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우리 집에는 한약 냄새가 진동했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최고의 명약이라는 말에 한약을 먹는 동안은 아내도, 나도 커피나 술을 끊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삼신 할아버지표 약발은 우리 부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하나, 시험관 시술뿐이었다.
시험관 시술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아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생리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M병원에 전화를 하고 예약 일정을 잡았다. 내 쪽에서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아내 쪽은 달랐다. 그동안은 비교적 채취가 쉬운 남자 쪽 후보군만 채취했다면 이번에는 여자 쪽 후보군도 채취의 대상이 되었다. 채취가 어려운 만큼 가능한 많은 후보를 뽑아내는 게 이번 시술의 관건인 것 같았다.
어느순간 우리집 냉장고에는 김치대신 과배란 주사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험관 시술은 인공수정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먹는 약도, 맞는 약도 늘어났다. 병원을 간다고 하면 ‘에구 오늘도 병원에 갔다 출근해야 해서 힘들겠다.’ 정도로 생각했던 나는 주말이 되어서야 아내가 맞는 주사의 실체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아내가 맞는 주사는 배에 맞는 피하주사였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맞아야 한다고 해서 아내는 주말에도 주사 시간에 맞춰 늦잠을 잘 수 없었다. 한번은 자다 일어나 아내가 직접 주사를 놓는 모습을 보았는데, 약병에 큰 주삿바늘을 끼워놓고 주사액을 주입하는 조제 과정을 거친 뒤 자기 배에 주삿바늘을 푹 찔러 넣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내와 내가 걷는 길이 완전히 다른 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오빠, 나 주사 때문에 살찐 것 같아. 진짜야.”
연애 때부터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살들이 아내의 눈에 보이는 듯 살찐 것 같다는 불평을 자주 늘어놓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얼핏 봐도 진짜 아내의 배가 부어있었다. 게다가 울긋불긋 멍이 들어있기까지 했다. 어떤 부부들은 남편이 아내의 배에 주사를 놔주기도 한다는데 워낙에 똥손으로 유명했던 나는 아내의 배에 멍만 더 추가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내가 해줄게.’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고생한 보람도 없이 아내의 배에서는 1개, 많으면 3개의 난포밖에 자라지 않았다. 과배란이 잘 되는 사람들은 한 번에 수십 개까지의 난자가 자라고 채취 후 배양된 배아를 냉동시키기도 한다는데 대체 우리는 왜 늘 안 좋은 케이스만 걸리나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시 또 이 과정을 고스란히 반복해야 하는 아내의 부담이 내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채취 전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정자 채취 4번째면 풍월을 읊지는 않아도 긴장은 덜해야 하건만, 아내가 준비과정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면 알수록, ‘혹시나 당일에 내 성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여러 번 잠에서 깼다.
수면 마취 때문에 전날 밤부터 금식하고 있는 아내를 두고 나만 아침 식사를 하기 민망해서 "우리는 일심동체니까 나도 아침을 먹지 않겠어."라고 나름 멋지다고 생각한 멘트를 날렸다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괜히 혼이 나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의 긴장을 안고 난임병원의 끝판왕 시험관 시술을 본격적으로 대면하러 M병원에 향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다른 공간으로 흩어졌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병원 2층으로 향했다. 외관상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대기실에 큰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모니터에는 대기 중, 채취 중, 회복 중 세 가지 단계가 표시되어있고 각 단계 아래에 환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모니터 쪽을 바라보고 앉은 남편들은 대게 서로를 의식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가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아내의 이름이 어느 단계까지 왔는지 모니터에서 확인하곤 했다.
인공수정할 때 등록했던 손등 혈관 인식 과정을 거치고 나는 종이에 우리 부부의 이름과 금욕기간을 기재했다. 부부간에나 알법한 이런 내밀한 정보를 어딘가에 적어내야 한다는 사실은 내가 M병원에 있고, 이제 곧 정자채취를 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아내의 이름이 호명되어 회복실로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채취실로 안내받았다.
긴장 속에 대업을 끝내고 “Y님, 수정 진행하는 데 문제없으세요.” 간호사 선생님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다행이 내 임무는 완수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남은 건 아내가 무사히 회복실에서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30분 정도의 기다렸던 인공수정과 달리 이번 시술은 확실히 대기시간도 더 길어졌다. 회복실에서 나오는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남편들은 미어캣이라도 된 듯 회복실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내렸다. 2시간쯤 지나자 마침내 아내가 회복실에서 나왔다.
아내의 표정만으로는 결과가 어땠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고생한 아내를 이끌고 근처 밥집으로 향했다. 아침을 챙겨 먹은 나조차 긴장이 풀리니까 배가 고파왔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아내는 오죽할까 싶었다. 국밥을 한 그릇씩 시켜놓고 아내는 시술 후 받은 유의사항과 경과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었다.
오늘 채취한 난자는 총 3개로 2개는 성숙 난자, 1개는 미성숙 난자라고 한다. 성숙, 미성숙의 차이는 몰랐지만, 채취 전 최악의 상황에서 1개만 채취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나는 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만에 하나의 경우를 꿈꾼 건지 결과지에 적힌 ‘3’이라는 숫자에 속상해했다. 채취한 난자가 모두 배양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서 이번 주기에 이식조차 못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아내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이러다 "3개가 다 배양에 성공해서 대한, 민국, 만세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아내의 기분을 띄우기 위해 노력했다.
어렵게 채취한 3개의 난자의 운명은 이틀 뒤 밝혀졌다. 여느 때처럼 칼퇴근을 위해 정신없이 일하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M병원 어플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 도착했다. ‘수정란 수2’라고 적힌 문구를 보자 나는 일하다 말고 ‘아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나지막이 외쳤다. 남들처럼 5, 10이 아니어도 좋았다. 0이 아닌 숫자가 적혀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말 감사했고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식날 나도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바로 다음 날 이식을 하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동행할 필요가 없다며 “일도 바쁠 텐데 나 혼자 잘하고 갈게 걱정하지마”라고 대답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도 안도감이 묻어있었고 수정란 수가 마치 임신 성공이라도 된 듯 우리 부부는 시험관 초짜 부부답게 다가오는 이식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나를 안도하게했던 두개의 배아. 몽글이를 만난 순간 우리부부는 몽글이와 사랑에 빠졌다. 이날 이후 몽글이는 우리집에서 가장 잘보이는 위치에 놓여있었다.
시험관 시술의 마지막 관문 배아 이식 날. 아내를 혼자 보내고 회사로 출근하니 초조함이 커졌다. 언제 아내의 메시지가 도착할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기를 수십 번, 마침내 잘 끝냈다는 아내의 연락이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보여줄 게 있다고 장난 섞인 이모티콘까지 보내는 걸 보니 아내의 기분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날 저녁 아내는 나에게 사진을 한 장 건넸다. 과학책에서 봤을 법한 세포 분열하고 있는 2개의 배아가 나온 사진이었다. 동글동글한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는 세포 단계의 배아들에게 ‘몽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아내는 배아 등급이 중급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중급이야! 딱 봐도 최상급이구만!”
하고 벌써 팔불출 면모를 보이기까지 했다. 비록 지금까지 계속 실망만 해왔지만, 이번에는 특히 느낌이 좋았다. 게다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세포 상태지만 사진으로 나와 아내의 결실이 보인다는 점에서 아기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몽글이들아. 엄마 아프게 하지 말고 엄마 배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주렴” 하고 부끄러워하는 아내의 배에 뽀뽀하며 미리 행복감에 젖었다. 난임 끝판왕이라는 시험관 시술은 힘든 만큼 희망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이곳을 졸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