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부부 Oct 20. 2021

당신에게 닿지 못한 말들

아내, B 이야기 - 난밍아웃, 주위의 시선

※ 주의 : 이 글에는 영화 CODA(2021)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째 이어지는 임신을 향한 여정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홍길동처럼 사는 게 가장 힘듭니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모두가 알고 있는 홍길동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구구절절 이어지는 서러운 말들은 생략하자. 핵심은 A를 A라 하지 못하는 별종으로 살아가는 데 있으니 말이다. 지난 3년간의 내 삶이 홍길동이었던 이유는 행복을 행복으로, 장난을 장난으로, 위로를 위로로 받아들일 수 없는 비뚤어진 사고방식, 그리고 주류 사회에 속하지 못한 자가 느끼는 필연적인 외로움에 있다.     




   어느 날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 때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사이에 이런 근황은 직접 전하는 게 맞지 않냐며 친구는 내게 “나, 임신했어! 딸이래!!”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정말? 너무 축하해!!”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내 목소리는 어딘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생경하게 들렸다. 뒤이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너무 잘됐다. 건강 잘 챙기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언제 한번 보자”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네며 나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축하할 일이었고, 멀리서 있었던 내 결혼식에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준 친구였다. 그런데도 100%의 축하를 건네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다. 손 닿는 모든 게 황금을 바뀌어 먹지도, 사랑하는 가족을 안지도 못하는 고대 그리스신화 속 저주받은 왕이 된 느낌이었다. 타인의 행복은 이상하게도 뾰족한 가시를 품고 내 가슴에 박혔다. 

     

   결혼 4년 차에 접어들면서 우리 부부가 아기를 가지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충고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고의가 아닌 게 분명했지만, 사람들의 궁금증과 장난은 가시 그 이상이었다. 

한번은 심술궂은 말로 친한 사이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타 부서 팀장님이 농담으로 “너는 아직 애도 없냐? 병신이냐? 무조건 빨리 가지는 게 좋으니까 빨리 애 가져.”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 팀장님 뭐에요! 꼰대도 아니고~”라고 평소처럼 내가 웃으며 반박하기를 기대하셨던 팀장님의 앞에서 나는 우물쭈물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 잠시만요. 저 전화 좀…….’ 하는 말을 끝으로 화장실로 자리를 피해 혼자 왈칵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평소에 그분이 말씀하시는 수위를 생각하면 애교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이때 함정은 나는 정말 ‘애도 못 가지는 병신’이라는데 있었다.    

  

   일상을 말하는 대화에서도 나는 편하게 낄 수 없었다. “아침에 배에 주사를 놓고 버스를 놓칠까 봐 뛰었더니 토할 것 같아. 이번 달도 실패해서 다음 달에는 더 비싼 방법을 시도할지도 모르겠어”라는 일상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혼자 울컥하는 직장 동료라…. 나라도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어떤 다이어트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또래 여직원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맞장구를 치며 여러 주사와 약을 쓰는 과정에서 불어버린 내 몸뚱이를 겉옷으로 감쌀 뿐이었다. 너무 다른 일상을 사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 시작했다.      

    한약도 먹어보고, 커피도 끊어보고, 운동도 하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정확한 시간에 주사를 맞으며 시술에 임해봤지만, 그 결과가 3번째 유산으로 돌아오면서 나의 홍길동 병은 더 심해졌다. 어느 순간 나는 누구보다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조차 그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네가 힘든 거 나도 알아. 그래도 둘이서 행복하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가 와줄 거야. 아직 젊잖아.” 
“다음에는 튼튼한 아이가 오겠지. 연예인 OOO도 3번 유산하고 건강한 아이를 2명이나 낳았다더라.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봐야지”
“그래도 태어난 다음 아이를 잃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니…….”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끝까지라는 말에서 끝은 어딘지 따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나는 그저 성의 없이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세상에 슬픔은 혼자 짊어진 듯 외로워하고 있을 무렵 문득 친구의 동생이 갑작스레 희귀병으로 중환자실로 실려 가 몇 주째 의식을 찾지 못했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친구에게 ‘다 잘 될 거야. 조금만 더 힘내자.’상투적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위로는 과연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을까. 감히 내가 알 수 없는 타인의 슬픔은 대체 어떻게 위로할 수 있는 걸까. 


3명의 농인과 1명의 청인소녀로 이루어진 가족. 이 가족은 따뜻함을 매개로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영화CODA)


  이 문제에 정답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그 해답을 영화 속에서 찾아보려 한다. 영화 [코다(CODA)]는 청각장애 가정에서 태어난 청인 소녀 루시가 주인공인 음악영화다. 청각장애와 음악의 만남, 소재에서 이미 불통의 조짐이 보이고 그에 따른 갈등이 영화를 끌고 가겠다는 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영화 속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음악을 사랑하고 천부적인 재능도 지닌 루시는 음악 선생님의 눈에 들어 버클리 음악대학교 진학을 준비한다. 하지만, 농인 가족들은 세상과 가족을 이어주는 유일한 구성원인 루시가 집을 떠나면 생계를 이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때까지만이라도 그녀가 가족을 떠나는 것을 보류해주기를 바란다.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스토리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예상치 못한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루시는 오랜 시간 준비해온 노래 실력을 음악발표회에서 뽐내고, 가족들도 딸의 발표회 자리에 기쁜 마음으로 참석한다. 눈치껏 무대가 끝날 때마다 따라서 박수치던 가족들은 발표회가 길어지자 ‘오늘 우리 딸 옷이 예쁘네.’ ‘끝나고 저녁에 뭐 먹을까?’ 같은 대화만 주고받게 된다. 관객들은 그런 가족들의 무심함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루시가 메인이 되는 마지막 무대에 집중하려 한다. 바로 그 순간 영화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을 통해 관객들을 농인 가족이 보고 듣고 느낄 세계로 초대한다. 옆 사람의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고요해진 영화관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 아버지는 루시를 따로 불러내 노래를 불러 달라고 말한다. 루시는 아버지의 앞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는 아름다운 음악은 들을 수 없어도 루시의 목에 두 손을 올려 그 울림이라도 느껴보려 애쓴다. 그렇게 농인 아버지는 청인 딸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고, 딸 역시 아버지의 손이 주는 따스한 손길에 그간의 상처를 위로받는다.     



    필연적으로 슬픔은 개인적인 감정이기에, 우리는 어떻게해도 타인의 슬픔의 깊이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사실을 망각한 채 내가 겪은 슬픔을 잣대로 ‘괜찮아? 나도 겪어봤는데 곧 잘 될 거야.’ 가벼운 위로를 건네기도 하고 나처럼 내 슬픔에만 매몰되어 타인의 위로를 튕겨내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나는 주변의 따뜻한 손길로 때때로 위로받으며 홍길동 병을 극복하고 슬픔을 견뎌내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 계속되는 실패와 그 과정에서의 아픔을 말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괜찮아. 잘 될거야’ 희망의 목소리는 되지 못할지라도 따뜻한 울림으로 닿아 누군가에게는 이해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는 노력, 당신의 슬픔과 함께하고 싶다는 다정한 손길이 지닌 힘은 생각보다 크니까 말이다.

이전 20화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