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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숲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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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Mar 27. 2023

대추꽃색(+25day)

'꽃이 지기 전에 마시세요'라니

청명한 날씨에 펼쳐진 차밭은 꼬마처럼 뛰어들고 싶은 반짝임이다.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다원까지 걸으며 마주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정말 맑은 하늘이다. 좀 심심해 보인다. '구름 몇 점은 떠다녀줘야 하늘이지'라는 생각 속에 '머릿속에 몇 가지 생각들은 스쳐가줘야 삶이지' 하며 신나게 걷다 보니 다원에 도착한다. 차밭의 싱그러움은 있는 그대로 힐링이다. 차밭은 클래스가 끝나면 천천히 구경하지 싶어 음다하는 곳으로 바로 들어간다.


차밭을 바라보며 음다하는 공간은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좋. 1:1 수업을 위해 팽주와 마주 보는 테이블에 앉는다. 사람이 많으면 차를 내리는 테이블과 별개로 배치된 개별 테이블에 앉아서 음다를 하는데, 나 밖에 없으니 차를 내려주는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다.


밝게 건네오는 팽주의 인사와 함께 차에 대한 설명이 시작된다. 6종류의 차 중에서 녹차, 홍차, 호지차, 말차 순서로 정성 가득 준비해 주는 차를 마셔본다. '세상 이런 행복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는 설렘으로 탕색을 보며 천천히 음미해 보는데, 전문가의 손길로 섬세하게 내려진 차는 부드러운 향부터 투명하고 맑음 속에 반짝이는 탕색까지 마시기 전부터 기쁨이다. 팽주의 설명에 따라 마시니 차 고유의 맛이 더 잘 느껴진. 1인분으로 내려지는 차라도 각 차가 1인분이면 꽤 많아지는 양 탓에 팽주와 함께 차를 나눠마시며 차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와 정보를 듣다보니 이런저런 궁금한 점들이 자꾸자꾸 늘어난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말차는 마셔봤지만 전문가가 직접 시연하는 것을 보는 것도 세레모니얼말차를 마시는 것도 처음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지니 신기하다. 차선 사용법부터 과정 하나하나까지 설명을 해주며 완성된 말차를 건네준다. 다른 차들은 차를 우려내는 다기와 마시는 다기가 다르지만 '말차는 하나의 다완 안에서 모든 과정이 이뤄지기에 특별함이 있다'설명을 듣고 말차를 두 손으로 받아 드니 따뜻하게 전해지는 다완의 온기와 함께 감싸는 마음이 남다르다.


'말차 색을 보니 어떤 게 떠오르세요?'라팽주의 질문에 민트색이 떠올랐는데 '대추꽃색을 닮았다'라고 설명해 준다. 대추꽃을 본 적은 없지만 상상이 되면서 '무언가의 색을 이렇게 아름답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싶다. 그리고 '꽃이 지기 전에 마시세요'라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거품이 사그라지기 전에 마시세요'라는 말 대신 '꽃이 지기 전에 마시세요'라니 이처럼 아름다운 표현이 또 있을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포근한 정도의 따뜻한 다완을 두 손으로 감싼채 천천히 마셔본다. 마지막 한 모금은 소리 내며 거품까지 깨끗하게 마시는 것으로 팽주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표해본다.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꽃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곳의  팽주들은 '매일 차밭을 산책하면서 그날의 다화를 준비한'는 말과 함께 '찻자리는 다화꽂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에 존재할 뿐 관심두지 않았던 소소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면 찻자리 하기 전에 차분히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예쁜 풀꽃 하나 꺾어 다화꽂이를 해봐야겠다. 


차밭을 따라 나있는 산책로를 혼자 거니니 세상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것 같다. 내 눈에 예쁘면 꽃이고, 안 예쁘면 잡초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르며 온 세상 꽃만 보이는 순간다.




두고자 하는 곳에 마음이 있어 행복한 하루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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