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창에 '비 오는 날 비자림'을 검색하니 '비자림은 비 오는 날 가야 좋다.'는 글이 제법 많다. 심지어 '비 오는 날의 비자림' 피아노 연주곡도있다. '나만 몰랐나?' 하며, 새로운 정보에 확신을 갖고 비자림으로 향한다.네번째 가는 비자림이라 승차부터 하차까지 일사천리다. 비자림 입구로 걸어가니 여태까지 온 비자림 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다. 비 오는 날엔 비자림이다.
비를 맞으며 숲 속을 걷고 싶었는데, 비가 그쳤다. 나뭇잎에 맺혀있는 빗방울들이 떨어질 수 있으니 일단 우의를 꺼내 입는다. 뭔가 단단히 준비를 한 것 같은 흐뭇한 마음으로 익숙한 숲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매번 참 다르다. 숲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져서겠지만 비오는 날의 비자림은 확실히 새롭다.
물기운 가득한 숲의 생명력은 싱그러움과 활기참으로 살아 움직인다. 숲의 생명력을 온 몸 가득 느끼고 싶은 욕심에 깊이 심호흡을 해보는데 오히려 답답하다. '숨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던가!' 호흡이 반도 들어가지지 않는다. 그래도 연신 최대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면서 숲 속으로 들어가 본다.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우의 위로 똑똑 또독 또독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바람이 스칠 때면 우두두둑 신나게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우의 덕에 나의 걸음은 당당하다. 우산도 우의도 없이 걸어가던 사람들이 떨어지는 빗물에 옷을 털어내며 여기저기 닦는 모습을 보니 내심 '준비성이 좋았구나!' 자화자찬도 해본다.
우의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너무 크게 들려 조금씩 거슬린다. 머리까지 쓴 우의를 뒤로 젖히니, 갑자기 온 세상 소리가 더없이 선명해진다.뭐든 적당함이 필요한데 '우의를 머리까지 쓰는 건 좀 과했다.'는 생각에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우의로 피하고 머리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적당히 맞아주자 싶다. '머리에 빗물 좀 묻는다고 축축해질 기분은 아니니 뭐 어때?' 하며 걷는데, 정신 차리라는 듯 굵은 빗방울 하나가 힘 있게 이마 위로 '툭!' 떨어진다. 태연한 척 손으로 빗물을 쓰윽 닦으며 그래도 '이쯤이야'한다.
우의 전체의 바스락 거림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당신들 앞, 뒤, 옆으로 내가 지나가고 있으니 알아차리세요.' 하는 것 같다.가끔 가깝게 스쳐가도 서로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존재감 확실한 우의를 입으니 거리 두기가 절로 된다. 굳이 우의를 입어야 하나, 생명에도 안전에도 하등 영향을 주지 않는데 '떨어지는 빗방울 좀 맞으면 어때서 이렇게까지 하나' 싶다.
몇 년 전 IU의 '삐삐'노래 가사에 격하게 공감하며 한동안 출근송으로 들은 적이 있다. beep. 여긴 직장인데, 왜 알고 싶지 않는 그들의 집안 사정까지 저리도 자세히 정보 제공을 하는지, 왜 나의 사생활까지 묻는지. 매번 선을 넘는 그들의 대화에 나만 동조되지 못하고 자리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지인들과의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1:1로 차분히 하는 대화가 아닌 여럿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물어오는 게 껄끄러웠다. 원래 말수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건 이런 불편함에서 오는 방어적인 자세 때문이기도 하다.
'매번 투명 우의를 입고 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엄한 곳으로 생각이 튄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의를 단단히 챙겨 입고 있으니, 당신들의 우산이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요. 작은 빗방울도 묻지 않았으니 수건 따위도 건네실 필요 없어요.'라는 분위기를, 굳이 우의가 필요치 않은 가랑비 내리는 날조차도 '준비성 철저하게 우의를 챙겨 입고 있는 거 보이시죠? 저 이렇게 굳건한 사람이에요. 어떤 일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을 테니, 조언 따위 필요 없어요.'라는 각자도생 분위기를 내 보이며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