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giso, 커뮤니티 호텔
도쿄 야나카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촌과 같이 지금까지도 옛 풍경이 남아있는 곳으로,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보전되어 있습니다. 에도시대의 절과 신사로 둘러싸여 있기에 '사찰의 마을'이라고도 불리기도 해요. 절을 비롯한 오래된 건물들이 보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지역이 도쿄 대공습과 관동 대지진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도쿄의 오래전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려 볼 수도 있어요.
최근에는 이 지역에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방들이 늘어나고 있고, 거리 내에도 다양한 업종이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을 비롯해 일본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 지역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목조다세대주택 ‘Hagiso'는 지역의 거점공간이자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Hagiso는 건축가 미야자키 미츠요시가 직접 10년간 거주를 하면서, 지역의 성격을 토대로 운영방안까지 제시한 빈집 리모델링 사례입니다. 60년 전에 지어진 목조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최소 문화 복합시설’로 카페(Hagi cafe)와 갤러리(HAGI art), 대여 공간(HAGI room), 건축 사무소(HAGI Studio) 등으로 구성됩니다. 칠흑같이 검은 빛나는 벽이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1955년에 지어진 Hagiso는 2층짜리 목조 다세대 임대주택이었어요. 2000년 이후로 잠시 방치됐다가 2004년 도쿄 예술대학 학생들이 싼 값에 빌려 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활기를 찾아갔습니다. 개성 넘치는 예술대학 학생들의 생활터전으로 오래 자리할 것 같던 Hagiso는 안타깝게도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사용이 어려워졌고, 집주인은 Hagiso를 허물기로 결정해요. 당시 Hagiso의 주민이던 학생들은 Hagiso 건물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겠다며, 20여 명의 학생들의 작품들로 꾸며진 ‘하기엔날레’를 열어 전시를 진행합니다. 3일간 1,500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고 해요.
이에 Hagiso의 주민이자, ‘하기엔날레’를 주최한 미야자키 미츠요시는 동일본 대지진 후 변해가는 동네를 마주합니다. 그가 자주 다니던 목욕탕은 어느새 분양 주택으로 탈바꿈해 있었죠. Hagiso마저 사라져 버리면 자신의 젊은 날의 추억도 다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동네가 모두 변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던 그는 집주인을 찾아가서 리노베이션 안을 제안했고, 결국 지금의 Hagiso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미야자키는 먼저, 1층을 카페를 중심으로 하여 갤러리가 있는 공간으로 고쳐나갔습니다. 오래된 나뭇결의 정감 어린 분위기와 오밀조밀한 만듦새, 좁은 복도와 대들보 등은 고스란히 남겼습니다. 기존의 부엌 공간은 오픈 키친을 완비한 Hagi cafe로, 거실 공간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갤러리 Hagi art로, 방은 호텔 hanare의 리셥센 공간으로 새로 탄생했습니다.
현재 Hagiso 내에서는 Hagi cafe, 반찬 가게 TAYORI, 동네 전체를 호텔의 일부로 이용하게 한 hanare 호텔, 햄버거 가게 레인보우 키친, 배움의 공간 클래스, 건축 사무소 Hagi studio 등을 운영하고 있다.
‘Hagi cafe’는 채소가 듬뿍 들어간 아침 식사를 제공합니다. 일본 각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여행 조식(Traveling Breakfast)이 인기입니다. ‘TAYORI’는 반찬 가게이지만 무척이나 세련되었어요. 다양한 반찬들을 포장해서 갈 수도 있고,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공간이 마련돼 있기도 해요.
호텔로 사용하는 ‘hanare’ 역시 지은 지 50년 이상 된 민가를 개조했습니다. 5개의 방은 좁지만 폭신한 이불과 정갈한 실내가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이 방에 앉아 가만히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 하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와요. 야나카의 친근한 매력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hanare에는 공용 화장실이 있을 뿐, 욕실과 식당은 없습니다. 식사는 hanare를 나와 Hagi cafe에서 하고, 샤워나 목욕은 야나카의 공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시스템입니다. 야나카 마을 전체를 호텔로 생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하루 종일 호텔 안에서 편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야나카의 매력을 야나카를 산책하며 최대한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동선을 설계한 것이에요. 이런 ‘어우러짐’이야말로 Hagiso에 사람들이 찾도록 하는 힘입니다. Hagiso가 외관을 검게 칠한 것도 검은색이 세련돼서라거나 디자인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때마침 Hagiso 앞에 위치해 있는 집의 외관이 검은색이었던 탓에 동네와 골목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Hagiso의 미야자키 대표는 “동네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 Hagiso가 오래 자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라고 말합니다. 오로지 관광객을 위한 비즈니스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동네를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에게도 필요한 서비스를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입니다.
탐방을 진행하면서 Hagiso에서 운영하고 있는 Hagi cafe와 hanare 리셉션을 비롯하여 건축 사무소 Hagi studio까지 각각의 직원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프로젝트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어떠한 일을 하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중에서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Hagi studio에서의 인터뷰에서는 더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Hagiso Project를 진행하는 주최자의 입장에서 기획의도부터 진행과정의 어려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Q: "Hagiso Project의 기획 의도는 어떤 것이었어요?"
A: "Hagiso Project의 기획 의도는 이용자들이 동네 전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에요. 호텔 안에서만 경험하는 것만이 아닌, 마을 전체가 공생하고 있는 것을 경험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죠. 이러한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공생해가는 프로젝트는 Hagiso 이외에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Q: "Hagiso Project를 하면서 중요시 여기는 점은 무엇인가요?"
A: "일 년에 10번 쯤 행사를 열고 있어요. 행사 및 전시의 기본은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시를 할 때에도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들을 기획하곤 하죠. 9월 초까지 진행하는 어린이 도서 전시는 주민들이 추천하는 책을 하나씩 가져와 Hagi art에 전시했어요. 추천서와 함께요. 책을 읽은 이는 뒷면에 달린 메모장에 감상문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 책을 추천한 사람이 뒷장을 펼쳤을 때 적힌 글들을 보고 놀랄 거예요. 게다가 이런 행사는 지역 커뮤니티 형성에서 기여하죠.”
Q: "이렇게까지 Hagiso Project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특히 주민들의 의견과 갈등이 많았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클레임이 많았어요.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평소에 만나면 인사하고 늘 친절한 태도로 대했죠. 천천히 신뢰를 쌓아왔어요. 앞집, 옆집 다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밤 9시 이후엔 소리를 내지 않고 있고, 콘서트가 열릴 때는 미리 찾아가 양해를 구하고 티켓을 선물하고 옵니다. 매일 꾸준히 동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Hagiso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Q: "앞으로 Hagiso Project의 방향성과 목표가 궁금해요."
A: “저희는 억지로 오래된 민가를 개조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개조를 바라는 분이 상의를 해주시면 그분이 원하는 방식에 최대한 가깝게 개조해드리는 거지요. 카페를 더 늘일 생각도 없어요. 개발이나 개척이 아니라, 주민들의 희망사항을 듣고 함께 바꾸어 나가는 거지요. 글로벌한 동네를 개척하겠다는 것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로컬을 사랑하고 가꿔가면 저절로 글로벌이 된다고 생각해요. 야나카를 지속적인 상업 도시로 바꾸어가기보다, 다행히도 전쟁 피해가 적어 오래된 민가가 남아 있는 점을 살려서 야나카의 매력을 가꾸는 것이 국내외의 팬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 저편에서 일부러라도 찾아오는 그런 기적적인 마을을 만들고 싶어요.”
라는 답변과 함께, 현재 반찬 가게인 TAYORI의 쿠키를 만드는 공간을 계획 중이라며, 모델과 도면을 보여주시며 인터뷰를 마무리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