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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학자의 책장 Mar 08. 2020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안녕하세요, 공학자의 책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올해는 졸업 준비로 바쁘다 보니 글을 자주 못 올리네요.


배움에는 끝이 없다지만 그래도 길고도 길었던 학업이 드디어 끝나갑니다. 대학에서만 13년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저보고 학교가 잘 어울린다고, 계속 학교에 남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데요. 저는 얼른 학교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대학은 나름대로 다니는 재미가 있었지만, 어릴 적 저는 학교를 참 싫어했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기숙학교를 다녔는데 가장 가까운 시내가 버스로 40분 거리여서 야자를 튀어도 갈 곳이 없는 그런 학교였습니다. 제 편협한 마음 때문이었겠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도 없었고 존경할만한 선생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들이랑은 사이가 너무 나빠서 고 3 때는 수업을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자습만 했었어요.


수업 마치고 질문을 하러 교무실에 찾아갔다가 뺨을 맞는 적도 있고, 시험문제가 틀렸다고 항의했다고 벌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내신 점수는 낮은데 모의고사 점수가 높다고 커닝하는 거 같다고 부모님을 부른 적도 있었네요. 학교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나 볼까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오히려 10대를 행복하게 보낸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운 거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10대는 자신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충돌하는 시기이고 두 세계가 충돌하면 파괴되는 것은 항상 약한 쪽이거든요. 그리고 거대한 타인들의 세상과의 충돌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바보 같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 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어 듭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뛰어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호밀밭의 파수꾼은 성적이 나빠 학교에서 퇴학당한 홀든 콜필드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3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홀든 콜필드는 부유한 집안의 자녀이면서 명문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위선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인물로 작고, 사소하고, 순수하고 변치 않는 것을 좋아합니다.


훌륭한 젊은이를 양성한다고 광고하는 학교, 자신이 데이트하는 여자 이름도 기억 못 하면서 그 여자랑 자고 싶어서 젠틀한 척 연기하는 룸메이트 스트라드레이트, 너무 지저분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역겹지만 스스로를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애클리,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홀든이 말하는 위선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또 공감하게 됩니다.


홀든은 퇴학이 정해지고 크리스마스 연휴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학교에서 떠밀려 나가느니 위선자로 가득 찬 학교를 스스로 나가겠다고 뉴욕으로 향합니다.


홀든은 그곳에서 어른 행세를 하며 술을 마시려고도 하고, 클럽에도 가고, 매춘부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죠. 조금은 가식적인 여자 친구였던 샐리를 다시 만났지만 남들보다 배운 척, 있는 척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 실망합니다. 그는 멀리 떠나고자 마음먹습니다.

 

그리고는 떠나기 전 사랑하는 동생 피비를 보기 위해 부모님 집에 몰래 들어갑니다. 피비의 순수한 모습, 가식 없는 애정은 홀든의 세상에 대한 혐오를 멈추게 만듭니다.


어릴 적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저는 홀든에게 공감했었습니다. 세상에 바보들이 너무 많고 사람들은 가식적이고, 가능하다면 이런 곳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홀든이 뉴욕에 도착하고 나서부터의 행동은 조금 이상해 보였습니다. 홀든은 어른들을 바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어른이 되고자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힘들 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선생님들입니다. 이런 모순적인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홀든이 세상에 대한 불만은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사랑하던 동생 앨리의 죽음부터 입니다. 엘리는 시를 좋아하고, 똑똑하고, 잘 웃는 착한 동생이었는데 백혈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죽습니다. 홀든은 동생을 잃은 충격에 차고의 모든 유리를 손으로 깨부숩니다.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그 이후로 홀든은 주먹을 꽉 쥘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홀든의 마음 역시 고칠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홀든이 부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듯 느껴집니다.


“그럼 뭘 좋아하는 지 한 가만 말해봐”

“한 가지도 좋은 걸 생각해 낼 수 없는 거지?”

“그렇지 않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니까.”

“그럼 어서 말해 봐”

“엘리가 좋아.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 이렇게 너랑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앨리 오빠는 죽었어. 오빠는 늘 이런 말만 해! 사람이 죽어서 천당에 가고 나면 그때는 ……”

“그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래도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는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것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더 좋은 사람이라면 말이야.”


홀든은 방황의 시기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동생을 잃은 슬픔을 홀로 견뎌내야만 했고, 그 고통을 어른들에 대한 반항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홀든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앨리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몸은 이미 어른이지만 마음은 어렸던 홀든은 어른들에게 의지 해 보려고 선생님들을 찾아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뉴욕에서 머무는 동안 자신이 쓰레기라 말하는 어른들처럼 행동하려 했던 것은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무의식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

는 것이다.


그러나 홀든은 어른이 되는 것에도, 묵묵히 살아가는 것에도 실패합니다. 홀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뉴욕을 떠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를 붙잡은 것은 여자 친구도, 선생님도, 친구도 아닌 아이들이었습니다. 홀든은 자신을 따라 떠나겠다는 동생 피비를 보며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알게 되었고, 또 자신이 떠나는 것은 자신이 겪은 아픔을 동생도 겪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종의 책임감이 생긴 거지요. 어른 흉내가 아닌, 아이들을 지켜 주겠다는 마음이 홀든을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순간입니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감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홀든은 자신이 위선자라 말했던 모든 이들을 그리워합니다.


가끔 세상 모두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알고 보면 내가 세상을 삐딱하게 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남 탓을 100번 해도 내 삶은 더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고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할 때, 한 개인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긴 글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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