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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학자의 책장 Oct 11. 2019

나와 세상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질 때

장 그르니에의 섬 혹은 고양이 물루


이 이야기는 알베르 까뮈의 스승으로 널러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섬에 대한 리뷰 혹은 제 고양이가 어떻게 물루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이름에 제 삶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책 한 권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책 리뷰를 하며 체감하고 있는데요. 어떤 리뷰는 그것이 추천하는 책 보다 더 유명해지기도 합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승 장 그르니에의 ‘섬’에 실린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 ‘섬에 부쳐서’ 일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섬에 부쳐서’의 한 구절을 읽고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 읽게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섬'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저보다 더 잘 쓰셨을 테니- 까뮈의 추천사 한 구절을 그대로 전해드리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될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여러분이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이 책을 펴는 것만으로도 알베르 까뮈의 부러움을 사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 실린 8개의 이야기 중에서 특히 ‘고양이 물루’ 편을 좋아하는데요. 장 그르니에가 한 마리의 고양이를 데려와서 그의 손으로 그 고양이를 묻을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다음에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이름을 물루로 지어야지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오늘 이 영상은 이 책의 큰 주제와는 별 상관없는 고양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고양이 물루, 이제 3살이 지나가는 노르웨이 숲 고양이다.


“짐승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양이의 움직임은 어딘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가끔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동시에 그들은 우리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이기도 합니다. 완전한 야생성을 갖춘 듯 보이다가도 연약한 애기처럼 여겨집니다.


“아침이면 나의 어머니 발아래서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몸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어머니가 제 몸 위에 발을 지그시 올려놓아야 멈춘다. 이 중세기적 의식이 만족되면 부엌으로 가서 우유를 마시고 전날 밤 자신을 위해 준비해 둔 찬 음식을 맛본다. 오후에는 침대 위에 엎드려서 앞발을 납죽이 뻗은 채 가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잔다. 어제는 흥청대며 한바탕 놀았으니 아침 일찍부터 내게 찾아와서 하루 종일 이 방에 그냥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때다 싶은지 여느 때 같지 않게 한결 정답게 굴어댄다. 피곤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물루는, 내가 잠을 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없애준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침대로 달려와 머리를 비비고 얼른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고양이를 본다면 누구든 고양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길고 긴 하루가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어 고양이의 무한한 애정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단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면 하루 종일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고양이가 너무 예뻐서 어떻게든 기회만 생기면 자랑하고 싶어 지죠. 그러나 고작 고양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상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고양이 같은거에 관심 가질 시간에 더 중요한 걸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게 될 때면 그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게 마련이어서, 그런 것은 사실 우리들 자신에게 밖에는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한 순간에 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보편적인 생각들만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지닌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이야 이른바 그들의 지성에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중략 --- 도대체 어떻게 고양이 따위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문제 속에서 살고 정치, 종교, 혹은 그 밖의 사상을 가진, 사유하고 추론하는 인간에게 그런 따위의 주제가 합당하기나 한가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제발 사상 좀 가져봐요! 그렇지만 고양이는 존재한다. 그 점이 바로 고양이와 그 사상들 사이의 차이점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면 고양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찾아보고 그들에 대해 배우게 됩니다. 내 고양이가 좀 더 안락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고 사료나 간식 장난감에 대한 것도 알아보고 공유합니다. 사실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말과 어쩌면 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잘 모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저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좋아하면서 무지한 것도 역시나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고양이에 대해 더 안다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이처럼 부질없는 문제에 대하여 해박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마음에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살아가는 데,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견디어내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한 가지의 대상을 정하여 그것을 여러 시간씩 골똘하게 매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일은 없다. 르낭은 아침마다 히브리어 사전을 열심히 읽곤 함으로써 삶의 위안을 얻었다. 나는. 연구라는 것에 그 이외의 다른 흥미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이나. 다 보잘것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들로 하여금 최후를 기다리는 동안 인내라는 놀이를 배운다는 것은 타 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고작 고양이에 대해서 더 아는 것이지만 이건 누가 시켜서 배우고 관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고양이가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웁니다. 어디 고양이뿐인가요? 연구도 그렇습니다. 남이 돈을 주면서 시키는 과제들을 실용적이고 세상에 도움이 되지만 하다 보면 지치고 얼른 끝나기만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서 하는 연구는 이런 걸 누가 궁금해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연구하면 할수록 더 알고 싶은 것이 나타나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어쩌면 쓸모없는 것을 배울 때야 말로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섬이 전달하는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만, 제가 전달하고 싶은 문장들은 이미 다 이야기드린 듯하고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의 안타까운 끝을 이야기 하기에는 제 마음이 아파서 고양이 물루 리뷰는 여기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책 리뷰도 아니고 고양이 이야기도 아닌 애매한 글이 되었는데요, 사실 이 글은 제가 모시는 고양이의 이름이 물루가 된 이유, 그리고 공학자로서 한 가지 대상을 연구하는 즐거움과 의미를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그것 들이 잘 전달되었길 바라며 문득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서점에 가서 장 그르니에의 섬을 집어오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 책을 들고 집으로 오는 그 순간을 저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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