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괴테
파우스트를 아니 메피스토펠레스를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겠지만, 아마도 파우스트를 끝까지 읽으신 분도 많이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희곡이라는 생소한 장르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두꺼운 책이라는 것이 큰 장벽이 될 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거의 200년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파우스트 이전에도 인간과 악마의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어왔습니다. 지금도 많이 있죠. 그러나 파우스트가 그런 이야기들과 다른 특별함을 지니는 것은 소위 말하는 ‘악마와 인간의 계약’이라는 것이 대부분 인간의 욕심을 이루는 것을 대가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은 ‘인간 인식의 욕구’를 만족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인식의 욕구
We live on an island surrounded by a sea of ignorance. As our island of knowledge grows, so does the shore of our ignorance.
아마도 존 아치볼트 휠러의 이 문장이 인간 인식의 욕구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의 섬이 커질수록 무지의 해안선도 넓어집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신이 결코 닿은 수 없는 이상이 존재함을 알게 됩니다. 결코 알 수 없지만 알고자 하는 것 그것에 바로 인간 인식의 욕구입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접근하기 전에 천상에서 하느님과 내기를 합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는 종복인 파우스트를 자신의 길로 끌어들여 주님을 영영 잃게 만들겠다는 내기였습니다.
하느님은 거기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며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파우스트는 각종 지식을 쌓았지만 자신의 인식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는 인물로 ‘자신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진정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작용하는 힘과 근원을 알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에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런 파우스트에게 접근해 이런 제안을 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 선생이 나와 함께 삶을 두루 섭렵할 의향이 있으면, 당장 선생을 받들어 모시겠소. 나는 선생의 친구요. 선생만 좋다면, 하인이 되고 종복이 되겠소
파우스트: 그 대가로 나에게 뭘 바라는가?
<중략>
파우스트: 내가 속 편하게 누워서 빈둥거린다며, 그것으로 내 인생은 끝장일세! 내가 자네의 알랑거리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고 쾌락에 농락당한다면, 그것이 내 마지막 날일세! 우리 내기해 보세!
메피스토펠레스: 좋소!
파우스트: 당장 계약을 맺도록 하세!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네는 날 마음대로 할 수 있네. 그러면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네. 죽음의 종이 울려 퍼지고, 자네는 임무를 다한 걸세. 시계가 멈추고 바늘이 떨어져 나가고, 내 시간은 그것으로 끝일세.
메피스토펠레스: 명심하시오, 우리는 이 말을 절대 잊지 않을 거요.
다시 말해 파우스트가 살아있는 동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충실한 종이 되어 파우스트가 인간이기 때문에 지니는 한계를 넘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파우스트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어야 합니다. 만약 파우스트가 한순간이라도 순간의 즐거움에 빠져 자신의 이상을 잊는다면 그는 당장에 죽음을 맞이하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종이 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의 종복인 파우스트를 자신의 종으로 부리기 위해, 그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파우스트에게 다시 젊음을 주고, 사랑의 감정에 불타게 만들고, 마녀들의 축제를 즐기고 그리스로 날아가 한동안 그리스 신화의 세계 속에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과 대사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여정이 그렇게 흥미롭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1부에서는 마법을 통한 파우스트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나온 반면 2부에서는 파우스트 개인을 넘어서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모두 보고서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였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찾았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땅을 갖고자 합니다. 그곳에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일하며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자 합니다.
파우스트: 비록 안전하진 않지만 자유롭게 일하며 살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수백만 명에게 마련해 주고 싶네.
들판이 비옥하게 푸르러지면, 사람과 가축이
곧 이 땅에서 편안히 느끼고 ,
대담하고 부지런한 백성들이 몰려와
활기찬 언덕에 정착할 걸세.
저기 바다에서는 세찬 물살이 제방을 때리며 날뛰더라도,
여기 육지에서는 낙원 같은 삶이 펼쳐질 걸게.
파도가 거세게 덮치며 삼키려 들면,
다 함께 서둘러 달려가서 벌어진 큼을 막지 않겠는가.
그렇네, 나는 이 뜻을 위해 헌신하고
이것이야말로 지혜가 내리는 최후의 결론일세.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네.
어린아이,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이곳에서 위험에 둘러싸여 알찬 삶을 보내리라.
파우스트는 인간의 행복은 어떤 것의 성취가 아니라 추구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코 순간에 만족하지 않는 인간인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먼저 경험한 것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그들이 그들 삶의 주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후에야 자신이 가꾸어 놓은 터전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파우스트: 나는 사람들이 그리 모여 사는 것을 보며,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네.
그러면 순간을 향해 말할 수 있으리라,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이 지상에서 보낸 내 삶의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걸세 –
그런 드높은 행복을 미리 맛보며,
나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즐기노라.
그리고 이 순간 파우스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최후의 순간에 한 말에 신이 났습니다. 자신이 가져다준 세상의 어떤 쾌감도, 행복도 파우스트를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파우스트는 이미 나이가 들었고 그냥 죽었으면 자신은 헛고생을 한 일일 텐데, 고맙게도 파우스트는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다시 잘 들여다보면 그는 어떤 순간에도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행복은 그가 죽은 후 다가올 미래에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지금 상상하며 맛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런 미래가 현실이 된다면, 그때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할 거란 말입니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 인간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메피스토펠레스는 내기에서 졌고, 파우스트는 천상으로 올라갑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소설의 1부를 떠올려보면 파우스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온갖 쾌락으로 그를 순간에 묶어 두고자 했으나 그는 남이 가지고 온 쾌락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져올 미래에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인간이라는 한계 덕분에 우리는 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자유는 분명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노력해서 쟁취한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그것은 우리를 재자리 걸음을 하게 만드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내 손으로 내가 쟁취한 자유가, 내가 이룬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가 모여 우리 사회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니라.
당신의 방황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