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구마를 못 먹는 이유
고구마를 못 먹는 이유
돈이 많았던 게 틀림없지
아니야
땅이 많았던 게 틀림없지
빚은 많았지
그걸 알고도 시집을 왔다고
그때 동네의 외동은 미영이가 유일했어요
나는 365일 시커멓게 탄 얼굴에
무릎은 상처 아물기가 바빴는데
미영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얼굴이 달걀흰자처럼 하얬어요
어디서 샀는지 레이스 달린 양말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입가에는 생글생글 미소를 달고 다녔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석재 아재는 환갑이 채 안 돼서 암으로 죽고
미영이는 서울 어디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잘 산다 그러고
서울댁은 여태 그 집 살지
빚은
빚은 땅이 되었지
석재 아재가 보통 부지런했어야지
서울댁이 고구마를 좋아해서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었거든
이제 혼자 하시려면 힘드시겠네
석재 아재 죽고 나서는 고구마 농사를 안 지어
이미 맛은 소문이 날 때로 나서 짓기만 하면
돈줄인데 말이여
아주머니는 마당에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미영이 국민학교 친구 영숙이에요
저 아랫동네 사는
친정 왔다가 생각나서
요즘 맛있을 때라 좀 쪄왔어요
미안해서 어쩌나 이제 고구마를 못 먹는데
아주머니의 눈동자는
쟁반에 담긴 고구마를 지나
담을 너머
대나무밭이 있는 산 어디쯤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