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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Mar 17. 2018

내 안에 자리 잡은 수치심 (Shame)

내 마음에 은근히 영향력을 미치며 소금 역할을 하는 수치심을 살펴봅시다

  누구나 살다가 부끄러운 상황을 맞닥뜨려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입에서는 "아이고 창피해", "쪽팔려", 또는 "면목이 없네" 같은 말들이 자신의 의지보다 앞서서 나오고 있는 것을 목격한 경험도 함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들과 차별되는 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수치심"에 의해 얼굴이 빨갛게 되고, 얼굴을 가리고, 또는 그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우리의 감정 조절, 반응, 그리고 가치 체제 등 다방면에 폭넓게 영향력을 미치는 수치심(Shame)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헬렌 루이스(Helen Lewis, 1971)는 현대인들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수치심을 부정하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에 살고 있고, 현대인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수치심을 "어색하다", "충격적이다", 또는 "놀랍다"라는 보다 듣기 편한 언어로 대체해서 표현함으로써 자신 안에 내재한 수치심을 숨기려고 하며, 현대인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마음 속에 있는 수치심을 아예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수치심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다루고, 타인들과 공유하기에는 무척 예민한 감정(또는 심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속에 수치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얼굴이 굳어(Frozen Face) 있거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거나, 얼굴을 가리고 숨기려고 하거나, 타인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수치심은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에 걸쳐 내면에 자리 잡게 되는(Internalized) 일종의 만성적인 감정입니다. 가령 카페에서 테이블 위에 있던 컵을 떨어뜨렸거나, 수업 시간에 발표할 때 실수를 했거나, 체육 대회에서 뛰다가 넘어질 때도 물론 일종의 수치심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수치심은 그런 순간적인 수치심이 아니고, 한 번 마음 속에 형성되어 굉장히 오랫동안 마음에 머무는(때로는 평생) 그런 수치심입니다. 죄책감과 비교해 볼 때, 죄책감은 자신의 어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짧은 순간 동안 느끼는 자책적 감정이지만, 수치심(Shame)은 어떤 잘못된 행동이나 결과 등에 의해서 자기 자신(Self)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형성되어 그 감정이 굉장히 오랫동안 유지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Doehring, 2015). 그래서 수치심이 자신도 모르게 쌓이게 되면 낮은 자존감, 자신감 결여, 자책감, 트라우마, 열등감, 죄책감, 무기력함, 불안함 등 여러가지 독성적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번 형성된 수치심은 그 사람에게 조절하기 힘든 감정과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느낌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Pattison, 2000). 수치심은 다양한 반응경로를 통해 형성되기도 하는데, 수치심을 갖고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꼭 그 사람이 수줍음이 많거나 내성적인 사람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Pattison, 2000). 그리고 내면화된 수치심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반응하는 특정한 습관적인 행동패턴을 형성시키기도 합니다 (Pattison, 2000).  

 


프로이드는 사람의 마음이 Id, Ego, 그리고 Super-Ego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Id는 사람의 본능인 식욕, 보상, 그리고 성욕 등을 추구하도록 해서 그 사람이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Super-Ego는 그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숙되고 도덕적인 태도를 갖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가령 법이나 규칙의 중요성을 마음 속에 내재화해서 적용하게 이끌죠. Ego는 그 사람이 안전한 영역 안에서 Id가 요구하는 본능을 충족할 수 있게 행동이나 판단 등을 조절해 줍니다. 즉, Ego는 Id와 Super-Ego사이에 서서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도록 도와주며, 본능적 욕구와 도덕적 판단 등을  적절히 조화시켜서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이 보다 적합하고 안전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게 조율해 줍니다.  즉, Id와 Super-Ego가 시소의 양끝에 앉아서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면 Ego는 그 중심에서 양쪽의 무게를 시시각각 재고 비교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Ego와 Super-Ego사이에 긴장감이 팽팽해져서 Ego가 Super-Ego의 요구사항이나 수준을 못따라 가게 되면 수치심이 형성될 수 있다고 합니다 (Piers & Singer, 1953). 그리고 이런 식으로 수치심이 마음 속에 많이 자리잡은 사람일수록 습관적으로 나르시스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Broucek, 1982, Morrison, 1983).   



사회적인 차원에서 볼 때, 사람 간의 거리와 바운더리도 수치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구성원 간의 협동과 우애를 중시해서 상대적으로 개인 간의 거리가 좁은 사회라고 해서 서로 연합이 잘되는 것은 아니며,  단편일률적인 사회 규칙이 강요되는 공동체 중심의 집단주의적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오히려 건강한 정체성을 갖고 사는데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Durkeim, 1905). 그리고 지나친 규례와 예절 등을 강요하는 선진국 사회에서 오히려 사람들은 쉽게 수치심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 귀족들이 성에서 식사할 때 여러 가지 포크와 나이프를 형식에 맞추어서 식사를 해야만 교양 있는 신사나 숙녀로 간주할 텐데, 아마 많은 독자분들은 이런 식사자리를 웬만하면 사양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원칙이나 도덕률, 매너의 기준을 정하고 사는데, 본인이 이런 기준에 맞추어 살고 있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무기력함(Powerless)이나 열등감, 잘못된 감정 등을 느끼게 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마음 속에 점차 수치심이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까다로운 도덕률이나 원칙을 정하고 사는 것이 본인이나 주변인들에게 항상 그렇게 좋은 결과만 내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2002년 월드컵에서 본 것처럼, 구성원 간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면 서로 강하게 연합하게 되고, 반대로 무기력함이나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 서로 멀어지는 관계가 된다고 합니다 (Scheff & Retzinger). 예를 들어, 한국시리즈에서 9회에 홈팀 타자가 역전 홈런을 쳤을 때, 홈팀 관중석의 반응과 원정팀 관중석의 반응을 비교하면 쉽게 이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 내에서 볼 때, 아이들이 자신들 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이나 경험을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못하게 될 때 수치심을 내면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Nathanson, 1987). 조금 우려되는 것은 이렇게 내면화된 수치심은 때로 부모님 세대에서 아이들 세대로 대를 거쳐 전해지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Kaufman, 1996). 우리 사회에서 종종 목격되는 "한(恨)의 정서"라든지, 한국 주부들의 "화병증상" 등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그런 특정한 성격의 수치심과 조금은 연관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수치심이 마냥 나쁘고 마음에 독성을 내뿜는 안 좋기만 한 감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사실 수치심은 순기능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백화점에 있을 때 갑자기 정전이 된다면, 어떤 사람들은 눈 앞에 있던 물건을 훔쳐가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시 전기불이 들어올 때까지 물건을 훔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릴 것입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눈 앞에 있던 값비싼 물건들을 훔칠 용기가 없어서 물건을 안 훔쳤을까요? 그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한 가장 강한 감정 중 하나는 바로 "수치심"입니다. 반대로 정전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물건을 훔친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해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Shameless) 사람들이라서 부끄러움 없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수치심은 이렇게 우리 행동이나 말에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기도 합니다. 차량이 적절한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의 사용을 통해 안전하게 운행되는 것처럼, 사람도 적절한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야 상황에 맞는 도덕적이고 성숙한 행동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교육을 통해 적절한 상황에서 올바른 수준의 수치심을 느낄 수 있게 교육을 시키면 폭력차단, 범죄예방, 그리고 상호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에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수치심은 여러분의 마음 속에 내재된 여러분만의 고유한 마음의 한 조각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마치 칼로 도려내거나 약으로 바이러스를 없애듯이 제거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자신의 마음 속에 어떤 종류의 수치심이 어떻게 작용하고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명상이나 타인과의 따뜻한 대화를 통해 자신이 소홀히 여기고 있던 수치심을 바라보고 자신의 수치심을 존중과 호기심을 갖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은 피드백을 안겨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人間)"이란 말이 내포하는 것처럼 혼자 자신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Johari Window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로 교류하면 네 가지 영역이 생긴다고 합니다. (1)두 사람 모두  A에 대해 아는 것, (2)A에 대해 A는 알지만 B는 모르는 것, (3)A에 대해 A는 모르지만 B는 아는 것, 그리고 (4)A에 대해 A도 모르고 B도 모르는 것입니다. A는 혼자 자신을 아무리 봐도 자신에 대해 모르는 부분(심리적 사각지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해 타인과 연결되어 교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의미 있는 교류와 대화를 하며 서로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수치심을 파악하고 이해할 때, 그 부족한 공간(Gap)도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만의 리소스와 강점으로 서로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 서로의 수치심과 그 외 다른 심리적 갭도 차차 채워지고 메워지면, 우리는 보다 원숙한 사회 속에서, 보다 온전한 개인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봄날을 기대하는 주말 저녁, 친한 친구와 차 한잔 마시면서 자신의 수치심과 친구의 수치심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서로 그 수치심을 보듬어 주는 것도 귀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닥터 부메랑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 주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a2Hpyxxe7kozsCGldkUTqw?view_as=subscr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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