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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부부 Oct 22. 2021

비록 희망에 그칠지라도...

남편, Y 이야기 - 난임부부의 행복론, 자세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이 아픔으로 끝나고도 벌써 1년이 더 지났다. 그래도 초음파사진으로 가능성을 확인했기에 이후로도 우리는 여러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사이도 여러 가지 아픔으로 채워졌다. 선물처럼 자연임신으로 우리를 찾아온 아이는 극초기 유산으로 임신 종결이 되었고, 다시 시도한 시험관 시술은 지난번과는 달리 임신테스트기에 희미한 두 줄도 채 남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어느 날 저녁 아내는 선물로 받아 보관하고 있던 와인 한 병을 열었다. 그리곤 모든 남편에게 공포와도 같은 말을 꺼냈다. “오빠. 우리, 얘기 좀 해.” 요즘 아내가 저기압이라는 건 알았지만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런 시간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혼자서 얼마나 생각이 많았던 걸까. 아내는 속사포처럼 내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졌다.
 

“오빠, 우리는 언제까지 임신 시도를 해야 할까?
우리가 망가지면서까지 임신 시도를 하는 게 맞는 걸까? 우리는 왜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걸까?
임신을 포기하거나 계속해도 안 된다면 우리는 잘살아갈 수 있을까?
부모님, 우리를 불쌍하게 볼 사람들의 시선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잠시 시간을 벌기 위해 적으면서 함께 생각을 정리해보자고 말한 뒤 노트를 가지러 갔다. 나는 왜 그렇게 당황했던 걸까? 늘 임신에 대해 생각하는 아내와 달리 나는 별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임신 과정에서 고생은 아내가 전적으로 하는 것이니, 나는 모든 걸 아내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위한다는 핑계로 문제를 회피해버리고, 모든 선택의 무게를 아내에게만 내던진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시간을 번 뒤 나는 평정심을 되찾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이제 적으면서 얘기해볼까?”

결혼 전 각자의 가족 관계도를 서로에게 설명하며 처음 시작한 우리 부부만의 독특한 소통법 마인드맵. 우리는 이번에도 노트 중간에 원을 그려 난임이라는 단어를 적고 그로 인해 뻗어가는 생각들을 ‘마인드맵’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마주보고 앉아서 써내려간 우리의 생각들.

     

   먼저 우리는 아이를 왜 꼭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한번 얘기를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맞냐까지도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로를 닮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의 행복을 더하는 삶, 그런 삶은 우리 부부가 공통으로 바라는 삶이었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마냥 행복할 일만 있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단단하게 아이를 키워낸다면 그 아이도 세상에서 제 몫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임신 준비는 언제까지 해야 후회가 없을까? 지난 3년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는 녀석이었다. 끝이 없는 과정, 그 사이를 채우는 반복된 좌절은 우리가 소중히 가꿔온 희망의 불씨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제 그만할까?’와 ‘지금 그만두면 후회하지 않을까?’의 싸움이었다. 몸도 마음도 나보다 더 지쳐있는 아내는 그만할까로 치우쳐 대화를 시작한 것 같았지만 아이를 가져야 할 이유를 먼저 논의한 덕분에 지금까지 3년을 버텨냈듯이 앞으로 3년은 더 노력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3년을 지난 3년처럼 갑갑하게 임신을 준비하라는 법은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이 시간도 행복으로 채워보자고, 내가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임신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 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맛집, 여행지 방문기를 기록하고, 하늘길이 다시 열린다면 해외여행도 나가고, 골프를 배워 같이 라운딩도 나가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기를 그냥 뻣뻣이 버텨나가기보다는 난임 부부로서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바를 한번 기록해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로 인해 우리가 보내는 이 시간을 좀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고, 또 우리의 기록이 같은 경험을 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의 밤은 이 밖의 질문들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길어졌다. 아픈 추억에 대한 회상 때문인지 와인 때문인지 왠지 입안은 씁쓸했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무장한 덕분에 정신은 더 또렷해진 것 같았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내게 큰 울림을 주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추어 러너인 저자는 마라톤에 참가해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저자가 생각보다 늦춰진 기록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서 포기하고 싶던 바로 그 순간,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응원해주는 낯선 사람들의 소리, 또 결승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와 가족들이 있다는 생각이 저자를 끝까지 달리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 경험을 통해 저자는 순위권 안에 들어가 승부의 세계로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여정은 ‘지지 않는 것’이고 그런 여정은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도, 또 그 안에서 우리의 임신 준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간마다 즐거움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고통이 가득할 것이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손을 굳게 잡고 조금씩 그리고 끝까지 나아가본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 자체로 빛날 것이다. 비록 희망으로 그칠지라도 괜찮다. 결승선이 아직 한참 남아있어도 괜찮다. 함께일 때 우리는 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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