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빛으로, 글이 된 나의 여정
스케줄을 정리하는 다이어리, 좋아하는 요리를 적어둔 레시피북,
책을 읽다 인상 깊은 문장을 옮겨 적어두는 노트가 있다.
하지만 마음이나 생각을 정리하는, 일기 같은 노트를 완성해본 적은
평생 한두 권뿐이었다.
그런 내가, 그것도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시기에
왜 내 고통을 글로 정리하고 싶어졌을까.
글쓰기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불안할 때마다 무언가를 정리해야 마음이 진정되는
오래된 습관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강박과 결벽의 기질이 있었다.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종종 나를 ‘유난히 깔끔한 사람’이라 말했다.
불안이 올라오면,
몸이 피곤해도 괜히 물건을 꺼내 정리하거나
닦지 않아도 될 곳을 닦았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정리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대신,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건 사람들이 말하는 깔끔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음으로 버텨내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다.
정리가 끝나면,
내 마음도 조금은 정돈된 것 같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기 시작한 그때는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딱 한 방울이 내 고통의 그릇에 떨어지자,
모든 아픔과 처절한 기억들이 한꺼번에 넘쳐 흘렀다.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것에게 나는 말했다.
“너를 밝혀낼 거야.
깔끔하게 분류해서 정리할 거야.
그다음에, 죽더라도 너와 함께 죽을 거야.”
그렇게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지만,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나는 금세 무기력에 잠식되었다.
정체를 밝혀낸다 한들,
정말 그것과 싸울 힘이 내게 남아 있기나 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지옥에서 나를 건져내는 서사.
지옥에서부터 시작한 글은,
쓰는 내내, 고치고 다시 읽는 내내
나는 그 일들을 다시 겪고, 또다시 겪어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감정이 절제되고 차가운 문체는
그 사건들 속에 완전히 잠식되지 않으려는
내 무의식의 발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매번 글의 끝에
회복의 서사를 조금씩 덧붙였던 것도,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나만의 장치였다.
그렇게 힘겹게 글을 써내려간 날이면,
소파에 몸을 눕히는 순간
팔과 다리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흩어졌다.
회복의 서사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숨이 트이는 듯한 순간을 느꼈다.
그렇게 한 회의 회복 서사를 마친 뒤,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작은 선물이자,
나만의 회복 의식이었다.
이제는 글에서 잠시 벗어나,
한동안 나를 놓아주는 시간이었다.
회복의 서사가 시작되는 것에
힘을 빼기라도 하듯,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온 뒤
몇주간 두통과 몸살에 시달렸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버린 걸까.
아니면, 회복 전
꼭 아픔을 통과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그렇게 약함 속에 머물러야 했다.
사실, 이럴 때마다 억울함이 밀려왔다.
“이제 좀 살아보자.”
그 말을 마음속으로 꺼낼 때마다
나는 곧 다시 쓰러졌다.
“이제 건강하게 살아야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날에도
몸살이 찾아왔다.
“넌 이 정도 하기도 약해.”
누군가 그런 말을 건넨 것처럼
나는 금세 기가 죽었다.
쓰러져 누워 있을 때면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미워했다.
하지만 회복의 서사로 들어가기 전,
마치 당연한 통과의례를 거친 듯
이번에는 조금 다른 말이 나왔다.
“참, 너도 세상 살기 힘들겠어.”
그렇게 고통의 관문을 통과한 뒤,
나는 회복의 서사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써내려갈 수 있었다.
글쓰기가 내 삶에 기적을 가져다주진 않았다.
그럼에도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내가 썼던 회복의 문장들이 불쑥 떠오르곤 했다.
마치 그것이 선언이라도 된 듯,
작은 힘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썼었잖아. 조금 더 추스려봐.”
어느 날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고,
어느 날엔 “그건 다 거짓말이야, 나 망가졌어.” 하고 울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문장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강요하지 않았지만,
존재만으로 나는 가끔 그곳을 쳐다보았다.
또, 글을 써두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을 주었는데,
그 위안은 아마도
움직이는 혼돈을 박제해 두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글로 써둔 이상,
그것은 이제 사라지지 않는 것,
불멸의 무게가 그 안에 있었다.
또,
그토록 닿고 싶었던 자기 연민의 횟수를 늘려 주기도 했다.
내가 나를 관찰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니
가끔은 딱했고,
어느 날은 진심으로 슬펐다.
글쓰기는 타임머신이 되어
과거의 나와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그건 막연히 “나는 그런 어린 시절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는 달랐다.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나는 정말 그때로 돌아갔다.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
그 아이를 위로할 수 있었다.
슬픔과 분노로만 남아 있던 장면들이
조금씩 연민의 빛으로 물들어간다.
상상은 안개처럼 홀연히 없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내 영혼과 마음은
과거 어느 시간으로든 돌아갈 수 있다.
그 장면으로 들어가,
머무르며 날 위로 할 수 있다.
원한다면,
그것은 영원으로 기록된다.
그건 가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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