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발견 #1

퇴사 후 6개월 차의 솔직한 기록

by BzyJun

퇴사한 지 어느덧 6개월이 되어간다.

예상했던 대로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하나 다행인 것.

백수 생활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




2025년 5월 —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퇴사 후 첫 한 달.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밤새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가끔 '이러다 괜찮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불안했냐고?

물론이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이제는 그냥 좀 쉬자"는 생각이 더 컸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지쳐 있었으니까.

쉬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2025년 6월 — 백수, 작가가 되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내 글, 나는 재밌는데."

그래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몇 년 전에도 신청했다 떨어진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엔 왠지 될 것 같았다.

(나는 평상시 조금 교만하다.)


2025년 6월 5일.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메일을 받은 순간 기뻤다.

와이프는 나보다 더 좋아하며 깜짝 놀랐다.

백수 생활의 첫 번째 성과.

나는 작가가 되었다.


2025년 6월 24일.

작가가 된 지 19일만에 첫 글을 발행했다.

그동안 뭘 했냐고?

첫 글에 대한 부담과 씨름했다.


제목은 '퇴사 후, 나를 다시 쓰다'.

첫 글을 발행하며 나는 다짐했다.


"이제 매일 쓸 거야!"


다짐은 거창했지만, 현실은 5일도 안 돼 무너졌다.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조회수도 시원찮고,

'이거 그냥 시간 낭비 아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솔직히, 아직 더 쉬고 싶었다.




2025년 7월 — 도쿄가 보여준 것

"일본 여행 갈래?"

와이프의 갑작스러운 제안.

집돌이인 나에게 9박 10일은 꽤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그래도 따라갔다.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 되지, 뭐.

그런데 부담스러웠던 마음과 달리,

도쿄는 정말 재밌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가는 길.

신호등 앞에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스팀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껌 자국 하나까지 지우고 있었다.

'와, 이 정도까지?'

한국에선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도시였다.


매형이 추천해준 아부라소바 집.

일본 면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가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비웠다.

아부라소바도, 츠케멘도, 호텔 조식도 맛있었고,

일본 쌀로 지은 밥은 또 왜 그렇게 맛있는지.

모든 게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편의점 구경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재밌는 제품들이 많아서 자주 들렸다.

특히 푸딩은 매일 사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런데 음식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사람들이었다.

편의점 직원도, 카페 바리스타도, 점원 직원들도.

모두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근래 한국에서 자주 마주쳤던 무성의한 태도들과는 달랐다.

거리는 깨끗했고, 사람들은 질서정연했고,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 쓰는 모습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진짜 선진국이구나.'

잘 사는 것보다, 시민의식이 더 중요하구나.


한국에 돌아온 후 생각했다.

'일본어 배워볼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집돌이도 가끔은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배웠다.




2025년 8월 — 뭐라도 해보자

8월이 되었다.

놀 만큼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뭐라도 해볼까?"


항상 해보고 싶었던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도쿄 여행 이후 관심이 생긴 일본어도 독학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피아노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영어는 Day 5을 넘기지 못했고,

일본어는 10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나름 회사에서 6년 동안 보고서도 많이 읽고 썼다.

그래서 공부도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하니 달랐다.

공부 습관도 없고, 혼자 하는 방법도 잘 몰랐다.

그래도 안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건 시행착오일 뿐이니까.


그래도 피아노는 달랐다.

매일 1시간씩 연습했다.

연습할수록 실력이 느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달라진 게 있었다.

밤낮이 바뀌지 않게 됐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는 것.

규칙적인 생활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안정됐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시작했다는 것.




2025년 9월 — 힘을 빼니 달라졌다

9월에는 헬스와 러닝을 함께 시작했다.

살도 빼고, 근력도 키우고 싶었다.


헬스는 괜찮았는데, 러닝이 문제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무릎이 아팠다.

과체중 탓인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이것저것 찾아보다 유튜브에서 슬로러닝을 발견했다.


"천천히 달려도 운동효과가 있다고?"

반신반의하며 따라 해봤다.

첫날, 동네를 정말 천천히 달렸다.

신기하게도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땀이 흠뻑 났다.

무릎도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머리가 맑아졌다.


더 자세히 배우고 싶어졌다.

인터넷과 유튜브로만으론 부족함을 느끼고,

서점에서 다나카 히로아키의 『슬로 조깅 혁명』을 샀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하나씩 배워갔다.


이제는 하루라도 안 뛰면 허전하다.

그야말로 슬로조깅 중독이다.


그리고 슬로조깅을 통해 배운 게 있었다.

힘을 빼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


피아노도 그랬다.

힘을 빼고 건반을 누르니, 소리가 달라졌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서점에 가서 내 수준에 맞는 책을 다시 샀다.

부끄럽지만 초등학생 영단어와 중학생 영문법부터 시작했다.

러닝도, 피아노도, 공부도.

무엇이든 힘을 빼야 꾸준하고 재밌게 할 수 있었다.


회사 다닐 때는 몰랐다.

모든 걸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한다고 믿었다.

체력이 곧 부족한 실력을 메우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힘을 빼는 거였다.

힘을 빼니 8월보다 훨씬 생산적인 하루가 됐다.

바빠졌지만 즐거웠다.

공부, 피아노, 운동.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니까.


백수 생활을 하며 깨달은 게 있다.

하루를 보람차게 살지 못하면, 몸이 편해도 쉽게 우울해진다는 것.


지금은 우울감이 거의 사라졌다.

하루가 채워지니, 마음도 채워졌다.




2025년 10월 — 성장 중

10월부터는 새로운 루틴을 추가하기로 했다.

아침 7시 기상, 밤 11시 취침.

아직은 어렵다.

가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몸이 적응할 거라 믿는다.

처음엔 힘들고 '괜히 했나' 싶지만,

조금 참고 계속하면 그 패턴에 맞는 하루가 만들어질 것 같다.


수면 시간을 지키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면, 하루를 계획하기 쉬우니까.


내 목표는 이렇다.

아침 7시 기상 → 1시간 조깅 → 피아노 1시간 → 글쓰기 1~2시간 → 공부

아직 완벽하게 지키진 못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오늘.

이게 성장이 아니면 뭐겠는가.




P.S.

백수 6개월 차.

아직 뭐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5월의 나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매일 뭔가를 하고 있고,

우울하지 않고,

하루가 의미 있다.


거창한 성장은 아니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낫다.


만약 누군가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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