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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부부 Oct 19. 2021

세상의 중심에서 난임을 외치다.

남편, Y 이야기 - 일과 경제적 문제


“여자라서 못 할 건 없어. 나는 그런 말 듣지 않게 일할 거야”


   우리가 부부가 아닌 연인이었을 때, 아내는 첫 회사 합격 통지를 받고 축하를 위해 만난 데이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당차게 말하는 아내가 좋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너는 잘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말 잘 해내겠다는 아내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혼 후 아내는 날 때부터 ‘일하는 엄마’가 꿈이었던 사람처럼 일도 잘하고 좋은 엄마도 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나중에 집밥 해주는 엄마가 되겠다며 어려운 요리를 뚝딱뚝딱 만들어보기도 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비교적 육아휴직이 자유로운 회사로 이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노력하던 아내는 회사에서 민폐 덩어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자신을 자책하는 일이 잦았다. 

     

‘6시 55분에 도착했는데 대기가 벌써 20명이야ㅜㅜ’
‘이번에는 채취 일정이 언제 나올까. 제발…. 토요일이면 좋겠어.’
‘아…. 어쩌지…. 내일 중요한 일이 있는데, 하필 이식 날이랑 겹쳤어.’
‘이번 이식 날은 반차써야겠어. 연차가 얼마 안 남았어.’     


   회사에서 일하던 중 이런 한숨 섞인 아내의 메시지를 받은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회사에 난임병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던 아내는 M병원 입성 1달도 지나지 않아 잦은 아침 진료와 시술로 난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내의 팀장님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아내의 마음에 깊이 공감해주셨고 최선을 다해 아내의 편의를 봐주셨다. 하지만 아내는 매 순간 팀장님과 팀원들에게 미안해했고,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구구절절 시술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차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그러기를 몇 달째 아내는 엄마가 되기 위해 일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오빠…. 나 일을 관두는 건 어떨까.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 싶어. 일을 관두면 임신이 될지도 모르고….”     




   아내가 취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지켜봐 왔던 나는 마음이 아팠다. ‘B가 편한 쪽으로 결정해. 네가 힘든 건 나도 싫어.’라고 말하며 아내를 달랜 뒤 곰곰이 생각해봤다. M병원에 다닌 후 나는 마음 졸이는 것 외에 외적으로 바뀐 건 크게 없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난임 부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생활하다가 한 달에 한두 번 혹은 그보다 적게 아내가 알려주는 날짜에 병원에 들러 정액을 채취하거나 아내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이 다였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정자 채취 때문에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하는 나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게다가 그날이 거래처와의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이라면? 윽….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물론이요. 출근 후에도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눈치가 보일 것 같았다. 그 일을 대신 처리한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지사였다. 아내는 이 모든 걸 매번 견디고 있을 터였다. 어쩔 수 없이 난임은 여성들에게만 유난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너무 잔인하게 굴었다.    




    아내는 한시도 이런 고민을 놓은 적이 없는 것 같았지만, 쉽게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하지는 못했다. 본인의 사회적 자아실현도 한몫했겠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아내의 발목을 잡는 건 분명했다. 나와 아내는 다행히 이 어려운 취업난 속에도 둘 다 직업을 가지고 있고, 직장을 다니는 덕분에 꽤 큰 금액의 대출도 받아 주거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갖고 싶은 걸 다 살 정도로 부자는 아니어도 식당에 들어가 음식의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할 정도의 여유는 있는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다. 나는 요즘 유행한다는 파이어족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훗날 자존심을 완전히 버려가면서 회사생활을 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 어려움이 처했을 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혼 후 우리는 올해의, 그리고 향후 10년 뒤의 저축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지키자고 약속했다.  

    

아내의 샤넬백. 아내는 의료폐기물로 분리해야하는 주사기를 샤벨백에 모았다. 샤넬백만큼 돈써야 생기려나? 우스개소리로 시작한 일인데 벌써 우리의 진료비는 샤넬백을 훌쩍 뛰어넘었다. 


   예기치 못하게 우리 앞에 등장한 난임 시술비는 그런 우리의 재테크 의지를 꺾는 수준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느 순간 우리는 저축은 생각지도 못하고 마이너스 인생으로만 가지 말자는 생각으로 그때그때 시술비를 부담하고, 임신에 좋다는 영양제와 음식을 사고, 보약을 지어 먹었다. 임신에 최악은 ‘스트레스’라는 말을 들은 데다 내가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그뿐이라서 나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라는 명목으로 여행을 제안하거나 호캉스로 기분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행복해졌을지언정 내 마음 한 켠은 무거워졌다. 아내에게는 “괜찮아~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 더 벌어올 테니 신경 쓰지 마.”라고 이야기했지만, 돈을 더 벌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요즘은 그래도 정부 지원이 워낙 잘 돼서 시술비는 거의 공짜라던데?” 물론 우리나라는 저출산 국가로 난임 부부 지원 혜택이 있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맞벌이 부부라서 지원대상 소득 기준인 중위소득 180%를 초과한다는 데 있었다. 당연히 여기서 대출이 얼마나 있는지, 학자금은 있는지, 이자는 얼마나 내는지에 대한 정상참작은 될 리가 없다. 아마 이 기준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맞벌이 부부는 우리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기엔 우리 부부는 아직은 살만하다. 하지만 2020년 국가 출산율 0.84명, 저출산이 심각하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난임 부부를 위한 사회적, 경제적 도움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잘 낳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넘치지만, 사회적, 경제적 문턱이 높아 그 마음을 접는 부부들이 없기를 바란다. 들어주는 이는 적겠지만 이렇게나마 세상의 중심에서 난임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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