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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방 Sep 16. 2024

연령차별주의

영국에서는 나이를 물어보는 것을 굉장히 무례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런던 여행을 할 때 에어비앤비에서 묶은 적이 있다. 집주인이 60이 넘어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아침식사를 제공했기 때문에 아침 시간에 서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중에 아이들 얘기도 하고 가족사진도 보여주면 좀 친해졌다. 그래서 우리의 습관대로 무심결에 나이를 물어봤다. 그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 곤란해하면서 끝까지 대답을 피하셨다. 우리도 많이 당황하면서 사과를 한 적이 있다. 속으로는 ‘나이를 밝히는 것이 그렇게 민감할 일인가? 서양사람들도 은근히 유난을 떤다’는 생각도 했다.


이 문화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일본계 영국 작가 브레디 미카코의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를 읽었을 때였다. 이 책은 영국에서 20년 이상을 살고 노동자계급의 남편을 만나 살고 있는 작가가 썼다.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계급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은 나이로 차별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즉 취업에서 나이 제한을 할 수 있어도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나이를 고려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실력은 가장 좋고 경력도 풍부한 레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63세 아저씨다. 면접관도 일에 관해서는 레이에게 물어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8명의 파견직 중에 7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면접에서 레이만 떨어진다. 젊은 사람에게 밀린 것이다. 레이는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다. 이 사건을 두고 작가와 남편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연령차별주의(ageism)는 이제 고용 현장에서는 없어졌으니까." 남편이 말했다.

 내가 대답했다. "없어졌다고는 해도 진짜 없어졌을 리가 없잖아. 아니, 사실은 있는데요." 문득 우리는 어찌하여 "나이 때문이야."라고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걸까 싶었다...... 만약 내가 레이의 가족이었다면 정치적 올바름에 반하는 이야기일지라도 내 생각을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나이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신선했다. 연령차별주의라는 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연령차별주의 금지라니! 연령으로 차별하는 것이 정치적 올바름에 반하는 일이라니! 우리는 나이가 많으면 당연히 취업에 제한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할 때도 나이가 많은 것이 불이익이 된다는 말이 있다. 대학생들이 졸업예정으로 취직하기 위해 휴학이 필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로스쿨 입시에서도 나이 많은 사람은 암암리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말도 있다. 젊은 사람들도 그런데 나이 든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서양 사람들은 나이로 대접받고 싶어 하지도 않고, 나이로 차별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로 대접받고 싶어 하고 나이로 차별받아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제 우리도 관점을 바꿀 때가 되었다. 나이로 제한을 두는 것을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없애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먼저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내가 결혼했을 때 시어머니께서 ‘이제 나는 늙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그 나이가 53세였다. 지금은 그 나이에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제 나이에 0.7 울 곱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도 간혹 듣는다. 기존의 연령 개념은 70세 평균수명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평균수명 100세를 기준으로 하면 0.7을 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민망하지만 감사하게도 나는 아직 4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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