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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부부 Oct 19. 2021

딸 가진 엄마, 며느리 가진 엄마.

아내, B 이야기 - 가족과의 갈등


    요즘은 생략하는 집도 많다지만 우리 부부는 결혼에 있어서 남들이 하는 건 다 해본 케이스다. 혼인서약도 하고, 부모님의 편지 낭독 시간도 가지고, 친구들이 축가도 불러주고 전통 의상으로 후다닥 갈아입은 뒤 폐백까지 끝마쳤다.


   ‘폐백’하면 어떤 장면이 생각날까. 아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부모가 결혼한 자녀들에게 ‘아들 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라’는 염원을 담아 신부의 치마폭에 던져주는 밤, 대추 증정 순간일 것이다. 조율자라고도 불리는 폐백상 단골손님 대추(조棗)와 밤(율자栗子)은 각각 씨가 있고 없는 차이에 따라 아들과 딸을 상징하고 치마폭으로 골인한 대추와 밤의 숫자만큼 아들딸을 낳고 잘산다는 의미가 있다. 참, 잊어버리기 쉬운 규칙이 하나있다. 이때 딸 가진 부모는 조율자를 던질 기회를 얻지 못한다.


폐백을 할때는 밤, 대추를 신부 치마폭에 던지는 풍습이 있다.


    손자, 손녀를 보는데 진심이셨던 시부모님 덕분에 우리 부부는 넉넉잡아 10개가 넘는 대추와 밤을 치마폭에 담아내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받은 대추와 밤은 비닐봉지에 넣어져 신혼여행 짐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시작은 좋았던 셈이다. 하지만 급하게 버스를 잡아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신부 화장을 제대로 지우지도 못하고 신혼여행 비행기에 올랐던 우리 부부는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밤과 대추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고, 첫 호텔에 체크인하고 짐 정리를 하다가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조율자를 발견하게 된다.


    미신을 열렬히 믿지는 않지만 결혼이라는 좋은 일을 잘 끝내놓고 찝찝함을 남기기 싫었던 우리는 상한 것이 분명한 밤과 대추를 사이좋게 1알씩 나눠 먹었고 아직 20대였던 우리의 장은 다행히 심한 트러블 없이 밤과 대추를 소화해주었다. 하지만 사건의 시작은 그때부터였을까. 다 먹지 못한 대추와 밤, 그리고 넘쳐났던 시부모님의 염원은 사라지지 않은건지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갈등을 일으켰다.

     



    인공수정을 실패로 끝내고 쥐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명 한의원을 찾아 경주로 내려간 날, 나는 우리 부모님께 임신으로 고생하고 있는 현실을 넌지시 전했다. 그날 이후 엄마는 속으로 궁금하셨겠지만 끝까지 내게 먼저 임신 얘기를 꺼내지는 않으셨다. 단 한약이 잘 도착했는지 물으시면서 한가지 당부 말씀은 잊지 않으셨다.     


“너... 병원 다니는거, 시어른들께는 말씀 안 드리는게 좋겠구나.”     


    임신의 원리는 밝혀졌지만, 난임의 원인은 특정할 수 없는 21세기의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여성의 몸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남성 측의 크리티컬한 결격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99프로 난임이라는 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게 사실이다. 혹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부모님이 난임의 책임을 내게 묻지는 않을 지, 내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는 것은 엄마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엄마에게 난밍아웃을 한 탓에 엄마까지 딸 가진 부모로서 함께 전전긍긍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의 가슴에도 얹어졌을 난임이라는 돌덩이를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하루 빨리 임신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달 뒤 마침내 아기집을 본 나는 기쁜 마음에 6주차에 양가 부모님께 임신 소식을 전했다. 마침 추석을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이라 시부모님은 이번 제사는 알아서 준비할테니 내려오지 말라는 말로 나를 배려해주셨고, 엄마는 추석이 지난 다음 주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오셔서 그간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태몽일지도 모르는 엄마의 꿈 이야기를 알려주시며 기뻐하셨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는 8주차에 내 곁을 떠났고, 황망함과 슬픔, 그리고 양가 부모님을 볼 면목도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떠난 아기에 대한 슬픔 속에 살 수는 없었다. “괜찮니?”라는 말조차 상처가 되는 시기였기에 나는 남들이 물어보기 전에 먼저 괜찮은 척을 해야 했다. 매주말 양가에 전화를 드리는 시간이 되면 일부러 더 활기차고 즐거운 삶을 사는 딸, 며느리인 척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명절도 지났다.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아는건지, 아니면 그렇게 아기를 떠나보낸 후 임신 생각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건지 시댁을 방문할 때면 어머님의 말 곳곳에는 ‘임신’이라는 단어가 숨어있었다.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가 바뀌었던데 좋은 소식 있는거지?’
‘집 보일러실에 새가 알을 까놨는데 내가 너네 생각해서 안 내쫓았다.’
‘(TV를 보시며) 쯔쯔쯔... 쟤는 결혼한지 5년차인데 애가 없다니... 애를 가져야지’
‘XX이네 딸은 드디어 임신 했다더라. 얼마나 좋아하던지’     



나의 폐백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은걸까. 어머님은 어떻게든 내 치마폭에 밤과 대추를 더 던져놓고 싶은 것 같았다. 이렇게 던져진 말들은 나를 더 조급하게 하고 죄책감이 들게 했지만 악의 없이 던져지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마찬가지로 막아낼 방법은 없었고, 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모처럼의 여유를 즐긴 뒤 나와 남편은 언제나처럼 양가에 전화를 걸었다. 결혼기념일 사진을 자랑하는 우리에게 아버님의 뜻밖의 말씀을 건네셨다.


“그게 좋냐. 결혼 3년차에 애가 없는데 그게 뭐가 좋냐?”


화기애애하게 시작했던 전화 통화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고, 나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말을 얼버무렸다. 남편의 주도하에 급하게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곧 우리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 차례였기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복을 연기했다. 하지만 물에 젖기 시작한 휴지조각처럼 내 마음은 젖어들어갔고 떨치려 해도 아버님의 한마디는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왜 그순간 그런 말씀을 하신걸까. 내가 행복연기하듯 어머님아버님도 사실은 아기를 못 낳는 내가 못미더운데 연기를 하며 나를 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나는 참다못해 남편에게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 부모의 말과 행동이 배우자에게 상처를 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이 문제에서 늘 “내가 너에게, 그리고 너의 부모님에게 더 잘할게. 우리 부모님에게 잘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라는 말로 나를 달래곤 했다. 이번에도 역시 남편은 본인이 더 잘하겠다는 말로 나를 위로하려 했고, 나는 앞으로도 반복될 상황은 오빠가 내게, 우리 부모님께 잘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한참 말없이 듣고만 있던 남편은 내 말에 동의했고 본인이 직접 터놓고 부모님과 대화해보겠다고 해결책을 냈다. 내가 걱정 하는게 뭔지 알기에 전적으로 본인의 문제로 포장해서 말할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딱 일주일만 달라고 말했다. 일주일 뒤 다시 양가에 안부를 전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수화기 너머 어머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B야. 미안해~ 너희가 얼마나 힘든지 말을 안해주니 알 수가 있었어야지. 앞으로 조심할게.”


아버님은 따로 말씀은 없으셨지만 미안함에서 비롯한 게 분명한 평소보다 더 밝고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다. 전화 통화 하나로 끝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은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임신으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부모님의 마음이 좋을리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난임은 우리 부부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족 모두에게 상처와 짐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일로 아들을 바라게 되진 않았지만, 이런 일들은 복을 비는 미신들을 그냥지나치게 하지는 못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그렇게 나의 바램이 어딘가에 닿기를 바랄뿐이다.


딸 가진 부모는 딸의 치마폭에 밤, 대추를 던지지 않지만 며느리를 가진 부모는 며느리의 치마폭에 밤, 대추를 던질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임신이 되기만 한다면 더 던져주고 싶은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던져진 밤과 대추는 그걸로 끝, 이제 그것을 받은 부부의 몫이다. 난임길을 걷고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알린 자식으로써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한걸음 뒤에서 언젠가 우리가 피워낼 밤, 대추나무를 기다려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양가 부모님의 바람을 거름 삼아 언젠가 우리가 한 알씩 먹은 밤, 대추가 싹을 틔울 날이 올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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