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노래 한 곡에서 시작해 '이무진' 늦덕이 시작되었다. 평생 하지 않을 것 같은 짓을 하며 낯설지만 설레는 자신에게 만족하며 기꺼이 지금을 즐기는 중이다.
주변 지인들이 다른 지역 콘서트까지 찾아다니며 열의를 보이는 모습을 보며 굳이를 외치던 나는 11월부터 시작되는 이무진 가수의 콘서트를 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일주일 간격의 다른 지역 티켓을 2매 예약했다. 창원 콘서트장은 큰 걱정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부산 콘서트장은 어떻게 가야 할지 난감하다. 의지가 있으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법이니 부산까지 운전하는 것이 어렵다 판단되면 대중교통을 최대한 활용해 보면 될 일이니 그 때 가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론은 현재 기다림에 제곱의 설렘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출퇴근송으로만 듣던 노래를 콘서트를 앞두고 집에서도 가열차게 듣고 있다. 가사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콘서트에 최대한 몰입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귀로만 들을 때도 가사가 참 깊다는 생각을 했는데, 눈으로 가사를 따라가며 곡을 들으니 음색과 함께 그 깊이가 더 와닿는다. 딱! 20대의 채도 높은 청춘이다.
00년생이 태어난 00학번의청춘은 어땠던가? 그땐 몰랐던 하지만 지금은 생각만 해도 싱그러운 내가 있다. 별 일도 없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왜 술만 마시면 안 하던 짓을 하고 울고 웃고 했는지, 왜 내 삶을 정해진 길대로만 가야 한다고 받아들이고 의심조차 하지 못했는지, 그럼에도 그 모든 순간이 환하기만 했는지, 깜깜한 밤조차도 숨길 수 없이 투명했는지.
00학번의 청춘이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니?'라고 새삼 물어온다. 가끔 이런 질문을 타인에게 들은 적도 있고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은 적도 있다. 그리고 매번 명확하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럽거나 다시 쓰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지, 그때의 존재만으로 충만했던 그 순간에 머물고 싶다. 소중했으나 소중하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할 만큼 젊다는 것만으로도 가진 것이 많았던 벅찬요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00학번의 청춘이 '지금도 청춘이라고 생각하니?'라고 마음 깊이 물어온다. 이미 기성세대에 입문한 나이라며, 해마다 노화를 실감하며 최근에는 급격히 찾아온 노안에 내려놓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많아진 요즘의 나를 둘러본다. 그럼에도 명확하게 '물론'이라고 확신한다. 삶의 결을 함께 할 수 있는 철학을 찾아 헤매고,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유연함이 더해지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보다는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나아가기 위해 방황하는 빛깔이 다른 하지만 변함없이 '잔요동이 헤엄쳐 오는 곳으로' 향하는지금의 청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