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보이는 집에 산다는건.

[엄마의 쉼표26 : 지금 이 순간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삶]

by 삐와이




창이 큰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면서 이전 집의 가구나 가전들을 처분하고 다시 집을 이사가더라도 식탁은 오래오래 써보자는 마음으로 4인 가족에게 조금은 과해보일 수 있는 큰 식탁을 들였다.

그리고 식탁을 창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배치했다. 덕분에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생활패턴이 하나 생겼다.

'창이 가장 가까운 쪽 의자에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기.'


비가 오는 날에는 후두둑 빗소리를 가만히 들어보기도 하고,

따스한 봄의 정취도 벚꽃 나무의 흔들리는 하얀 꽃잎을 보며 낭만있게 즐기고,

어느새 성큼 다가온 여름의 기운도 창밖의 청량한 초록색 나뭇잎으로 느끼는 중이다.


사실 이사오기 전에도

집 주변의 공원으로 산책을 온 적이 있었기에

이사오면 창을 자주 내다보게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그때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같은 풍경을 먼발치서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공원에서 가장 프라이빗한 정원이 우리집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풍경인데, 그 정원이 봄이나 가을에는 야외 웨딩 장소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신랑신부의 모습이나 구체적인 결혼식의 진행상황이 보이지는 않지만 천장에 매달린 조명과 하얀 천, 아련하게 들리는 신랑신부 등장곡과 부산한 파티의 분위기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의 행복을 먼발치서 느끼다보면 마음은 나의 결혼식때로,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고 반짝이는 순간으로 기억되는 신혼여행의 한순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여행은 늘 두 아이가 내뱉어내는

"엄마, 이것 좀 해주세요!" "엄마, 이리와봐요"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목소리로 끝난다.



※ 스포 주의 : 여기서부터는 영화 [The Neighbors' Window]의 스토리가 나옵니다.

이미지 출처 : 단편영화, The neighbors window , 창너머 커플을 지켜보는 축쳐진 부부의 어깨


2020년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마샬 커리 감독의 짧은 영화 [The Neighbors' Window]는 창을 마주한 두 아파트 사이의 일상을 보여준다.

축 처진 어깨, 제대로 감지 못한 머리, 늘 과자부스러기와 장난감으로 가득한 식탁 너머의 중년 부부는 육아에 치인 일상을 보내던 중 창밖의 이웃 아파트 너머 젊은 커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다.

부부는 남을 신경쓸 새가 없이 서로에게 몰입하는 젊은 커플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이후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그들의 삶을 창너머로 지켜본다.


겨울이면 지인들을 불러모아 파티를 벌이고

매 순간이 로맨틱해 보이는 그들의 삶은

세 아이의 육아에 치인 부인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씁쓸함과 부러움을 남기고,

현실과 과거의 괴리감에 그녀를 괴롭게하지만 그녀는 창 너머의 커플을 계속 훔쳐보는 습관을 멈출 수 없다.

(어느순간 부부의 식탁에는 망원경까지 놓이고 부인은 아기를 품에 안고 재우면서도 한 손으로 망원경을 들어올려 창 너머를 바라본다.)


그러던 중 창 너머 젊은 남자는 큰 병에 걸리고 아파트에서 그의 연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멎는다.

시신을 운반하기 위한 사람들이 아파트를 찾아오고,

그 모습을 창너머로 지켜보고 있던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집 밖을 나서 젊은 여인을 위로하게 된다.


자신을 위로하는 부인을 본 젊은 여인은 놀라며 오열하는데

그녀와 세상을 떠난 그녀의 남편은 창 너머로 세 아이와 단란한 삶을 꾸려가는 부부의 삶을 부러워하며

그녀처럼 자신들의 아이를 키워가는 미래를 꿈꿨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단편영화 [The Neighbors' Window], 젊은 커플이 보았을 부부의 삶.


이 영화는 비로소 부인이 창을 등지고 가족의 일상을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끝이 난다.

누군가의 행복으로 잠시 떠난 과거,

나로서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기에 더 찬란해 보이는 창 밖 너머의 청춘의 순간도 좋지만

지금 여기. 밥 먹다 아이들이 흘린 음식부스러기가 식탁 아래 널브러져 있고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리 집이 주는 이곳이 지금의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곳이다.


매일 출근하는 삶에서 벗어나

매일 아이들을 등원시켜주는 삶을 살아가는 요즘.

나는 나와 나의 가족의 삶에 고개를 돌리고,

그 삶을 흘려보내지 않고 온전히 느끼는데 내 자신을 집중하고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결혼식을 내려다보며,

때로는 계절의 흐름을 아이들과 함께 바라보며.



(참고로 이 단편영화는 20분 분량으로 유튜브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오픈되어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감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1vCrsZ80M4


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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