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한 마리가 유유히 내 머리 위로 지나간다. 순간 '내 머리에 똥을 싸는 건 아니겠지? 곤란한데?' 하며 고개를 드는데 신경도 안 쓰고 갈 길 간다. 그러다 문득 내게 이런 습관이 있었던가 의문이 든다. 단순히 감정들을 인식하거나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하기는 했던 것 같은데 지금처럼 모든 순간의 행동, 들리는 것, 보이는 것, 감정, 생각, 느낌들을 놓치지 않고 마음속 혼잣말로 했었던 적이 있었던가? 끊임없이 생중계 하듯 스스로에게 설명을 하며 독백을 하고 있다.
오빠는 통화할 때마다 '심심하지 않냐?'라고묻는데 나는 심심하지 않다. 심심하지 않은 이유, 종일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 이유. 낮동안 쉼없이 나에게 말을 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나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시 글로 쓴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수다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심심할 틈도 없이.
가족들은 평생 엄마가 계신 집에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엄마는 계단을 오르는 가족들 발소리만 듣고도 먼저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기가 일쑤였기에 현관문을 열 필요조차 없을 때가 허다했다.독립 후에는 출근 시동을 걸면서 '하이 빅스비, 엄마한테 전화 걸어줘', 퇴근 시동을 걸 때도 '하이 빅스비, 엄마한테 전화 걸어줘'가 자동이었다. 나는 하루에 기본 2번에 시도 때도 없이, 오빠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그렇게 엄마 전화는 쉰 적이 없었고,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온 가족 걱정이라 샤워하시면서도 휴대폰을 문 앞에 두고 전화를 받으셨다. 그렇게 엄마는 평생온전한 집 그 자체였다.
한동안 차만 타면 습관적으로 '하이 빅스비, 엄마...' 하며 멈추는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어느 날, 오빠와 통화 중 '괜찮나?' 하는 내 말에'뭐, 나야 애들도 있고 가족들도 있으니괜찮다. 네가 걱정이지. 그런데, 전화할 곳이 없네' 한다.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엄마 앞에서는 한없이 수다스러웠던 아들도 딸도말할 곳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감히 가라앉아 있는 마음을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말이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제 스스로에게 자꾸 말을 걸며 수다스러워지고 있는 거다.'말이 하고 싶고, 글을 쓰고 싶어 졌다.'는 건 '마음을 열고 나를 들여다볼 준비가 됐다'는 신호임은 확실하다.
흐린 날에 슬쩍 기대어본 마음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여과 없이 떨어진다. 늘 감정이 올라오면 목부터 조여 오고 꾹꾹 짓눌리며 떨리는 입술과 함께 쏟아지던 울음이 여기 와서는 전조증상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지곤 한다. 더 이상 목의 조임에 아프지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고 쏟아지는 눈물은 '삼켜지는 것도, 내뱉는 것도 거부하던 돌덩이 같던 무엇이 조금씩 녹여지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의미이길 바라본다.
어떤 연예인이 자기 팔로 자신을 꼭 안는 것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내가 나를 꼭 껴안아본다. 항상 문을 열면 안아주시던 따뜻한 가슴대신 내 가슴을 안고, 내 손에 와닿던 점점 야위어가시던 등 대신 내 등을 토닥여본다. 어딜 가나 손 꼭 잡고 다니던 따뜻한 손대신 내 두 손을 서로 깍지 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