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배운 하루의 속도
런던에서의 3박 4일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나에게 꼭 맞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느림"을 배웠다.
그리고 그 느림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리듬이라는 것도.
나는 한국의 속도에 맞춰
29년을 살아왔다.
해야 할 일은 미리 준비하고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학창 시절, 나는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지만
늘 묵묵히, 성실하게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남들처럼 밤을 새워 놀기보다
그림을 그리고,
장학금을 위해 공부하고,
알바를 하며 하루를 꽉 채웠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좋아하는 일을 조금 더 깊이 배우고 싶었다.
그렇게 전공과 연결된 문화예술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긴 길이기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서른을 앞두고
문득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고장 난 자전거 같았다.
페달은 돌고 있는데,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만 뱅뱅 도는 느낌.
친구들은
이미 직장 5년 차에 접어들었고
나름의 역할과 자리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들과 나 사이의 속도 차가
날 점점 조급하게 만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만 뒤처진 기분이 드는 걸까.
그런 마음으로
런던에 도착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고,
횡단보도 앞에서도
반드시 한 번 멈췄다.
공원의 벤치는
점심시간이면 빈자리가 없었다.
누군가는 잔디 위에 누워 책을 읽고,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두고
느릿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
그저 존재하는 산책을 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조금씩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런던의 시간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불안과 초조는
멈춰 설 때야 비로소 가라앉는 법이니까.
불순물처럼 떠다니던 감정들도
지금처럼 조용히 앉아 있을 때
조금씩, 천천히
맑은 바닥으로 내려앉는 거야.”
나는 그제야
내가 잘해왔다고,
충분히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지금 멈춰 있는 것 같아도
그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이 있음을
조금씩 믿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인생은 반드시 달려야만
무언가를 이루는 게 아니란 걸.
가끔은
머무는 시간이
더 깊은 뿌리를 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걸.
그렇게
런던에서 보낸 며칠이
내 안의 모래를 가라앉혔다.
탁했던 마음이
조금씩 맑아졌고,
나는 처음으로
나의 온전한 속도를 배웠다.
그리고 그 속도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