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의 페르소나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지어야 하는 건지 버퍼링 중
페르소나라는 인식조차 필요치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20년 차 직장인이다. 눈치 보는 성향은 아니지만 불편한 건 느끼는 사람이라 출근과 동시에 개인영역의 감정은 off, 기본 선과 예의를 장착하되 타인 영역의 감정에는 완전한 이방인 모드를 작동한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는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희로애락 없이 평온해서 원치 않는 천직이라는 생각도 한다.
페르소나적 에너지가 가장 많이 필요한 가족과의 시간에는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매 순간 머릿속으로 '존중'이라는 낱말을 떠올리며 보낸다. 자신을 믿기에 '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라고 여기면서도 늘 가족들에게는 순간순간 인색한 감정이 올라온다. 단순한 말속에 직설적인 감정이 묻어 나와 뒤돌아서서 자기반성을 하게 되다 보니 에너지가 가장 많이 쓰인다.
페르소나가 없는 완전한 내 공간에서는 그 어떤 의식적인 표정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인식도 없이, 에너지 소모도 없이, 평온하게 얼굴 근육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식처다. 그리고 일상 속 스쳐가는 의미 없는 관계에서는 나름 인류애적 다정함을 장착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냉소적인 각자일하는 페르소나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자동반사적으로 자연스럽게 장착되는 표정들이라 어색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난감하다.
인생 첫 덕질을 위한 첫 콘서트, 무대를 보며 가사도 따라 부르고 눈치껏 응원도 하며 즐거워하면서도 순간순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느껴진다. 머쓱한 듯 무채색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장 난 어색하기 그지없는 즐거운 표정. 두 번째 콘서트, 살짝 미묘했으나 자연스럽게 마음껏 웃고 때론 뭉클해하면서 기꺼이 신나게 즐겨본다. 그랬던 것 같다.
고장난 표정의 근원은 뭐였을까?
덕질할 때의 페르소나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그래서 많은 타인들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난감해서?
아니다.
완전한 내 공간에서만 보였던 민낯을 타인들 속에서 드러내려니 혼자 뻘쭘했던 거다. 화장하지 않고 외출했을 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겠지만 혼자만 민망한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한 뭐 그런 기분. 필터링 없이 혼자만의 세상에 몰입하는데 주변에 타인이 가득하다는 것에서 오는 현타!
페르소나 또한 내가 선택한 내 모습이자 '나'이기에 존중한다. 그 순간조차 솔직하기에 가식은 없으니. 어쩌면 이름 석자의 무게가 가장 무거운 본명의 페르소나로 씌워져 있는 건 아닌지.
필명으로 글을 쓰는 지금이, 아는 이 없는 공연장에서의 관객이 된 순간이 가장 날 것의 '나'인 것 같기도 하다.
더 '나'다워지는 입덕 하루사리.