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아주 나쁨이다. '이런 날은 숲 속이 딱이지!' 하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환승까지 해서 도착한 숲길의 입구에서숲속으로 40분을 걸어들어가도 생각한 숲길이 나오지 않는다. 자갈길과 포장길에 간혹 흙길이 뒤섞인 길은 발을 아프게 했고, 메말라버린 계곡처럼 건조한 숲의 풍경은 덩그러니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예민함의 불씨를 던진다.
발이 더 아파온다. 딱딱한 길의 가장자리에 쌓여 있는 낙엽 위를 밟으며 걸어보니 쿠션처럼 폭신해서 한결 수월하다. 발이 조금 편안해지니 계속 앞으로 가야할지, 되돌아가야할지 잠시 머뭇거려진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에는 걸어 온 숲길은 매력이 없다. 적어도 나아가는 숲길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니 앞으로 가는 것이 맞지 싶다. 딱딱한 길을 만나 발이 아프면 잠시 낙엽 위를 밟으며 편안함을 찾고, 다시 넓고 움직이기편한 가운데 길로 걷기를 반복한다.
남겨진 자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삶은 멈춰지는 것이 아니니, 살아가다 힘들면 폭신한 낙엽길을 찾기도 하면서 그렇게 계속 걸어가야 한다.'누군가의 흔적은 살아가는 자를 위한 길 위의 켜켜이 쌓인 낙엽이 아닐까?' 불편한 길 덕분에 이런 저런 생각도 쌓인다.
'기대했던 숲길은 이런 게 아닌데'하며 한참을 더 걷다보니 나무데크 길이 보인다. 포장길보다는 걷기 편할 것 같아 '조금 돌아가더라도 데크길로 가자.' 싶어 살짝 방향을 튼다. 예상보다 짧게 끝난 데크길의 건너편에 다른 데크길이 보인다. <삼나무숲길>이라는 표지판도 있다. 이 데크길로 오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는 표지판이다. 표지판 그림을 보니 들어가서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다시 나오는 460m의 숲길이다. '다리도 아픈데 460m를 더 걸어야 하나?' 고민하는 내 머릿속과는 달리 이미 발걸음이 안을 향하고 있다.
몇 걸음 걸어 들어가니 티타임 때 가끔 듣는 명상음악이 숲 속에 울려 퍼진다. '여기만 이렇게 음악을 틀어주는 건가?'하던 찰나에 어르신 한분이 가까이 온다. 음악 소리가 커진다. 어르신이 켜 놓으신 배경음악이다. 길인지 알 수 없는 길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어 갈팡질팡하는 나를 보며, 편안한 미소로 입구 방향을 가리키며 '이 쪽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됩니다.'라고 알려주신다.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그래, 내가 그리던 숲은 이런 거였어!' 하며 또 감탄을 쏟아낸다. 어르신처럼 명상음악을 스피커폰으로 나지막하게 틀고 숲길을 걷는다. 길고 높게 뻗은 삼나무 숲 속에 나밖에 없다. 삼나무 잎이 무성하게 떨어진 바닥은 길인 듯 길 아닌 길이 되어 경로를 벗어나면 길을 잃을 것 같다. 신기하게 길 아닌 것 같은 길을 자연스럽게 걸으니 길이다. 잠시 사색에 젖었을 뿐인데 어느새 출구다. ' 460m가 이렇게 짧았나?' 아쉬움에 다시 입구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명상 음악에 맞춰 빼곡한 삼나무 숲을 걷는 순간은 동화 속 세상의 신비로운 풍경에 내가 존재하는 느낌이다.
잠시 뒤,나와 같은 데크길에서 나온 부부일행이 <삼나무 숲길> 표지판을 잠시 살피더니 큰길로 바로 걸어 나간다. 굳이 오지랖이 꿈틀거려 말을 건네고야 만다. "시간이 급하신 게 아니라면 삼나무 숲길 한 번 거닐고 오세요. 정말 좋아요."라는 나의 권유에 방향을 고쳐 삼나무 숲길로 들어가는 부부를 보며 '이 무슨 안 하던 오지랖인가!'한다. 사람마다 순간이 다른 건데, 그들에게도 의미가 있길 바랄 뿐이다.
삼나무 숲길을 거닐지 않았다면 오늘의 숲길은 '그냥 갔다 왔다.'에서 끝났을 텐데 삼나무숲길로 인해 오늘의 숲길은 꿈결이 되었다. 내려오는 사람도 올라가는 사람도 <삼나무 숲길>을 그냥 지나쳐 큰 길로만 간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선을 넘는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