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설거지를 꼭 하고 나온다. 샤워 후 머리카락 정리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현관을 나서기 전 집안을 꼼꼼하게 둘러보는 습관도 생겼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시는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오지 못한 타인의 집을 청소해주는 직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망자는 말이 없다지만 자신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여과 없이 드러나는 모든 것들이 너무 날 것이다.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 의해 자신의 집과 흔적들이 들춰지게 되는 상황이 너무 싫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전혀 모르는 타인에 의해 자신의 흔적이 가치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지금 상황이 차라리 나으려나? 자신을 좋게만 기억해주길 바라는 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준비되지 못한 흔적들이 의미를 부여하며 보여진다면 정말 싫을 것 같다.
출근하려 현관을 나서는데 '나도 누군가처럼 이 문으로 다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뉴스 속 사건사고를 접하면 모두 그건 뉴스 속 타인의 이야기로 느끼겠지만 뉴스 속 그들도 그랬듯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에게도.
그날 저녁 평생 나만 볼 거라며 세상 억울함과 분노 등 지독히 이기적인 날 것의 감정을 풀어냈던 일기장과 소중하지만 나만 보고 싶은 편지 등을 모두 정리했다. 집구석 구석을 뒤지며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 숨겨두거나 방치되었던 것들을 버렸다. 며칠을 찢고 버리고를 반복하며 컴퓨터와 휴대폰 자료들도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정리했다.
뭔지 모를 허전함과 후련한 마음으로 집을 두리번거리는데 여기저기 놓여있는 내 사진을 보고 웃겼다. 내 집을 내 사진이 내 집 임을 인증할 필요가 있나 싶다.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서 존재하는데 사진이 왜 있어야 하나 싶어서 모든 사진을 앨범 속으로 정리하고 빈 액자는 찍어두었던 사물 사진으로 교체했다. 그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나의 감성만 느낄 수 있는 나만 아는 사진으로 채웠다. 문득 웃겨셔 치워버린 내 사진은 내가 없는 집에서는 내 집인 줄 모르는 내 집을 만들어주었다.
출근하기 전 다시 집을 둘려본다. 신발을 신는데 내 집이 내 집 같지가 않다. 나의 진짜 흔적들이 사라지고 예쁘게 찍힌 사진 같은 공간만 남겨진 기분이다. 내 취향이 가득한 집이 분명한데 내가 없어도 존재하는 곳 같다. 누군가 '이 집이 내 집이랍니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타인에게 각인될 수 있는 흔적들이 사라진 집을 나온다.
현관에 명패도 없다. 집 안에 내 사진도 없다. 굳이 내 이름이 적힌 책들과 노트를 뒤지지 않고 앨범을 뒤지지 않는다면 그냥 둘러보게 되는 집 풍경에는 나를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섭섭한 마음까지 드는 집이지만 그래서 더없이 편안한 안정을 주는 집이 되었다. 내가 아닌 타인이 현관문을 열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남겨진 흔적들이 평온하고 아름답길 바라기에.
화장실에 붙어 있는 흔한 좋은 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이 말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며 나만의 해석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