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학자의 책장 Nov 14. 2019

행복을 찾아서

라셀라스 - 새뮤얼 존슨


행복이 무엇일까요? 돈? 사랑? 명예?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을 추구하다니 조금 웃기지 않나요?


저도 막연하게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짧은 행복은 많이 있었죠. 최근에 2년 정도 시간을 들인 논문을 기고하였었는데 이번 주에 게재 확정을 알리는 매일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면 제가 느낀 감정은 '충족'에 가까운 감정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이루고자 소망했던 목표가 달성되는 즐거움이고, 내 생각이 남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즐거움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떤 바람이 충족될 때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요일 오후 햇살이 비치는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있는 물루를 보는 것이나 안락한 소파에 앉아 마시는 무거운 커피 한 잔, 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 같은 것들도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라고 정의하는 순간 행복은 사라져 버리는 듯합니다. 행복했던 순간들은 기억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말 하기는 힘듭니다.


여기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청년이 한 명 있습니다.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는 왕국의 전통에 따라 행복의 골짜기에 갇혀 생활합니다. 골짜기에는 여러 왕손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주민들이 살아갑니다. 행복의 골짜기에는 모든 좋은 것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풍요로운 대지, 아름다운 풍경,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갖추어져 있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황제의 방문 때 온갖 재미거리와 호사품이 골짜기로 들어옵니다. 골짜기의 주민들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요청할 수 있었고 그것은 즉시 받아들여집니다. 골짜기는 완벽해 보입니다. 


그러나 라셀라스는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는 궁중의 온갖 환락을 버리고 고독과 한적함을 찾습니다. 


왕자의 스승 중 한 명인 현인은 충언으로 왕자의 병을 고쳐줄 수 있다고 믿고 왕자를 찾아와 골짜기의 풍요로움과 바깥세상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변을 둘러보시고 왕자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 중 갖춰지지 않은 게 뭐가 있나 한번 말씀해 보옵소서. 당연히 왕자님께는 부족한 것이 없다 하실 터인데, 그렇다면 어찌하여 왕자님께서는 불행하신 것입니까?”


왕자는 오래도록 새로운 깨달음을 주지 못했던 과거의 스승의 질문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불행을 직접 목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의 골짜기에서 딱 하나 허용되지 않는 것은 골짜기에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도 예외는 아니었죠. 


왕자는 몇 달 동안 골짜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혹시나 골짜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골짜기는 높은 산에 둘러 쌓여 있어 어디에도 나갈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행복의 골짜기에는 유능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탈출을 꿈꾸는 이들도 있었죠. 왕자는 이믈락이라는 시인과 교류하다 바깥 세계에서 상인과 학자로 오랜 시간을 보냈던 그 역시 골짜기에서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은 함께 탈출할 방법을 찾아보았고, 굴을 파서 골짜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네카야 공주와 그녀의 시녀 페쿠아도 동행을 하게 됩니다. 


바깥세상에 대해 잘 아는 이믈락 덕분에 라셀라스 일행은 바깥세상에 빠르게 적응해 갑니다. 그들은 이비시니아의 항구도시에서 몇 주간 세상살이의 기본을 배웠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 위해 카이로로 떠납니다. 


카이로에 도착한 일행은 부유한 상인 행세를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라셀라스의 눈에는 그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라셀라스 자신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죠. 왕자는 왜 자신만 이렇게 불행한지 이믈락에게 물어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살펴봄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왕자님께서 자신의 쾌활함을 거짓으로 꾸민 것이라 느끼신다면, 왕자님 벗들의 쾌활함 역시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러움이나 시기심은 대개 피차일반이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늙어 죽을 때까지 행복이란 이 세상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임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 행복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기도 언젠가는 그런 행복을 얻으리라고 계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요.”

이믈락은 오랜 경험을 통해 인간이 결코 행복에 정착할 수 없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라셀라스는 여전히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행복해 보이는 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라셀라스가 가정 먼저 찾아간 사람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쾌락은 조잡하고 관능적이기만 할 뿐 천박했습니다. 왕자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성이 우리를 지배하면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희망 질투 그리고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딸의 죽음 앞에 좌절합니다. 


카이로에서 행복한 이를 찾기가 힘들어지자 라셀라스는 교외의 은자를 만나보려고 합니다. 왕자 일행은 은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평화로워 보이는 양 떼와 목동들을 만나게 됩니다. 혹시 목동들을 행복하지 않을까 기대를 가지며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그들은 부자들의 사치를 위해 자신들이 고통받아야 하는 현실에 분개합니다. 


양치기들과 헤어지고 계속 나아가던 왕자 일행은 교외의 대저택에 사는 부호를 만납니다. 그는 행복해 보였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자신을 헤치고 재산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자들이 있음을 염려합니다. 자신이 일군 부 때문에 목숨이 위협받는 것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자 일행은 계속해서 여정을 이어갔고 결국 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은자는 그들은 환대해 주었으나 누군가가 자신을 본받아 은둔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생기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홀로 은둔하고 지내는 사람은, 비록 악인의 행실을 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선한 사람들의 충고와 대화를 누릴 기회 역시 잃는 것이라며 은자는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라셀라스와 네카야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궁정의 호화로운 생활과 평범한 사람들의 잘 드러나지 않는 삶에서 행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궁정의 생활은 술책과 간계 그리고 배반의 연속이었으며 평범한 삶은 순간적인 욕구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이믈락은 라셀라스와 네카야에게 과거의 위대한 유산들을 통해 인간 행동의 강력한 동기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이들과 피라미드를 보러 갑니다. 피라미드는 과연 대단했습니다. 피라미드 안에서 이믈락은 이렇게 왜칩니다.


저는 엄청난 건축물인 이 피라미드를 인간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의 증거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무한한 권력을 쥐고 있고 또 현실적인 것이든 상상적인 것이든 그 모든 욕망을 채우고도 남을 보화를 지니고 있는 왕이라고 해도, 인간은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그는 피라미드라도 세움으로써 통치에 실증 나고 쾌락에 신물 난 마음을 달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노동하는 모습과 아무 목적도 없이 하나하나 쌓여가는 돌들을 보면서 늙어가는 인생의 무료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조촐하고 평범한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화려한 왕궁의 삶에 행복이 있다고 상상하는 자여, 그리고 권력과 부귀를 얻으면 새로운 것을 향한 욕구가 영원히 만족되리라고 꿈꾸는 자여, 그대가 누구든지 이 피라미드를 한번 둘러보라! 그리고 그대의 어리석음을 깨달을지어다!


이믈락의 말대로 인간은 결코 행복한 삶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반면에 불행은 아주 명백합니다. 불행은 분명 존재하고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라셀라스와 이믈락 그리고 네카야가 피라미드 안을 둘러보는 동안 바깥에서 기다리던 페쿠아가 아랍인들에게 납치됩니다. 페쿠아는 공주가 가장 아끼는 시녀였고 라셀라스는 페쿠아를 되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보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페쿠아가 어디로 잡혀갔는지 알아낼 수 조차 없었습니다. 네카야는 페쿠아를 잃은 슬픔으로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은둔의 삶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은둔의 삶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믈락은 시간이 지나면 페쿠아를 잃은 슬픔은 사라질 것이고 공주는 다시 세상으로 나오길 바랄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공주는 자신은 결코 페쿠아를 잊을 수없고, 그 슬픔은 영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라셀라스는 페쿠아를 찾을 수도 있으니1년의 시간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일단 은둔의 생활을 포기하자 그녀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일상적인 일과 오락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공주는 페쿠아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아직 결심을 굳게 하고 있었는데도 때때로 페쿠아에 대한 기억에서 마음을 멀리 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행복이 그러하듯 불행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라셀라스가 페쿠아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결국엔 페쿠아의 행방을 알게 되었고 상당한 거금을 넘겨주면서 페쿠아를 돌려받습니다. 


페쿠아가 이렇게 늦게 돌아오게 된 것은 그녀를 납치한 도적의 두목이 그녀를 돌려보내기를 싫어해서 인데요, 부와 권력은 가졌지만 자신과 동등하게 대화를 나눌만한 상대가 없었던 도적 두목은 가능한 그녀와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바랐습니다. 


페쿠아의 납치와 귀환은 불행 역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 그리고 생각을 나누고 공감을 해 주는 이의 존재가 개인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페쿠아를 되찾는 동안 라셀라스 일행을 이끌었던 이믈락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요, 그는 천문학자 였습니다. 그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고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손을 건네는 사람이었습니다. 라셀라스와 네카야는 어쩌면 이 현자로부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집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오랜 시간 동안 혼자 하늘을 바라다보며 공상을 하며 지냈고 자신의 생각을 나눌만한 기회를 자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정신을 병들게 했고 상상 속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연의 운행을 관장하는 능력을 이용해 세상을 지키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고, 자신의 후임을 찾지 못해 근심에 빠져 지냅니다. 높은 지성도, 고결한 도덕심도 행복한 삶을 이루어 주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셀라스와 네카야는 천문학자로부터 삶의 행복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자 그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그대들 앞에 펼쳐 보이는 여러가지 삶의 양태들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을 택하는 게 좋을지 나는 그대들에게 가르쳐줄 수 없다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선택을 잘못했다는 것뿐이오. 나는 삶에 대한 체험이 없이 공부에만 일생을 다 바쳤소. 대부분 그저 아주 멀리 동떨어지게만 인간에게 쓸모 있는 그런 학문들을 성취하느라 말이오. 비록 지식을 얻기는 했지만 나는 인생의 일반적인 즐거움을 모두 그 대가로 치러야 했소.”


그러나 라셀라스 일행의 방문 그 자체가 천문학자에게는 즐거움이었고, 그들은 이내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이 자연의 운행을 다스리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도 사라집니다. 


라셀라스 일행은 오랜 시간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부도, 지성도, 도덕심도 행복한 삶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각자 작은 소망을 하나씩 가지게 됩니다. 페쿠아는 수녀원장이 되어 경건한 처녀들을 이끌기를 원했고, 네카야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배우고 여성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자 합니다. 라셀라스는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세워 몸소 정의를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이믈락과 천문학자는 특별히 원하는 것 없이 인생의 물결을 따라 흐르는 것에 만족합니다. 


네, 결론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전히 행복을 꿈꿀 수 있고,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루면 행복해지리라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죠. 그러는 동안 서로의 미래를 나누고 지지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행복이 무엇이든, 그것은 타인과 나눌 때 완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제 생각을 여러분들과 나눌 수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하네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