중년 인생 3 모작 기반 구축 계획'을 제기하면서 5060 세대를 '신중년'으로 명명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고 재취업 일자리 등에 종사하며 노후를 준비하는 과도기 세대(5060 세대)를 말한다. 50~69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소비측면을 부각한 오팔세대나 생산인구 측면에서 제시된 신중년이나 용어 자체는 선뜻 호감은 가지 않는다. '50+'만큼 세련된 느낌도 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이름을 가지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제시된 신중년이라는 용어로 이 시절을 호칭하려고 한다. '음, 아직도 공무원 때를 벗지 못했나 보다. 공식적인 것을 우선하는 것을 보면. '
신중년. 이제 나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가 아니라고 버틸 수 있는 당당한 변명거리가 되겠다. 물론 손주를 볼 수 있다면 기꺼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원래 인간의 감정은 양가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모든 엄마가 젊은 사람이 아니듯 모든 할머니도 노인은 아니다. 나의 할머니는 손주전용이다. 사회적으로는 노인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