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으로 눈을 뜨면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딱히 외출 계획이 없지만 잠재적 직업병이리라. '미세먼지 나쁨'은집순이의기분에도 영향을 준다. 아침 환기대신 전열교환기 버튼을 누르고 차를 준비한다.
얼마 전부터 아침 차명상을 시작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따뜻한 차로 온기를 채우며 하루를 시작하자는 의미다. 카페인 없는 대용차를 준비하고 편안하게 티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난하다.
미세먼지 나쁨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지금 창밖 풍경은 완벽한 운무의 환상적인 경치다. 그런데 산을 타고 흐르는 저것이 미세먼지라고 인식하니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이다.
어차피 쾌적한 실내에서 보는 풍경인데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이거늘 아름다운 운무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차를 마시는 것이 심신의 안정에 좋은 게 아닌가 하는 극강의 이기심이 합당한가.
쾌적한 실내에서 편안하게 있으면 양심이라도 갖고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인지하며 불편한 마음이라도 가져야 도리가 아닌가 하는 소심한 인류애가 합당한가.
며칠전 오랜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느꼈던 답답함이 연상된다. 문제를 알면서도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유를 그들의 대화 속에서 뼈저리게 느끼며 '과연 그 속에 나는 없는가!'라는 반문을 하며 복잡했던 마음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온다.
실내에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막상 저 미세먼지 속에 들어가면 마스크를 쓰고 버티기만 하는 현실 앞에 뭐가 바뀔까.그나마 KF94라도 준비된 사람이라면 있는 동안 답답하고 눈도 따갑겠지만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면 지나간 일이 되겠지. 준비 없이 급하게 구한 보건마스크를 쓴 이들은 폐 속까지 밀고 들어온 초미세먼지를 어떡하나.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했던 외로운 자기변명은 더러운 무서움이 되어 모든 길을 막는 지경이 되었는데, 여전히 그대로다. 더러움을 그때그때 치우며 해결방법을 찾아갔더라면 어땠을까! 앞선 자의 미안함으로 마음 아팠던 그때의 진심도 행동하지 않은 나의 걸음앞에 가식이 되어 미안함조차 면목이 없다.
마음을 비우며 시작하자는 차명상은 한 시간 반째 엉덩이만 붙이고 차만 마실 뿐 흐름이 없다.
점심을 먹고 간만에 진하게 내린 커피에 달다구리를 챙겨 서재에 들어와 다시 창너머 세상을 보니 언제 뿌연 적이 있었냐는 듯 선명하다. 높고 푸른 하늘과 멀리 보이는 강물까지 반짝이며 세상 순수하다. 무엇이 거짓인지 모를 일이다. 매몰찬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