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이어지는 비 예보에 실내에서 진행되는 싱잉볼명상수업을 미리 예약해 뒀었다. 온 세상이 뿌옇다. 길을 건너 바다 쪽으로 걷기 시작하는데,바닷물이 만조가 되어 이렇게 들어차 있는 건 처음 본다. 무섭다.해무로 가득한 알 수 없는 바다가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 공포스럽다.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는 건 본능이다.
저 멀리에 언뜻 보면 바위인지 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새무리가 굳건하게 바다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불턱 근처에는 바위와 대비되는 흰색의 새 한 마리가 무심한 듯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나는 바위인지 새인지 구분되지 않는 모습으로 혼자 무심한 듯 걷는 새 같다. '는 생각을 하며 명상센터로 향한다.
바다 바로 앞건물 2층에 자리한 명상센터에는 강사와 나뿐이다. 이 넓은 공간에 명상 수업을 1:1로 듣게 되는 특권을 얻은 것 같아 설렌다.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과 명상하는 동안의 마음가짐에 대해 당부하는 목소리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좋은 시작이다.
"한 번의 명상수업에서 '무언가를 찾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이렇게 좋은 제주도에 쉬러 왔는데, 무언가를 찾는 것도 애쓰는 거잖아요. 명상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오는데, 명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애쓰며 생각과 싸우지도 마세요. 하늘 위의 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그냥 흘러가게 두세요."
'하늘 위의 구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들어오는 생각들을 흘러가게 두라.'는 이 한마디는 명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명상을 온전히 마친 것 같은 후련함이다. '흘러가게 두어라'라는 뜻의 시발점을 찾은 것 같다. 뭔가를 찾기 위해 찾아온 곳에서 '찾기 위해 애쓰지 말고, 생각과 싸우지 말라.'는 강사의 말은 진한 울림으로 가슴에 스며든다.
명상 전 편안하게 몸을 풀고, 싱잉볼 쪽으로 머리를 두고 누워 싱잉볼명상에 빠진다. 오직 나 한 사람을 위해 울려 퍼지는 싱잉볼 연주는 머릿속을 정말 깨끗하게 비워준다. 호흡명상으로 마무리 된 수업은 눈을 뜨니 70분이 훌쩍 넘어있다. 수업이 끝나고 아늑한 분위기를 위해 쳐두었던 커튼을 여니 대형 통유리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바다가 펼쳐진다. 비 오는 바다를 이렇게 품 가득 시야에 담아보는 것도 명상이다.
2시간 만에 바닷물은 저 멀리 빠져나갔다.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가 편안하게 바라봐진다. 내 코앞에서 넘실대던 바다도 저만치 떨어져 있는 바다도 내 옷깃하나 적시지 못한 건 똑같은데, 부슬부슬 소리 없이 내리며 머리부터 신발까지 적시고 있는 가랑비에 비하면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바다건만 뭐가 무서웠을까, 오늘도 혼자서 생각이 많다. 생각과 싸우지 않고 흘러가게 두는 중이니 '괜찮다.' 하며 걷는다.
수도 없이 다닌 해안길 바닥에 엄마고래, 새끼고래 그림이 있는 걸 처음 발견한다. 우산을 쓰고 걷지 않았다면 결코 이 귀여운 그림은 보지 못했을 거다. '앞을 당당히 보며 걸어라. 가끔 하늘도 보면서 살아라.'등의 말은 들어봤는데, 조심해라는 의미 외에 '고개 숙여 땅도 보면서 살아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행복이 여기도 있는데.
비를 맞아 싱그러울 초록이들이 보고 싶어서 정원이 예쁜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정원을 보며 따뜻한 차 한 모금과 함께 마음을 내리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몇 장 읽고 다시 창밖을 보고, 몇 장 읽고 다시 창밖을 보고 그렇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여기까지'라는 마음의 신호가 온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여기까지'라는 의미다. '생각과 싸우지 말아야지.' 했는데 생각과 싸우고 싶어질 것 같아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