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외국에서도 나를 지켰고, 나는 그 사랑을 배워간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날, 갑작스레 몸이 아파왔다.
피로가 쌓였는지 급성 장염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후, 나는 기운이 없어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어디서 어떻게 구하셨는지
타국에서 약을, 그것도 장염 약을 바리바리 챙겨와
물과 함께 내게 건네주셨다.
“이거 먹고 좀 나아져야지.”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엄마는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엄마’였다.
혼자였다면 분명 며칠을 앓아누웠을 텐데,
그 약 덕분에 나는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 나아진 몸을 이끌고 우리는 까사 바트요에 갔다.
엄마는 처음엔 들어가지 않으려 하셨다.
“비싸다”며 발걸음을 멈추셨는데,
그건 진심으로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딸이 돈 쓸까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입장 후, 엄마는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 몰랐네.”
그 말을 듣는데,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나는 하고 싶은 걸 말하며 살아왔는데
엄마는 늘 참고, 조심하고, 망설이며 살아오셨다.
그게 미안했다.
다음 목적지는 구엘 공원.
엄마는 이곳을 정말 좋아하셨다.
사진만 수백 장을 찍었고,
햇살 아래 활짝 웃으시는 엄마의 모습이
그 공원보다 더 찬란해 보였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내가 정말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이런 경험을 더 많이, 더 일찍 선물해 드릴 수 있었을까?’
엄마는 내게 세상을 보는 눈을 선물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 엄마에게 날개 한 쪽조차 달아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감사와 그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마음 한켠에는
함께하지 못한 아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항상 모든 걸 뒤로 하고
딸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살아오신 두 분께
나는 아직 너무 작고, 부족하기만 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두 배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내가 받은 이 큰 사랑을,
하나하나 갚아가야겠다고.
그러다 문득,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나에게 슈퍼히어로 같았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고, 언제나 든든한 보호막 같은 존재.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도 그저 나처럼 한 소녀였고, 한 소년이었을 뿐이라는 걸.
강한 게 아니라,
강해져야만 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걸.
나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그렇게 살아오신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더 따뜻하고, 더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정답은 아직 모르겠다.
가진 것도 많지 않고, 실수투성이인 내가
그 질문의 답을 완벽히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언젠가는 내 꿈이 이루어질 거라는 걸.
간절히 바라고 묵묵히 걸어간다면,
그 도착점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조용히,
하지만 쉼 없이.
그 희망 하나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