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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숲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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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Mar 11. 2023

우연이라는 필연(+9day)

우유식빵을 만나기 위한 자연스러운 에러

그냥 자연스럽게 찾아지는 반짝임도 있는 법이다.




아침부터 초미세먼지 빨강, 오늘의 목적지는 자연휴양림으로 정한다. 식 조금과 읽을 책 그리고 혹시나 해서 스케치용구까지 챙기니 가방이 꽤 무겁다. 지금 바로 정류장으로 가면 버스시간이 딱인데, 그 소금빵을 꼭 지금 사고 싶다. 해안길을 따라 굳이 그 소금빵을 사러 가는 자신이 어이없지만 모르겠다. 청정한 빛을 띄며 아침을 맞이하던 해변은 채도를 잃었다. 해무라고 생각했다면 운치 있었을 수평선은 미세먼지로 뿌옇고 에메랄드빛 바다는 탁하기만 하다.

 

동네 마실 다니며 보기만 했던 그 빵집을 드디어 들어간다. 기대했던 소금빵은 진열되어 있지 않고 '카운터에서 바로 주문'하라는 문구를 물끄러미 보며 실물은 영접도 하지 못한 채 계산을 하고 담아주는 빵봉지를 바로 가방에 넣 정류장으로 향한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소금빵과의 만남이다.


무슨 일인지 버스앱 에러, 정류장 안내판 에러, 도착 시간 정보도 먹통이다. 정류장에 붙은 버스 시만 보고 그냥 기기로 한다.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버스를 그냥 또 기다린다. 한참 뒤에 도착한 버스를 타고 환승하는 곳에 내린다. 환승정류장에 붙은 시간표를 보며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다. 다음 버스 시간을 보니 40분 뒤다.

 

엎어진 김에 새로운 동네구경을 시작한다. 혹시 버스가 중간에 올까 싶어 버스정류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두리번거리는데, 뭔가 느낌이 온다.  무심히 버스정류장 맞은편을 보는데 운명이다. 눈이 번쩍 뜨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확실히다. 정말 먹고 싶었던 우유식빵을 파는 빵집, 뚜벅이로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멀다며 지레짐작하고 리스트에서 지운 그 곳이 눈앞에 있다. 나타났다.


얼른 건너편으로 건너가 가게 문을 연다. 동네 빵집답게 단출한 진열대와 아담한 내부가 폭신한 빵집이다. 눈으로 빠르게 우유식빵을 찾으니 3개가 남아있다. 그렇게 환희에 가득찬 우유식빵을 품에 안고 나와서 찬찬히 가게 외관을 살핀다. 전체적으로 하얀 외관이 딱 식빵이다. 부드러운 담백함이 묻어 나는 외관까지 썩 마음에 든다. 자연휴양림에서 먹을 점심거리가 든든해졌다.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먹통인 앱들을 살펴보는 사이에 버스가 앞에 선다. 기다리던 버스다. 후다닥 버스에 올라탄다. 나도 이렇게 순발력 있게 빠른 움직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버스 노선에 맞춰 내리긴 내렸는데 그냥 길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것이 뭔가 이상하다. 마침 산행차림의 여행객 한 명이 보여 길을 물으니, 방향을 알려주기는 하는데 좀 애매한 눈빛이다.


지도를 보며 알려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분의 애매한 눈빛의 의미를 알겠다. 자전거길도 인도도 없는 그냥 도로다. 25분 걸으면 된다는 앱지도를 보며 그냥 걸어본다. 걷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방법도 없으니 나아가는데, 길 바로 옆 낮은 나무속에서 후다닥 하는 큰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떤 동물이 나로 인해 놀라서 달아난 것이리라. 나도 놀라고 무엇도 놀라는 상황이 이 길 위에서 계속 반복되면 안 될 것 같아 경쾌한 음악을 스피커폰으로 크게 튼다. '미리 소리가 들리면 너도 나도 준비를 할 수 있으려니' 배려를 가장한 합리화 뒤에 두려움을 감춰본다.


생뚱맞은 길을 그렇게 걷다보니 정말 자연휴양림이 보인다. 사람들이 제법 북적인다. 표를 끊고 들어간 자연휴양림은 인간이 쉴 수 있도록 아주 잘 정돈되어 자연 그대로의 숲과는 다른 깔끔한 인상이다. 입구 바로 오른쪽에 빼곡히 들어선 삼나무들 사이로 평상데크가 보인다. 삼나무들로 둘러싸인 가장 가운데 데크에 돗자리를 펴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 한 숨 돌린다.


숙소에서 챙긴 간식과 소금빵, 우유식빵까지 푸짐하게 꺼내고 커피를 한 잔 마시려는데 까마귀 2마리가 데크 바로 밑에 날아와 앉는다. 멀리서 볼 때는 신기했는데, 코앞까지 온 까마귀는 너무 크고 새까매서 무섭다. '곧 날아가겠지.' 생각하고 점심을 먹기 시작하는데 시선이 따갑다. 이 놈의 까마귀가 내 점심을 노려보는 것 같다. "안 줄 거야. 가!", "나만 먹을 거거든." 큰 소리로 말을 던져도 꿈쩍도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한 놈이 데크 위 정말 내 코앞까지 날아와 앉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소리치며 평상을 두드려도 날아가기는커녕 쿨하게 데크 밑으로 살짝 내려갈 뿐이다. 이 광경을 본 다른 녀석은 내가 음식을 안 줄 것이라 판단했는지 멀리 날아가 높은 나무 위에 앉아 깍 깍 울어댄다. 나에게 시위한다고 느끼는 건 내 착각이겠지.


부랴부랴 우유식빵 몇 입 먹고 남은 음식들은 가방에 넣는다. 가방지퍼까지 닫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녀석도 멀리 날아간다. 까마귀가 영특하다더니 무서울 정도 똑똑한 녀석들이란 생각이 든다. 먹는 것은 포기하고 평상에 편하게 눕는다. 의미 없는 생각들이 어느 순간 비워지고 흔들리는 삼나무잎과 조금은 찬 바람만이 온몸을 스쳐간다. 가끔 삼나무의 뾰족한 잎이 얼굴을 스쳐 떨어져도 그냥 둔다. 오랜만에 의도적으로 깊은 숨을 쉬며 누워있으니 '책이니 스케치용구니 괜히 챙겨 왔다.' 싶다. 우유식빵의 여운으로 충만한 휴식이다.




작심하고 찾으면 눈앞의 책도 못 찾는 하루사리지만 그냥 두면 참 잘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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