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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Gray Nov 13. 2019

42. 소문난 잔치보다는 집밥이지

(Week 21) 행복은 집 앞에도 있었어


미국 남부의 조지아에도 가을은 온다. 화씨 90도를 넘나드는 폭염 일수가 역대 기록을 경신하느니 마느니 해도 결국 올 것은 오고야 말았고, 이제는 잠시 허락된 가을을 만끽할 때이다.


어딘가로 떠나기 전에는 습관처럼 구글에 묻는다. 시작은 그저 기본적인 지역 정보를 얻기 위함이나, 결국엔 늘 필요 이상의 사진을 찾아보고 화려한 미사여구에 현혹된다.


"Most beautiful college campus in the world is in Georgia"


여행을 앞둔 시점, 과도한 기대와 조사는 뜻밖의 기쁨을 앗아가 버리고는 뻔한 즐거움만을 남겨놓는다. 이미 절정을 맛본 자에게 남은 것이라곤 실망뿐임을, 그걸 알면서도 빠져들기 쉬운 구글의 딜레마에 유혹당한다.




가을빛을 찾아 떠난 이번 나들이 역시 이런 레퍼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도착한 곳은 조지아주 로마(Rome) 시에 소재한 베리 칼리지(Berry College). 넓은 땅덩어리를 찾아낸 뒤 이름 짓기가 어려웠는지 이곳엔 로마도 있고, 아테네도 있고, 더블린도 있고, 맨체스터도 있다.


27,000 에이커의 드넓은 유럽풍 캠퍼스에는 사슴이 뛰어놀고 가을이면 오래된 고목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곳이라 기대했건만, 막상 마주한 것은 미국의 흔하디 흔한 넓은 평야, 몇 마리 사슴과 다람쥐, 어디선가 본 옛날 건물들, 어디에나 있을법한 단조로운 나무들 뿐 구글 이미지 그 이상의 무엇을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또다시, 뻔한 즐거움만 남아버렸다.




이동한 시간의 반절만을 보내고는 터벅터벅 돌아온 길, 그런데 지친 마음을 안고 도착한 집 앞에서 뜻밖의 기쁨이 펼쳐진다. 그 사이 변한 건지, 여태 못 본 건지 안 본 건지. 정작 화려한 가을빛은 집 앞에, 이 곳 애틀란타 도처에 깔려 있었다. 내친김에 찾아간 동네 공원에는


형형색색의 나무가 있고,


신비로운 호수도 있고,


거위, 오리, 다람쥐, 심지어 사슴도 있고,


밝은 표정의 사람들과 쉴 자리가 있다.


이들을 집 앞에 두고, 대체 무얼 더 찾아 떠났던 것일까.




몇 해 전 아이와 떠난 첫번째 해외여행. 12월 서울의 혹독한 날씨를 피해 찾아간 홍콩은 나 역시 처음이기에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났건만 마주한 것은 어딜 가나 들끓는 인파, 이미 수백 번은 본 듯한 스카이라인, 명동과 다름없는 딤섬의 맛, 그리고 습한 날씨에 젖어 무거워진 발걸음.


며칠간의 고생 끝에 돌아온 아파트 앞마당에는 소복이 눈이 쌓여 있었다. 아이는 부리나케 달려가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고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막을 가로질러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아이에게 홍콩은 눈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나 보다.


물었다. 이번 홍콩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이었는지. 답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눈사람!"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못 본 체 지나쳐온 집 앞에도 있었어. 이미 답을 주었건만 나는 또다시 구글을 켜고, 더 나아 보이는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저 멀리, 더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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