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커뮤니티에서는 작가병에 걸린 사람들을 자주 본다.
1.저런 허접한 글이 왜 잘 나가요?
2.왜 독자들은 제 고귀한 글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죠?
3.어떻게 이런게 15금일 수가 있어요?
4.기성 작가가 제 글을 표절한 거 같아 억울해요.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조금만 반론할라 치면, ‘너 작가 맞아?’라는 뉘앙스로 상대방을 깔아뭉갠다. 본인은 굉장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단단히 착각하면서 말이다.
구체적으로 1-4번 문항을 들여다 보자.
1,2번은 웹소설 트렌드와 성향을 모르는 본인 잘못이다.
3번은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 없진 않다. 19금일지라도 너무 과한 설정에 눈살을 찌푸린적이 꽤 있으니까.
그리고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묘하게 합리화하는 작품들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글들이 버젓이 나오는 이유를 안다.
단순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고 작가가 작가같지 않은 짓거리를 하냐면서 웹소설 전체를 뭉개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작가들도 엄연히 존재할뿐더러 이 부분은 작가의 윤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장에서 그러한 작품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존재한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딱히 웹소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학, 영화, 드라마에서도 예술이라는 미명아래 비윤리적임에도 인기는 얻는 작품들이 있다.
4번은 기성 작가 말도 들어봐야 한다. 마음 먹고 표절하는 나쁜 작가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작가들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다른 매체의 작품 설정과 초반 주요사건이 겹쳤다. 정말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데 타 작품을 본적도 없다.
그 작품에 대해서 인지를 나중에 했고, 이미 작품이 출간되고 한참 지난 이후라 설정을 바꾸기도 애매해서 그냥 두었다.
하지만 타 작품을 아는 독자는 필자가 타 작품을 보고 베꼈다는 의심을 할게 분명해서 정말 억울했다.
정말 필자가 그 작품을 봤다면 적어도 초반 주요 사건은 수정했을 것이다.
필자는 1-4번의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작가병’이라고 부른다.
재밌는 건 커뮤니티에 출몰하는 작가병을 걸린 이들은 대부분 인기 작가가 아닌 지망생이거나 출간을 했어도 글먹의 언저리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지망생과 글먹하지 못하는 작가들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다.
필자도 작가병에 걸렸던 사람으로서 시장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드라마를 공부했을 때, 유명 드라마 작가를 엄청 까댔다. 그때 작가병이 심하게 걸려서 대중적으로 글을 쓰는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몰랐다.
웹소설을 시작했을 때,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서 왜 이런 작품이 상위권에 있고 내 작품은 심해에 있는거냐고 독자들을 원망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웹소설에서 겉돌아서 원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작가병에서 깨어 시장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거기에 맞는 글을 썼을 때부터 필자는 글먹할 수 있었다.
작가병의 약은 시장과 자신에 대한 제대로된 고찰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 고찰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시장만 탓한다.
작가병을 치료하고 필자는 과거의 모습들이 창피했다. 그러니 지금 위와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빨리 약을 먹어라.
창피한 기억들을 오래 만들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