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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학자의 책장 Oct 06. 2019

인간에 대한 통찰

체호프 단편선

문학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체호프란 이름을 안 들어볼 수 없었을 텐데요. 그것도 그럴게 안톤 체호프는 문학 역사상 최고의 단편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많은 단편집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읽어본 단편들 중에서는 체호프의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그의 작품은 총 10편인데요, 이것들을 모두 소개드리고 싶었지만 제 능력을 벗어나는 일 같아서 이중에 딱 한편 ‘공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공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화자인 나, 나의 친구 드미트리, 그리고 드미트리의 아내 마리아가 있습니다. 


드미트리는 농장은 운영하는 친구로 나는 종종 드미트리의 농장에 방문을 합니다. 나는 드미트리라는 인물의 철학이나 사상을 좋아하지만 그 친구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이따금씩 자신의 내면을 고백할 때면 나는 그것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나는 친구의 아내 마리아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인물에 대한 호감 정도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의 아내 마리야 세르게예브나가 너무도 내 마음에 들었다는 점에 있었다. 그녀와 정말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못 보면 그녀가 그리워졌다. 당시에 나의 공상 속에서 이 젊고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만큼 생생하게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그녀에 대해서 나는 어떤 흑심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우리가 단 둘이 있을 때면 나를 친구로 생각한다던 그녀 남편의 말이 떠올랐고 그러다 보면 항상 거북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농장에 방문했다가 드미트리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당신이 보기에 그토록 행복할 것 같은 나의 가정생활이라는 게 사실은 나의 가장 큰 불행이자 공포입니다. 나의 결혼은 기묘했고 어리석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마샤를 미칠 듯이 사랑했습니다. 이 년 동안 그녀를 쫓아다녔어요. 나는 그녀에게 다섯 번이나 청혼을 했지만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매번 거절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사랑에 몸이 단 나머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흡사 구걸을 하듯 매달리며 청혼을 했고 그녀는 승낙을 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여자가 되겠어요.>라고…… 나는 그런 조건조차도 감지덕지하며 받아들였지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귀신이 잡아가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아내가 되겠어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안개처럼 애매모호한 얘기지…… 나는 지금도 신혼 첫날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녀로 말하면, 내가 보기에는 그때처럼 무관심한 데다가 내가 집을 비우면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모를 뿐이겠죠. 네, 몰라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지붕 아래서 서로 여보라고 부르며 같이 잠자고 아이들을 가졌고 재산도 공동명의로 했단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무얼 뜻하는 거죠? 그래서 어쨌다는 거죠? 친구, 당신은 뭐든 좀 이해가 됩니까? 지독한 고문이야! 우리 관계에 관한 그 무엇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그녀를 증오하고, 나 자신을 증오하고, 우리 둘 다를 증오합니다.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바보가 되어가는데, 그녀는 마치 약 올리기라도 하듯 날이 갈수록 예뻐지고 우아해진단 말이죠…… 그녀의 머릿결은 눈부시고 그 미소로 치자면 어떤 여자도 못 따라오지요. 나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또한 내가 절망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벌써 두 명의 자식을 낳아준 여자를 절망적으로 사랑하다니! 그러니 이해가 가겠습니까? 무서운 일 아닌가요? 그래, 이것이 유령보다 덜 무서운가요?


그 고백을 들은 후 나는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마리야를 다시 보게 됩니다. 


나는 그녀가 정말로 눈부신 머릿결과 어떤 여자와도 비할 수 없는 미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녀를 찬찬히 보면서 그녀의 동작과 시선 속에서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처럼 여겨졌다.


식사가 끝난 후 다음날 일찍 길을 나서야 하는 드미트리는 먼저 자러 갑니다. 드미트리가 방을 나서자 마리아는 ‘나’를 유혹하러 왔고 그전까지 마리아에 대한 흑심이 없다고 말하던 ‘나’였지만 마리아가 드미트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 늦었네요…… 편히 주무세요.

그녀는 말했다.

저는 편히 자고 싶지 않은걸요……

그녀의 뒤를 따라 응접실로 들어가면서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만약 편히 자게 된다면 나는 오늘 밤을 저주할 겁니다. 

그녀와 악수를 하고 문까지 바래다주면서 나는 그녀가 나를 이해하고 기뻐한다는 것을 그 얼굴에서 알았다. 나 또한 그녀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내 방으로 갔다. 테이블 위의 책 옆에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모자가 놓여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그의 우정을 상기시켜 주었다.

황홀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이제 내가 그녀의 풍만한 육체를 껴안고 황금빛 눈썹에 입을 맞추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학대하고픈 심정이었다. 그녀가 나를 별로 애타게 만들지 않고 그처럼 쉽게 무너진 것이 안타까웠다.  


그날 밤 마리아는 나의 방으로 찾아왔고 둘은 사랑을 나눴습니다. 


마리아가 일 년 넘게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고백을 합니다. ‘나’는 잠시 황홀한 느낌을 맛보지만 동시에 그녀의 사랑 속에서 드미트리와의 우정과 마찬가지로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그 무엇을 느낍니다. 


나는 몇 번이고 그녀를 창가로 데려가 달빛에 그녀의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그러면 그녀는 마치 아름다운 꿈처럼 보였고, 그때마다 나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그녀를 다급하게 힘껏 껴안곤 했다. 그러나 한편 마음속 멀고 깊은 심연 속에서 나는 그 어떤 거북한 느낌과 함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눈물과 맹세를 담고 있는 심각한 사랑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심각한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눈물도, 맹세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이 달빛 어린 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밝은 유성처럼 타올랐다가 그대로 팍 꺼져버렸으면.


새벽 세 시, 아침 일찍 떠나야 하는 드미트리가 내 방에 두고 간 모자를 가지러 오다가 막 방을 나서는 마리아를 만납니다. 

1막에 권총을 소개했다면 3막에서는 쏴야 된다. 안 쏠 거면 없애버려라. '공포'에서는 모자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드미트리에게 자신의 혐오감을 숨기지 않습니다. 드미트리는 내 방에 들어와서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자를 쓰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놈이었던 모양입니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에게 축하를 드리지요. 내 눈에는 사방이 컴컴해 보여요.


그 이후 드미트리의 공포는 ‘나’에게도 옮겨졌습니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공포는 나에게도 옮겨졌다. 오늘 벌어진 을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갈까마귀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들이 날아다닌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자괴감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째서 꼭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되었을까? 다른 방식은 없었나? 그녀는 무엇 때문에 나를 심각하게 사랑해야만 했고 그는 왜 모자를 가지러 내 방에 나타나야만 했을까? 그런데 모자가 여기서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는 그 이후로 드미트리의 농장에 가지 않았고 드미트리 부부는 변함없이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체호프의 소설이 지니는 가장 큰 강점은 작중 인물에 감정이입이 쉽다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드미트리와 ‘나’가 겪은 공포를 같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드미트리의 공포가 글 속의 ‘나’에게 전해질 때 독자에게도 같이 전달됩니다. 


삶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소설과 달리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나를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데려갑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어떤 것에 확신을 가지다가도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 공포를 느낍니다. 멀리 볼 거 없이 주식 같은 것만 보더라도 “이거 꼭 오른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식을 샀다가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내 폭락을 두려워합니다. 


행동을 하기 전 확신은 행동 이후 무엇이 뒤따라오느냐에 따라 황홀한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끝없는 공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확신이, 우정이, 사랑이 서로가 서로에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한없이 어려운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맘 편히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사랑,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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