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Y 이야기 - 난밍아웃, 주위의 시선
최근 카카오톡 버전이 업데이트 되었는지 친구목록 상단에 프로필이 바뀐 친구들 리스트가 나온다. 겨우 이름만 아는 사람들부터, 한때 친했던 친구, 그리고 지금도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근황이 프로필 사진에서 드러난다. 결혼 웨딩사진, 멋있게 찍은 바디프로필, 행복한 커플의 사진 등등 모두가 행복해보인다. 그중 가장 시선이 가는 사진은 역시나 아기 사진이다. 우리가 임신 준비를 하지 않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간절한 상황이다 보니 아기 사진을 올린 친구들이 제일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아기 100일 스튜디오 촬영 사진을 보면서 퀄리티가 좋은 곳들은 ‘우리도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촬영해야겠다.’ 기약하며 따로 메모도 해놓았다. ‘우리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우리 부부도 그저 행복해 보일 것이다. 슬프거나 우울한 일을 SNS에 올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특히 난임은 더더욱 비밀스러운 경우가 많다. 겉으로 봤을 땐 전혀 티가 나지 않고, 그저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로 취급받는다. 혹여 누군가 묻더라도 말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 대게는 신혼을 좀 더 즐긴다거나, 경제적인 이유 등 각종 핑계를 대며 아직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몇 안 되는 지인에게는 내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먼저 회사의 팀장님께는 말씀을 드렸다. 시술 스케줄 때문에 몇 차례 휴가도 써야 했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혜택인 의료비 지원으로 시술비의 일부를 보전받기 위해서였다. 가끔 만나는 친한 친구들에게도 일상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레 병원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되었다. 구구절절 말하지도 않았거니와 어차피 제대로 이해해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이랬다.
“아니. 아직 젊은데 왜 벌써 난임 병원까지 다니는 거야?”
“맘 편하게 가지면 임신은 되는 거니까 너무 걱정마.”
당연히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들이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나와 아내는 젊지만 3년째 병원을 다니고 있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몇 번의 휴식기를 가지기도 하고 실제로 여행도 다니며 즐겁게 일상을 채워갔지만, 어느 순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마냥 임신을 생각하면 스르르 행복은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위로들은 내게 와닿지 않았다. 가끔은 뒤통수를 세게 갈겨주고 싶은 말도 있었다. 최근에 만난 오랜 고향 친구는 난임 사실을 밝히자, 남자 정력에 좋은 식품을 추천해서 나도 모르게 ‘헛소리하지 말라’며 큰 소리를 쳐버리기도 했다. 다행히 바로 정신을 차려 나의 예민함을 사과했지만.
신형철 평론가는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뜻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난임이라는 우리의 상황을 사람들은 인지할지언정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위로를 받는 것조차 불편해졌고 자연스레 우리 부부끼리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됐다.
그렇다고 난임을 함께 겪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큰 문제가 있다. 나는 수년 전 대학 친구들과 함께 실전 취업 스터디를 결성했다. 정보를 공유하고 으쌰으쌰하며 함께 자기소개서를 쓸 땐 동지가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너무 좋았다. 그러다가 공채 서류 결과 발표되기 시작하자 각자의 희비가 엇갈렸다. 특히 나머지 친구들은 전부 합격했는데, 나만 불합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멘탈이 탈탈 털리는 경험이었다. 난임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함께 정보와 고통을 나누며 위로가 되는 동지지만, 누가 많은 시술 경험이 있든 나이가 어리든 상관없이 누군가 먼저 임신에 성공해서 떠나게 되면, 남아있는 사람은 물론 축하하겠지만 동시에 ‘도대체 나는 언제 저런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하는 좌절감과 허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몇 달 전 회사 여직원분이 난임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오며가며 자주 대화는 나눴었지만 같은 어려움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바로 식사 자리를 만들어 그간의 어려움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며,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는 처음으로 난임을 주제로 진정한 공감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동료분은 임신 준비 등을 이유로 휴직했고, 최근 임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동료분이 얼마나 마음고생, 몸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나도 무척 기뻤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됐다. ‘부럽다! 우리는 언제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동료분도 기쁜 소식을 내게 먼저 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아직 난임으로 힘든 상황일 수 있는데, 본인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먼저 떠나는 자가 될지, 혹은 남겨진 자가 될지 모르는 난임의 세계에서는 결국 동지란 있을 수 없기에, 우리는 불특정 다수가 모인 난임 카페에서 단편적으로 경험과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비단 우리만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난임 부부를 곁에 둔 사람들, 혹은 다른 이유로 오랜 기간 슬퍼하고 고통받는 지인을 곁에 둔 분들, 그리고 그들을 돕고 싶은 분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브라이언 셔프, 론 마라스코가 쓴 [슬픔의 위안]이라는 책에 나와 있다. 함께 기도해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는 이렇게 말하라고 한다. “기도는 제가 직접 할테니 설거지나 좀 해주시겠어요?” 한걸음 뒤에서 가끔 그들이 손내밀 때 잡아줄 수 있을 정도의 관심. 그것이 최선의 위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