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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Feb 13. 2023

10. 고구마를 못 먹는 이유

고구마를 못 먹는 이유

돈이 많았던 게 틀림없지

아니야


땅이 많았던 게 틀림없지

빚은 많았지


그걸 알고도 시집을 왔다고


그때 동네의 외동은 미영이가 유일했어요

나는 365일 시커멓게 탄 얼굴에

무릎은 상처 아물기가 바빴는데

미영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얼굴이 달걀흰자처럼 하얬어요

어디서 샀는지 레이스 달린 양말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입가에는 생글생글 미소를 달고 다녔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석재 아재는 환갑이 채 안 돼서 암으로 죽고

미영이는 서울 어디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들 딸 낳고 잘 산다 그러고

서울댁은 여태 그 집 살지


빚은


빚은 땅이 되었지

석재 아재가 보통 부지런했어야지

서울댁이 고구마를 좋아해서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었거든


이제 혼자 하시려면 힘드시겠네


석재 아재 죽고 나서는 고구마 농사를 안 지어

이미 맛은 소문이 날 때로 나서 짓기만 하면

돈줄인데 말이여


아주머니는 마당에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미영이 국민학교 친구 영숙이에요

저 아랫동네 사는

친정 왔다가 생각나서

요즘 맛있을 때라 좀 쪄왔어요


미안해서 어쩌나 이제 고구마를 못 먹는데


아주머니의 눈동자는

쟁반에 담긴 고구마를 지나

담을 너머

대나무밭이 있는 산 어디쯤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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