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라지자 도시가 말을 걸었다
유로스타 창밖으로 보인 파리의 하늘은 뜻밖에 맑았다.
하지만 내 마음 한켠은 흐렸다.
이 도시를 처음 마주하는 감정은 설렘이라기보다,
어쩌면 조심스러운 긴장이었다.
머릿속엔 수없이 들은 말들이 떠돌았다.
파리 지하철에는 쥐가 다닌다,
짐은 잠깐 놓는 사이 사라진다,
가방은 어느 쪽에 메든 결국 누군가의 손에 넘어간다.
“가방은 무조건 앞으로.
뒤에 메면 뒷사람 거,
오른쪽은 오른쪽 사람 거,
왼쪽은 왼쪽 사람 거.
앞으로만 매야 네 거야.”
우스갯소리 같지만, 웃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를 지켜야 했다.
손목 스트랩, 도난 방지 가방,
할 수 있는 모든 장비로 중무장한 채
엄마와 함께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하철 플랫폼.
사방에서 낯선 언어가 쏟아졌다.
캐리어를 옮기려 허리를 굽힌 순간,
한 흑인 할아버지가 조용히 다가왔다.
엄마의 짐을 천천히, 끝까지 들어주고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Bag in front. Take care. Have a good trip.”
짧은 말이었지만, 그 다정함은 언어를 넘어섰다.
그 순간, 내 안의 경계선이 무너졌다.
나는 스스로 얼마나 많은 색안경을 쓰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조심은 지혜일 수 있지만,
세상을 의심하는 시선은
내 여행의 가장 큰 도둑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숙소 근처 역에서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려던 순간,
몸집이 캐리어만 한 어린 남자아이가
엄마의 짐을 당연하다는 듯 들어주었다.
일주일 뒤, 스페인으로 향하던 날.
기차역의 복잡한 계단 앞에서
젊은 남성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와
우리 짐을 아무 말 없이 함께 들어주었다.
그렇게 파리에서, 나는 세 번 멈춰 섰다.
예고 없는 다정함에,
작지만 깊은 울림에.
파리는, 들은 이야기보다 훨씬 따뜻한 도시였다.
편견과 의심을 벗어낸 눈으로 바라본 파리는
이토록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날 이후, 도시의 풍경은 달라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달라졌다.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 움켜쥐던 손을 천천히 풀자
파리의 온기와 숨결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색안경을 벗고 마주한 파리는
마치 오래 접어둔 책의 한 페이지처럼
조심스럽고도 찬란하게 펼쳐졌다.
일주일의 파리.
그곳은 더 이상 누군가의 잡지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직접 걸은, 나만의 풍경이었다.
하루하루가 잔잔하게 반짝였고,
그 안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배웠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자주, 더 부드럽게
나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을.
다음 글에서는, 파리에서 동화처럼 펼쳐졌던 7일의 순간들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