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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l 24. 2021

당신의 일출과 월출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을 몇 번이나 보셨나요? 오늘 해가 뜨는 시간은 몇 시고 달이 뜨는 시간은 몇 시인지 알고 계세요? 이것은 초등과학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알 법한 이야기인가요? 실제로 저는 나이가 마흔이 다 되도록 달이 언제 뜨고지는지 몰랐습니다. 어떤 날 보면 낮달이 있고 어떤 날 보면 밤에 달이 환하고, 어떤 날은 눈썹달이 뜨고 하는데, 그래서 달의 시간을 음력이라 한다지만, 정월대보름 즈음 되면 보름인가 할까, 그마저도 뉴스에서 얘기해주지 않으면 알기 어렵지요.

     


그래도 세종시 공터에는 달맞이꽃이 여기저기 펴서 어느날 보면 달을 향해 꽃이 핀 광경을 보기도 했지만, 달이 언제 떠서 지는지 직장을 다니다 보면 알기 어렵습니다.      



강릉에 와서 시간이 지나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달 뜨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날 바다로 떠오르는 달이 신비롭고 예뻐서요. 달이 물살을 그리는 광경이 신기해서, 그걸 보려고 달 뜨는 시간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천문우주지식정보(https://astro.kasi.re.kr/life/pageView/6) 사이트에서 달 뜨는 시간을 알려준다는 것도 그래서 처음 알았습니다. 지역을 클릭하면 그 지역의 그 달, 일출몰과 월출몰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 해는 5시 21분에 떴다, 오후 7시 41분에 졌고요, 달은 오후 8시 13분에 떴다 새벽 4시 55분에 집니다. 해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뜨지만 달은 30분 정도씩 늦게 뜨고, 그래서 밤바다로 달이 뜨며 달빛이 밤바다를 가르는 것을 볼 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습니다. 특히 보름달이 뜨며 바닷물을 훤히 비추는 그런 날은, 1년 중 며칠 되지 않습니다.      



여기 와서 한동안은 해 뜨는 것을 보러 다니고 달 뜰 때 즈음 바다에 나가 달이 뜨나 하면서 서성였습니다. 이런 한량짓을 해본 것은 처음인데, 누군가에게는 이게 생계와 관계된 것일 수 있으나 그냥 그 광경을 보고 싶어 바다로 걸어나가는 것은 확실히 한량짓이죠.


어떤 날은 일몰 시간에 맞춰 바다로 걸어나가기도 했습니다. 해가 지는 일은 매일 벌어지는데, 그 광경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매일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싶게 아름답습니다. 지는 빛 속에 반짝이는 것들이 선명해집니다. 이전 도시에서도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게 그나마 내 인생의 축복인가 싶던 날도 있었으나 어느날 야근과 업무 속에 그 축복이 사라지고나자, 과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싶어졌지요. 실제로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빌려보기도 했는데, 내 부족 때문인지 내 내일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 있을까요? 실제로 그 광경은 장엄하기 그지없지요. 그 일이 너무 당연해져버려 그러려니 하며 어쩌다 새해나 이럴 때 일출을 보러 가곤 하지만, 매일 놀랄 만큼 멋지게 해가 뜨고 달이 뜨고 해가 지고 달이 집니다.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 아닐까, 이제 좀 여유가 생겨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전기가 발명되고, 더이상 노동의 시간을 자연의 빛에 의지하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되며 인간의 삶은 변했습니다. 와, 해가 뜨네, 달이 뜨네, 하지 않아도 된 것이지요. 그것은 엄청난 자유였으나, 그 자유가 준 이득도 엄청나지만, 더는 사람들은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지는 데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것이죠. 그리고 얻게 된 것은 무얼까? 물론 엄청납니다. 이 더위를 아무렇지 않게 해준 에어컨이나 지금도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컴퓨터와 불빛, 이런 것들은 엄청난 것인데, 그 엄청난 것들이 결국 인간의 노동이 결과물이며 노동은 결국 자본으로 수렴되는 세계를 벗어나, 이제야 달이 뜨고 해가 뜨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지요. 해가 뜨고 달이 뜨니까 살 수 있는데, 더는 거기 관심 두지 않게 된 삶이 당연해지고, 해와 달을 의식하는 삶은 어느새 한량이나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가가 또 하나의 짐이긴 합니다.)


 

왜 사람들은 달이 뜨는 것을 보면 희안한 감정을 느낄까요? 달은 지구의 위성이고, 수금지화목토천혜명이 어떻고, 이런 지구과학을 대충 배우긴 했고, 심지어 며칠 전 우주여행을 한 아마존 회장님도 있는 판국에, 그래도 오늘 갑자기 바다로 달이 떠오르고 그 달이 훤하고 밝으면 기분이 이상하고 다들 달 얘기를 합니다. 오늘 달이 어떤가에 대해서요.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은 이런 얘기는 해본 적이 없어요. 이상하지요. 이 지역 주민들과는 오늘 달에 대해, 그 밝은 달빛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게 되는 거예요. 옛날에,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이런 얘기가 흔한 이야기였겠지요. 오늘은 달이 밝으니 밤마실을 가도 된다거나, 이런 얘기요.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달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는, 세상이 더 좋습니다. 회사를 마치고 나와서도 여유가 남아, 오늘은 달이 뜨니 달 뜨는 것 보러 산책을 하러 갈까, 이런 세상이 언젠가 올까요? 누군가는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걸까요?  



그러고 보면,  9-6가 되던 때의 삶 속에서 가장 좋아했던 계절은 여름인데, 그나마 해가 길게 떠 있어서, 퇴근하고도 해가 떠있으니 왠지 내 인생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 같다고 그런 얘기를 했더랬습니다. 가장 싫어한 계절은 겨울이었는데, 밤에 출근해서 밤에 퇴근하는 이 삶은 정말 맞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식물은 굴광성입니다. 빛을 향해 몸을 내밀지요. 빛으로 광합성해 영양분을 흡수하니까요. 인간은 빛이, 그러니까 자연의 빛이 없어도 될까, 이런 실험도 이루어지곤 하는 듯 하나, 형광등 빛과 다른 해가 내뿜는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행운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 여름에 에어컨의 도움 없이 하루종일 바깥에서 일하는 고역을 떠올리면, 에라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 뿐입니다. 이 불균형과 부조화, 부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어떻게 되려고 하는가, 이런 데서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물론 여기는 유토피아가 아니고, 우리는 영영 길을 찾는 중이겠지만, 해와 달의 이야기와 보통 인간개미 사이의 거리는 왜 이리도 먼 것일까요? 내일은 내 일이고 내가 하는 거지, 하다가도 까마득해지고, 그러다가 해가 뜨거나 달이 뜨거나 해나 달이 서산 너머로 넘어가는 것을 보며 하루가 갑니다.



강릉살이의 장점 중 하나는 달이 떠오르는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는 동해이니까요. 어느날은 바닷가에 있는 술집에서 우연히, 어느날은 드라이브하다가, 어느날은 집에서 새벽에 자다가 전화에 깼다가, 달이 떠오르는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마 돈이 되기는 어려운 이런 일을 장점이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달이 떠오르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은 좋아집니다. 이 마음을 어디에 쓰려고 이러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오늘은 보름이고 달이 뜬 동해바다를 사람들은 열심히 사진 찍고 있었습니다. 덜컥 움직인 마음을 남기고 싶어서요. 사진은 행복이 찍게 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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