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속에서도 살아내는 법
십여 년 전, 배가 자주 아파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추가로 한 가지 검사를 더 선택할 수 있었는데,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항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삶이 늘 팽팽했기 때문일까.
‘스트레스 검사’라는 문구에 괜히 마음이 끌렸다.
‘마음의 상태를 수치로 보여주는 검사지’였기에
나는 그 결과지가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은 이상한 위로를 느꼈고,
그래서인지 그래프의 모양과 문장의 뉘앙스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결과지는 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돼 있다고 했다.
상담을 권한다는 한 줄이, 그때는 낯설게 느껴졌다.
그땐 교감신경이 뭔지도 몰랐고,
배의 통증이 더 시급해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결과는 꽤 정확했다.
나는 늘 과각성 상태에 있었다.
그건 내가 얼마나 쉽게 놀라는지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언제든 놀랄 준비, 불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보면, 그 시작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도 나는,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불안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언니를 가졌을 때부터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런 아빠와의 관계 속에서
둘째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편안한 상태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에게는 오히려,
놀라기 전, 불안하기 전의 긴장상태가
익숙하고 편안한 상태다.
트라우마 치료에서는
인지적인 작업과 함께 ‘몸의 안정’을 다룬다.
처음엔 몸의 안정을 다루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늘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 상위의 작업이라 믿었다.
인지적인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내 아픔이 나아질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인지적인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느낄 무렵
문득 의문이 들었다.
상담 지식과 자기 탐색은
분명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치유의 길에 들어섰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상담에서,
나는 깊은 호흡과 현재로 돌아오는 간단한 기술을 배웠다.
생각보다 단순했고,
일상에서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또, EMDR 치료를 받았다.
눈의 움직임으로 뇌를 다뤘다.
몸이 기억을 가르쳐주는 방식이었다.
조금은 낯설 만큼 빠르게 회복되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몸의 안정, 그리고 자기 성찰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몸에 안정을 새기는 일에 시간을 썼다.
긴장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강아지와 함께 걷는 짧은 산책,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들.
귀까지 물에 잠긴 채,
입안에서 소리를 내어 허밍을 하면
물속에서 울리는 둔탁한 내 목소리가
이상하리만큼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 울림은 마치
“지금은 괜찮아.”
그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그리고 잠들기 전,
나는 자기 위로의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그것이 내 트라우마를 단번에 치료해주진 않았지만,
작은 확언들이 쌓여갔다.
그 꾸준함은 “잘하고 있어”,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위로였고,
동시에 “나는 너를 놓지 않아”라고 말하는
나 자신의 의지이기도 했다.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한 지 한 5주 정도 지났을 무렵,
난 내가 과각성상태인지 아닌지
시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것은 엉뚱하게도, 미술관에 가는 일이었다.
심리학의 투사검사처럼,
나는 그림에 내 마음을 비춰보기로 했다.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골라,
찬찬히 둘러본다.
처음 만난 그림에서는 광활한 자연 속 광장에 서있는 두 남녀가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여기 너무 추워.
텅 빈, 집어삼킬듯한 여백의 공간들이 불안해. 집에 가자”
라고 속삭이듯 말하는 거 같다.
고양이가 도로 위에 나와있고
양들은 풀밭에 있는 그림에서는
“애네 돌아갈 집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불안하다.
나 아직 몸의 안정이 새겨진 게 아닌 걸까.
왜 평면적인 그림에서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그림에서조차 나는 불안의 조각을 찾는 것인가.
화살 맞아 쓰러져있는 동상 앞을 지나친다.
잔인한 작품은 밉기까지 하다.
몇 개의 방을 지나, 드디어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멈춰 선다.
직선과 사각형, 원이 조화를 이루는 기하학적 색유리 작품.
거기에 머무르며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해 본다.
“ 내 마음 같아. 군데군데 검은색이 끼어있지만 꽤 멋져.
오렌지 빛이 특히 매력적이야.
투명해서 훤히 보이긴 하지만,
안전해. 아크릴이 한 겹 덧대어져 있잖아”
한참 작품을 감상하다가
이제 다른 작품을 볼까 하고 몇 발자국 걸음을 떼다 다시 돌아온다.
작품 앞에 머무른다.
이제는 불안을 없애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안전과 안정의 자리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를 뿐이다.
불안과 안정이 뒤섞인 시간.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불안과 나란히 선다.
그래, 같이 가자.
너는 나를 아프게 했지만,
결국 나를 살아 있게 한 존재니까.
@sprinkle.pi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