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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l 19. 2021

강릉에서는 나무를 나눠줍니다

강릉에서 많이 보게 되는 단어는 '솔향강릉'입니다. 시에서 정한 브랜드인 것 같은데, 강릉 곳곳을 돌아다니다보면 와, 정말 시 브랜드를 잘 지었구나 싶게 곳곳에 솔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접근이 편한, 걷기 좋은 솔숲은 송정해변 옆 숲길입니다. 바우길 5구간이기도 한 이 숲길은 남항진부터 시작해 안목, 송정, 강문해변을 지나 경포호를 2/3 바퀴돌고 경포,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을 지나 사천까지 이어집니다. 약 16km라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길이나, 혼자 걷기에도 무리가 없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다른 바우길의 경우 혼자 걷다 보면 숲속에혼자 있게 되며 두려움이 슬금슬금 치솟아 걸음이 빨라지며 주변 풍경이 잘 안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코스는 그런 구간이 없습니다. 특히 바우길 5구간 중 송정해변 숲길은 어디 내놓아도 이만한 소나무 산책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솔숲이 빼곡합니다. 바로 옆에 해변이 펼쳐져 종종 바다를 볼 수도 있어, 산책을 위해 그 동네에 살까 이사 오기 전 후보지로 뽑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뙤약볕의 여름이라 바우길 5구간을 하루종일 다 걷기는 무리인 면이 있습니다. 경포를 나오면 숲길이 끊기고 사근진, 순긋해변은 여름볕을 그대로 맞으며 해변 옆으로 난 자전거도로를 걸어야는데, 오늘 이 구간을 걸으며 땀을 뻘뻘 흘리다 아 쓰러질 수도 있겠어,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마침 행안부의 폭염주의보 주의문자가 와서 주의할만한 일을 하는 중이구나 싶었구요.



그러므로 안목이나 송정해변에서 시작한다면 세인트존스호텔까지만 걷는 편이 지금 계절에는 맞습니다. 이 구간을 왕복하면 하루 1만보는 그냥 채울 수 있지요.


 

안목해변에서 송정해변까지의 1km 구간은 해변 옆으로 난 솔숲을 따라 1500보를 걷게 되는 건데요. 솔숲이 깊지 않으나 안목에서 커피를 마시고 걸으려 한다면, 금세 송정해변에 도착하게 돼 무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고 나면 양옆에 송정해변 공영주차장과 야외무대가 보입니다. 진정 강릉 최고의 걷기길이 아닐까 싶은 이곳은 해변 옆 솔숲과 딴봉마을산책로라는 솔숲이 2차선 도로를 두고 양옆으로 뻗어있어 차를 타고 지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입니다. (버스를 타고 오기도 좋습니다. 오성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국군송정콘도 방향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예전에 강릉에 살기 전에도 이 길을 자전거 타고 지나며,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숲이 바닷가 바로 옆에 있을 수 있는 거지 싶었습니다. 물론 자전거에서 내려 솔숲에 있는 벤치에서 시간을 오래 보냈지요.  



지금까지는 그저 숲이 있어 좋다 였는데, 눈여겨 보니 이 솔숲의 이름은 딴봉마을산책로더군요. 표지판에는 강문 가는 곳으로 외따로 떨어져 있는 봉이라 딴봉이라 불렀다는 이름의 유래가 보입니다. 이 산책로 길이를 그냥 직선으로 따지면 약 700미터 정도지만 길이 여러 갈래로 난 데다 한 바퀴 돌 수 있는 구조라, 이곳만 한바퀴 돈다 해도 ‘솔향강릉’의 체취를 느꼈어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족해 싶거나 바닷가에 왔으니 바다도 함께 느껴야지 싶다면 이 딴봉마을 산책로를 지나 송정해변 옆으로 난 솔숲을 계속 걸을 수도 있습니다. 강문해변 입구에 있는 세인트존스호텔까지 솔숲길이 이어지며, 기분 좋은 걷기를 할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벤치도 많아 의자나 돗자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앉거나 누워서 하늘을 볼 만한 곳도 많습니다. 안목이나 송정에서 시작해 세인트존스호텔까지 왕복하면 하루 1만보 피톤치드 뿜뿜 속에서 행복했어 할 수 있는, 힐링로드입니다. 머리 위 소나무잎들이 볕을 가려주는 데다 바닷바람이 불어 여기까지는 그리 덥지도 않은 편이구요.  




이 아름다운 숲길에 생활형 숙박시설 건축허가가 나, 한창 플랭카드가 붙는 등 걱정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이 나무를 다 다른 데 옮기고 여기 호텔을 짓겠다는 얘기 였는데요.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천혜의 관광명소를 없애고, 호텔을 지어 경관을 망친다는 게 너무 바보 같은 일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이 솔숲을 지킬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솔향강릉’에 걸맞게 곳곳에서 소나무를 발견하게 되지만,(놀러온 친구들은 대부분 이 도시는 정말 소나무가 많다는 얘기를 꼭 합니다. 그러면 저는 '솔향강릉'답다는 답을 꼭 하지요.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예요.) 제가 다음으로 꼽는 소나무숲은 ‘연곡해변솔향기캠핑장’ 옆 숲길입니다. 캠핑장으로 들어가지 않더라도(차 없이 그냥 들어가는 것은 입장료를 내거나 하지 않지만) 빼곡한 소나무숲길을 걸을 수 있는데요. 길을 지나갈 때마다 와 어쩜 이렇게 멋있는 소나무가 쭉쭉 뻗어있는 거지 싶습니다. 사천에서 나와 연곡으로 가는 2차선 도로 옆 소나무길인데요. 차도와 인도가 나눠지며 솔숲 안쪽으로 걸을 수 있는 인도로, 바우길 14구간 중 일부이기도 합니다. 이곳 역시 공공기관과 캠핑장이 자리 잡아 난개발되지 않고, 방풍림으로 심어두었던 소나무숲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본과 자연 사이의 균형이 관광일 텐데요. 때로 자본이 너무 심히 들어오면 어느새 자연은 뒤로 많이 물러나고 남은 것은 번쩍이는 불빛과 그 관광지에 돈을 낸 사람만 즐길 수 있는 인공미만 남은 공간이지요. 저는 강릉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1인입니다만 제가 강릉에 오고가던 10년 사이만 해도 아파트며 호텔이 많이 생기고 있어 아 이 자본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걸까 하곤 합니다.  

 


원래 하려던 얘기는 ‘솔향강릉’에서는 나무를 나눠준다는 얘기였는데요. 소나무숲을 잘 지키고 있는 ‘솔향강릉’에서는 3월 말 나무를 나눠주는 행사를 합니다. 식목일 기념행사이나 지구온난화 등으로 나무 심기 좋은 날이 앞당겨지며, 3월 말에 나눠주는 건데요.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올림픽경기장에서 드라이브쓰루로 진행되었으나, 원래는 줄을 서서 받았다고 해요. 매년 나무를 나눠주는 도시라니, 재밌지요? 심지어 나무도 7그루나 줍니다. 물론 묘목이기 때문에 이게 나무가 되는 건가 싶은 얇은 가지 7개를 주는 건데요. 자두, 앵두, 체리, 미니사과, 살구, 왕대추, 대봉나무 등 유실수 7그루를 줍니다. 나무를 심을 공간이 마땅치 않으면 칼랑코에, 금전수, 금사철, 테이블야자, 산호수, 스파트필름 등 실내공기정화식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금까지 살면서 내가 사는 도시에서 나무를 나눠주는 일을 처음 겪어보았는데요. 7가지 나무를 모두 심을 마당이 없어 베란다에 앵두나무일 가능성이 큰 얇은 가지를 심고 나머지는 공간이 있는 지인에게 주었습니다. 그게 3월 말이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분홍색 꽃이 예쁘게 피더니, 지금은 사방으로 가지가 뻗으며 정말 집 베란다에 나무가 있네, 싶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열매가 열리지 않아 정말 내가 앵두나무를 심은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나무 크기를 본 사람들은 체리나무가 아닐까 하더군요.) 어쨌든 초록이 그리웠던 제게는 엄청난 일이지요.


 

나무를 나눠주는 도시, 마당이 있는 집에 유실수를 심으라며 나눠주는 도시, 괜찮지 않나요? 그래서인지 강릉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면 조경을 잘했구나 싶은 곳이 많습니다. 경포호에 봄이면 열리는 벚꽃잔치도 그렇고요(축제 아니고 잔치에요 ㅎㅎㅎ) 경포호에 봄에 심어두었던 진달래나, 시내 곳곳에 계절별로 피는 꽃을 볼 때마다, 심지어 우리 아파트마저도 계절별로 꽃이 필 수 있게 조경을 합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서울이나 다른 도시 아파트에서 해놓은 조경을 보며 느끼던 인공미보다는 어떤 어우러짐이 있게요.  


자연 속에 살다 보면, 이런 게 더 잘 보이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관광지니까 조경을 하는 거라고 하지만, 또 조경사업이 꽤 돈을 빼기 좋은 사업이라는 얘기도 있지만,(묘목만 봐서야 얘가 얼마나 클지, 품질은 어떨지 알기 어려우니까요.) 조경을 맡기는 주체가 있고 누군가 조경을 직접 하는 사업자가 있을 텐데, 어쨌든 철 따라 바뀌는 자연을 계속 보고 있다보면 거기에 따른 어떤 감각이 조금 더 좋아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집집마다 나눠준 유실수들이 언젠가 담 옆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도 자연스러운 조경사업의 하나일 테지요.  



사업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개인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세상은 사업으로 가득하고 그 사업으로 먹고 걷고 흙을 뿌리고 나무를 키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자고, 먹고, 입고  하는 일은 다 사업 속에서 사는 일이란 걸요. 그건 내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그와 상관없이 무심코 한 걸음, 한 감탄이 그 속에 있다는 것, 그걸 매일 알게 됩니다. 그게 때로 어렵고, 그래도 살아야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우나 사는 방향이 좀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면 좋겠다, 거기서 벌어지는 잉여와 공평의 분쟁을 다 들여다볼 수 없지만, 그래도 더 많이 그랬으면 좋겠다 할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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