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29) Into the unknown
2016년 12월, MBA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마지막 방학 동안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감명 깊게 본 영화나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인생의 버킷 리스트처럼 고이 간직해온 로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여행을 준비하기 전에는 마추픽추 정도 알고 있었을 뿐 대부분의 나라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왜 남미였을까.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를 남미로 이끈 것은 '지금 아니면 언제 남미를 여행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대척점, 즉 지구를 관통하면 이르게 되는 180도 반대편에 있는 땅. 계절도 시간대도 정반대인 그 나라들을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여행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남미의 주요 여행지를 살펴보니 그 유명한 마추픽추 외에도 온 세상을 거울처럼 비춰 내는 우유니 사막, 티티카카라 불리는 하늘 호수,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 나이아가라가 하찮아 보인다는 이과수 폭포, 하이커들의 천국 파타고니아 등 흥미로운 곳으로 가득하였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 신대륙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여행에 앞서 나라별 정보를 수집하고, 루트를 짜고, 각종 투어나 액티비티 후기를 읽어보며 지내기를 6개월, 흥분된 마음속 한 가지 고민에 휩싸였다.
'남미 대륙의 남쪽 끝에 위치한 파타고니아 지역까지 갈까, 말까...'
아무 생각 없이 자연 속을 거닐기를 좋아하는 성향상 빼놓을 수 없는 곳임이 분명했지만 문제는 시간과 예산의 제약이었다. 초안으로 짜둔 페루-볼리비아-칠레 북부에 이르는 동선에서 크게 동떨어져 있었고, 몇 박 며칠의 하이킹을 하려면 텐트, 침낭 등 구비해야 할 장비들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를 생각하면 무리해서라도 가는 게 맞겠지만 현실을 생각하자니 다소 버거운 것도 사실이었다.
몇 달간의 긴 고민 끝에 결국 파타고니아 지역은 포기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쉬움을 안고 떠난 새로운 세상에서 3주 동안 잊지 못할 경험으로 가득 찬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당시 쓴 여행기는 끝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가 될 만한 일은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곳에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파타고니아를 돌아보지 않은 것은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다.'
당시로서는 매우 솔직하고도 심각한 심경이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낯이 뜨거워진다. 내가 뭐라고 내 미래를 오늘 빤히 내다보고, 뻔뻔하게도 우울함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는 평생 일만 하며 살 것처럼, 혹은 멀리 여행할 형편이 안될 것처럼 속단한 것은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는지.
오히려 모든 것을 한 번에 누리는 기쁨 대신, 언젠가 배낭을 짊어 메고 또다시 그 땅 위에 서서는 지나온 시절을 곱씹으며 하이킹에 나선다는 바람을 남겨둔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지만, 훗날 좋은 날이 찾아온다면 파타고니아로 떠날 것이라는 상상 하나쯤 남겨둔 것도 제법 괜찮은 선택 아니었을까.
MBA를 마치고 미국 생활을 정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한 시절이 끝나감을 사무치게 아쉬워하였다. 혼자 떠나온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지만 어딘가 가슴 한 구석 허한 느낌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애틀란타의 햇살, 공기, 이 여유로움을 내가 다시 느낄 날이 있을까.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는 텅 빈 캠퍼스를 거닐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인사하였다.
'안녕, 나의 애틀란타.'
하지만 그날의 인사가 무색하게도 정확히 2년 뒤, 나는 같은 땅 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 문자 그대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남편의 유학길에 동행하지 않은 아내는 그 시간 동안 무척이나 열심히 살았나 보다. 그리고 보란 듯이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MBA 프로그램에 선발되었다. 나는 이미 작별을 고했던 애틀란타로, 한 번쯤은 가족들과 함께 살아보고 싶었던 그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처음 아내의 소식을 접한 그날부터 이미 하고 있었다. 결정에 서투른 나였지만 일말의 주저함이 없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아쉬움 덕분이었다. 첫 유학 생활을 함께 하지 못했던 아쉬움, 이런 기회를 두번씩이나 놓치고 싶지는 않다는 절박함은 모든 잡음을 쉽사리 제거해 주었고, 휴직으로 돌진하여 오늘을 살게끔 해준 추진력이 되어 주었다.
마흔 살의 휴직, 물론 내일이 불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핍은 늘 무언가를 만드는 동력이 되고, 아쉬움은 결국 바람이 되어 생각지 못한 일을 전개시키지 않았던가. 미래(未來),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았고 그래서 알 수 없다. 때문에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끝도 없이 걱정할 일 만도 아니다.
살다 보면 길이 나온다. 꽃길일 수도 있고, 가시밭길일 수도 있다. 걷다 보면 다시 여러 갈래의 길이 나온다. 가시밭길일 수도 있고, 꽃길일 수도 있다.
속단은 오만함이다.
2019년 12월, 아내의 MBA 과정 중 첫 번째 방학을 앞두고 여행을 준비하였다. 고민할 것 없이 우리는 남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탱고, 이과수, 메시 혹은 마라도나, 소고기, 말벡, 그리고 파타고니아. 대한민국의 대척점에 위치해 계절도 시간대도 반대인 머나먼 땅, 그리하여 언제 한 번 와볼 수 있을까 하는 희미한 바람을 간직하게 해 주던 그 나라로.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파타고니아 지역의 작은 마을인 엘 칼라파테에 무려 5일이나 머무르는 일정을 짜주었고, 그중 하루를 내게 자유시간으로 선물해 주었다. 그 귀한 시간 나는 주저 없이 하이킹에 나섰다. 3시간 버스로 이동하여 엘 찰텐이라는 마을에 도착한 뒤 왕복 6시간 피츠로이(Fitz Roy) 하이킹을 하고는 다시 버스로 3시간을 이동하는 당일치기 코스였다.
하이킹을 하는 날이면 수시로 날씨를 체크하며 날이 맑기를 간절히 바라곤 한다. 평생 한 번 와볼까 말까 하기에 기왕이면 파란 하늘 아래 대자연을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구름이 낄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비 예보는 없었기에 피츠로이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하이킹 코스 입구에서 마주한 하늘, 반은 파랗고 반은 하얗다. 피츠로이가 있는 방향은 안타깝게도 온통 구름으로 뒤덮인 하얀 빛깔을 나타내고 있었다. 반대편 파란 하늘이 피츠로이 위의 하얀 구름 떼를 밀어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피츠로이는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뒤덮인 평범한 봉우리의 흔적만이 존재할 뿐, 기대했던 세계 5대 미봉의 자태는 결코 아니었다.
돌아가는 버스 일정을 감안하면 전망대에 앉아 쉴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선글라스가 벗겨질 정도의 강한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건만 피츠로이는 끝내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 무심한 하늘을 보며 한숨지었고, 웃음지었다.
'네가 나를 또다시 오라 이끄는구나.'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피츠로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니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아름다움에 심취해 문득 실감하게 되니 그토록 갈망하던 파타고니아를 걷고 있었다. 살며시 드러나는 파란 하늘이 다음 여행에는 칠레 쪽 루트, 토레스 델 파이네로 들어오라 손짓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