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학자의 책장 Oct 22. 2019

너희들은 뛰어난 연기자들이다

관객모독 -페터 한트케

이만큼 읽기 싫게, 혹은 보기 싫게 만드는 제목의 희곡이 있을까요?

서점에서 이 책의 표지를 볼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저 수많은 시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책을 펼치지도 못한 채 돌아서곤 했습니다.

이 정도 시선은 감당할 수 있어야 이 책을 펼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자 이 책이 던지는 충격에 비해 저런 시선은 너무 빈약한 안전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희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


뭐가 그렇게 충격적이었을까요?

관객모독이 다루는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아니, 단순하다기보다는 없습니다. 관객 모독은 어떠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혹은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이 작품은 일종의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극장에 오면 늘 보았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극장에 오면 늘 들었던 것을 여기서는 전혀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기대했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무엇인가 다른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여러분은 대상들을 기대했었습니다.

여러분은 대상들을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분위기를 기대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다른 세계를 기대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다른 세계를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기대했었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여기서 무엇인가를 듣기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 여러분은 무엇인가 다른 것을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연극의 주제는 없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정말 그럴까요?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관객모독도 어떠한 목적을 지니고 쓰인 글입니다.


관객모독의 목적은 관객에게 '지금', '여기'를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객의 위치에 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며 배우들을 바라봅니다. 마치 캣타워 위의 고양이처럼.


관측하는 쪽은 늘 마음이 편한 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편안하기 때문에 자신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내가 있는 공간을 의식하지 않은 채 연극을 봅니다. 무대 위의 세상, 무대 위의 공간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관객모독에서는 배우가 관객에게 끝없이 이야기를 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무너트립니다. 관객은 마치 자신이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자신을 의식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여러분과 이야기할 때 우리를 쳐다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방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주시합니다. 여러분도 주시됩니다. 여러분은 보호받는 상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바라보는 유리한 입장이 아닙니다. 우리도 빛 속에서 어둠을 바라보는 불리한 입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쳐다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주시하고 또 우리에게 주시당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와 여러분은 점차 일체감을 느낍니다.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는 특정한 조건에 따라 우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지붕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잘 짜인 하나의 모임입니다.


이 연극은 이제 관람이 아니라 경험이 됩니다. 이제 관객은 무대 위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을 인식합니다. 손가락의 움직임, 혀의 위치, 숨, 심장박동 모든 것이 의식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말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말을 걸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앉아 있다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극장에 앉아 있다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손발을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손가락을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혀를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목을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머리의 무게를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기를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꺼풀이 꿈틀대는 것을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침 삼키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침 넘어가는 소리를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장 고동을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썹이 올라가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피가 따끔거리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려움을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손에 땀이 나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손바닥이 건조해지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입과 코를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말이 여러분의 귓속으로 들어가는 걸 의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침착해질 것입니다.


이 연극에서의 주제는 관객입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배우는 관객에게 '자신'을 '지금'을 의식하게 만듭니다. 무대 위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도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현재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보내는 이 시간이 바로 여러분의 시간임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주제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를 만듭니다. 여러분 자신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여러분은 중심인물입니다. 여러분은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여러분은 결정적인 원인입니다. 여러분은 연기를 하게 하는 결정적인 동기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단어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선도자 기도 하고 상대자 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젊은 희극 배우 역을 하는 배우들입니다. 여러분은 젊은 연인들 역을 하는 배우들입니다. 여러분은 순진한 사람들 역을 하는 배우들입니다. 여러분은 감상적인 사람들 역을 하는 배우들입니다. 여러분은 귀부인 역을 하는 배우들입니다. 여러분은 성격 배우들입니다. 여러분은 플레이보이들이고 동시에 영웅들입니다. 여러분은 영웅들이고 동시에 악한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의 악한들이고 동시에 영웅들입니다.


관객들은 점점 극에 몰입합니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극장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하며 모두 의도적으로 타인과 구분 짓고 살던 사람들이, 각자 다른 곳에서 출발해서 이곳, 객석에서 관객이라는 무리로서 하나의 역을 수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즉 관객이라는 배역을 수행하며 극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연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무엇이 되기 시작합니다.



기존의 연극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대화나 몸짓, 도구, 익살마저도 무대 위에서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결국 무대 위의 이야기보다 그 아래에 숨겨진 사실, 현실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은 현실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결코 순수한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연극은 비현실적인 가상의 시간에서 진행되는 가상의 현실입니다.


만약 순수한 연극이 상연되었더라면 여기서는 오직 관객의 시간만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현실은 연극 속 현실이었기 때문에 이곳엔 항상 두 가지 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관객의 시간인 여러분의 시간과 겉보기에만 실제 시간으로 상연되는 가상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재생될 수 없습니다. 어떤 연극에서라도 시간은 반복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만회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불가항력적입니다. 시간은 상영될 수 없습니다. 현실인 시간은 연기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연기될 수 없기 때문에 현실 역시 연기될 수 없습니다. -중략- 시간관 무관한 연극에서만이 시간이 무의미합니다. 다른 모든 연극들은 순수하지 못한 연극입니다. 단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연극들이 있거나 혹은 그 안의 시간이 현실적인 시간인 연극들, 마치 축구 경기에서 구십 분이 관중과 선수들에게 똑같은 시간인 것처럼 연기자의 시간이 바로 관객의 시간인 연극들이 있습니다. 모든 다른 연극들은 잘못된 연극들입니다. 모든 다른 연극들은 여러분에게 거짓 사실들을 연기해 보입니다. 시간과 무관한 연극에서는 어떤 사실도 연기되지 않습니다.


관객은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연극에 대해 막연히 가져오던 생각들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관객모독은 연극이 아니라, 연극에 대한 강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강요되는 메시지가 없다는 단순한 메시지의 반복은 관객을 강박적으로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상태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무엇이 나를 속박하고 있었는지를 의식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눈을 뜬 채 꿈꿀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꿈의 비논리로 무대의 논리를 대하도록 강요받지도 않습니다. 무한히 펼쳐질 수 있는 여러분의 꿈은 좁은 무대 위에 제한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부조리한 여러분의 꿈은 무대의 현실적인 규칙에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꿈도 현실도 상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개인에 대해서도, 자연에 대해서도 초자연에 대해서도, 쾌락에 대해서도 고통에 대해서도, 현실에 대해서도 연극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어떤 비가도 불러내지 못합니다.


이 작품은 일종의 머리말입니다. 다른 작품에 대한 머리말이 아니라 여러분이 과거에 했던 것과,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할 것에 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은 주제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관습과 도덕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행위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무위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이 누워 있는 것, 앉아 있는 것, 서 있는 것, 걸어가는 것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삶의 진지함과 유희적인 면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할 연극 관람에 대한 머리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모든 머리말들을 위한 머리말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세계극입니다.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겐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 밀란 쿤데라


결국 관객모독은 우리의 삶에 주어진 어떠한 선험적인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듯 보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지금', '여기' 두 가지뿐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연극은 막을 내릴 준비를 합니다.


여러분은 곧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손뼉을 쳐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곧 일어날 준비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젖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들이 인사하는 걸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질서 있게 출구 쪽으로 밀고 나갈 것입니다. 어려 분은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외투 입는 걸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서로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사하며 헤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동행하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밖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생활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술집을 찾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일을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점차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실을 다시 거칠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냉정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자신의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여러분은 더 이상 연극에 몰두했던 통일체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한 장소에서 여러 다른 장소들로 흩어질 것입니다. (부분 부분 중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여러분은 좀 더 욕설을 들을 겁니다.


곧 끝날 것이라 기대했던 연극, 그러나 사실 관객모독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욕설은 우리를 굳게 만듭니다. 배우의 말에서 귀를 때지 못하게 만듭니다. 배우들은 욕을 하기 앞서 이것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욕설도 아니며, 이 욕설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리고 우리는 이미 우리가 욕을 듣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 나오는 욕을 들으며 관찰자적 입장을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욕설을 비켜나갈 수 있는 관객이었다면 이 순간까지 객석에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은 불가능한 걸 가능하도록 했다. 너희들은 이 연극의 주인공들이었다. 너희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굳어 있었다. 너희들은 자신의 모습을 마치 조각처럼 만들어 보이고 있었다. 너희들은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을 제공했다. 너희들은 인물들을 연기하지 않았고 스스로 그 인물들 자체였다. 너희들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너희들은 오늘 저녁 발견한 대상이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역할을 살아왔다. 너희들은 성공에 큰 몫을 했다. 너희들은 이 작품을 살렸다. 너희들은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모두가 너희들을 봤어야 했는데, 콧물을 훌쩍이는 너희들을.


너희들은 항상 거기에 앉아 있었다. 이 연극에서 너희들의 성실한 노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너희들은 다만 제목을 제시해 준 자에 불과했다. 너희들의 위대함은 생략을 통해 이루어졌다. 너희들은 이 모든 사실을 침묵으로 대변했구나, 허풍쟁이들아.


너희들은 순수한 연기자들이었다.


너희들은 모두가 똑같은 모습이었다. 너희들에게 오늘은 좋은 하루였다. 너희들은 서로 훌륭하게 연기했다. 너희들의 삶의 이야길 듣고 배웠다. 멍청이들아, 막돼먹은 인간들아, 무신론자들아, 부도덕한 인간들아, 떠돌이 사기꾼들아, 불결한 유대 종자들아.


너희들은 우리에게 아주 새로운 앞날을 보여 줬다. 너희들은 이 작품과 잘 타협했다. 너희들은 전보다 더 성장했다. 너희들은 자유롭게 연기했다. 너희들은 정신적으로 내면화되었다. 우글거리는 인간들아, 서양 문화의 무덤을 파는 자들아.


- 중략 -


여러분은 여기서 환영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램지 아저씨가 생각나는 화법이었습니다.


배우들은 연극이 시작하자마자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관객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연극에는 어떤 새로운 것도 없고, 어떤 메시지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관객은 그 연극에서 메시지를 찾습니다. 배우의 말 한마디에 이끌려 자기 숨소리에 집중합니다. 무대 위에 현실이 상연되고 있는데도 관객은 객석에서 관객을 연기합니다. 관객으로 해야 할 행동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잘 수행합니다.


지금 여기가 아니라 극에 빠져있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관객모독의 칼날이 겨누고 있는 행위입니다. 극에 몰입한 관객일수록 자신의 행위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더 깊게 체감합니다. 연극에 대한 만족감이 그대로 부끄러움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내가 배우들에게 몰입했듯 배우들도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 거울에 비친 자신의 위선을 바라보는 것, 참 부끄러운 경험이었습니다.(물론 저는 책으로 읽었지만요)


돌이켜보면 현실에서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어쩌면 아주 훌륭한 연기일 수 있습니다. 배우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연기, 자신을 속이는 연기, 그러나 사실은 의식적인 연기, 그런 연기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연극의 끝에 쉼 없이 나오는 욕설에서 비켜나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주제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